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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조각가 '로댕' (오귀스트 로댕)

오귀스트 로댕 Auguste Rodin (1840~1917)

프랑스의 조각가이며 근대 조각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인물입니다. 그가 추구한 웅대한 예술성과 기량은 조각에 생명과 감정을 불어넣어 예술의 자율성을 부여했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을 사실주의적으로 인간 형상을 만든 마지막 위대한 조각가라 평가합니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잘 알려진 로댕은 미켈란젤로의 많은 작품을 모방하기도 했습니다. 

로댕은 파리 프티 에콜 학교에서 1854년부터 1857년까지 드로잉을 공부했습니다. 파리 미술원에 들어가지 못하자 공예가, 도자기 화가, 보석세공인으로 일하면서 생계를 꾸렸습니다. 1864년에는 알베르 에르네스트 카리에 벨뢰즈의 작업실에 들어갔습니다. 같은 해 자연주의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코가 부러진 사나이'를 완성했습니다. 그러나 미완성 작품이라는 이유로 정식 살롱에서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1870년 로댕은 카리에 벨뢰즈를 따라 브뤼셀로 갔고, 마침내 작업실을 열어 인정받는 조각가가 되기 위해 애썼습니다. 

1875년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로댕은 미켈란젤로와 도나텔로 그리고 고대 로마의 조각품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받은 영감으로 '청동시대'(1875년)를 만들었는데, 이 작품은 매우 실물 같아서 어떤 사람들은 실제 사람에서 본을 뜬 것이라고 믿기도 했습니다. 

1880년 로댕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장식미술 박물관의 문을 청동으로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그는 로렌초 기베르티가 만든 유명한 피렌체 세례당 '천국의 문' 에서 영감을 받아 '지옥의 문' 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180개 이상의 형상을 본떴고, 30년 동안 작업했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사망할 때까지 완성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1884년 칼레 시민들은 1347년 영국의 점령을 끝내기 위해 목숨을 바친 6명을 기리는 기념물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만든 작품이 '칼레의 시민'입니다. 그러나 로댕은 작품 속 주인공들을 영웅이 아닌 희생자로 묘사하는 바람에 비난을 받았습니다. 1891년에는 위대한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조각상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로댕은 7년 동안 발자크의 사지을 모으고, 그의 재단사였던 사람을 찾아가 취재하고, 심지어 발자크가 어떤 성격이었는지 알기 위해 그의 집 주변 지형까지 세심히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칼레의 시민'처럼 발자크의 조각상도 전통에서 너무 벗어났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로댕은 이러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 내 원칙은 형태뿐만 아니라 삶을 모방하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프랑스 정부로부터 중요한 작품을 의뢰받았습니다. 

1895년 로댕은 외국 대학들로부터 명예 학위를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08년에는 파리의 비롱 저택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이곳은 1919년에 미술관으로 개조되었고, 현재 세계에서 로댕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여담으로 유명한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1905년부터 1906년까지 로댕의 비서로 있었으며, 그 이후에 로댕에 관한 책을 썼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