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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100년> ③ 창덕궁·덕수궁, 완전 복원 향한 긴 여정

송고시간2015-08-1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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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 상대적으로 덜한 창덕궁, 낙선재와 규장각 복구덕수궁 석조전·중명전 옛 모습으로…'선원전 터 정비' 숙제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의 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창덕궁(昌德宮)은 태종 5년(1405) 경복궁의 이궁(離宮)으로 지어졌다. 경복궁의 동쪽에 자리해 창경궁과 함께 동궐(東闕)로도 불렸다.

창덕궁은 건물 배치가 규칙적이고 대칭적인 경복궁과는 달리 산자락을 따라 전각이 들어서 비정형적이지만 편안한 느낌을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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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한양의 다른 궁처럼 소실됐으나 광해군이 중건해 조선 후기까지 법궁으로 쓰였다. 조선의 제17대 임금인 효종 이후 왕위에 오른 임금들은 대부분 창덕궁에서 즉위식을 거행했다.

대한제국의 두 번째 황제가 된 순종은 1907년 부친인 고종이 공들여 조성한 덕수궁(德壽宮)에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때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仁政殿)과 인정문(仁政門)이 근대식으로 개조됐다.

1917년 내전에 화재가 일어나자 일제는 경복궁 건물을 헐고 부재를 가져와 대조전(大造殿)과 희정당(熙政堂)을 지었고, 그 안에 전등과 난방기구 등 근대 시설물을 설치했다. 1926년에는 창덕궁을 일반에 개방하면서 인정전 주변 건물을 전시장으로 보수하기도 했다.

창덕궁은 조선 왕실 가족이 거주하고 있어서 4대 궁 가운데 그나마 일제에 의한 훼손 정도가 덜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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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는 정전과 침전, 후원을 정비했고, 1990년대는 인정전 내행각을 복원하고 낙선재 일대를 복구했다. 2000년대 들어서 마지막으로 규장각(奎章閣) 권역을 복원했다. 현재 창덕궁은 19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60% 정도 복원된 상태다.

반면 덕수궁은 일제강점기 권역이 대폭 축소되고 많은 전각이 훼철됐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도읍으로 돌아온 선조가 머물렀던 덕수궁은 조선시대에 경운궁(慶運宮)으로 일컬어졌다.

광해군이 선조의 비인 인목대비를 유폐한 뒤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다가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 이후 대한제국의 중심지가 됐다.

제국을 선포하고 변화를 모색한 고종은 덕수궁에 석조전(石造殿)과 중명전(重明殿) 같은 서구식 건물을 세우고 정전인 중화전(中和殿)을 중창했다.

그러나 일제는 덕수궁도 마구잡이로 망가뜨렸다. 1920년대 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보관하던 선원전(璿源殿) 일대는 해체한 뒤 경성여자공립보통학교와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를 세웠고, 태평로를 넓게 낸다는 명목으로 대한문(大漢門)을 후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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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3칸, 측면 2칸인 대한문은 광복을 맞은 뒤에도 도로 확충으로 인해 뒤로 물러났다. 경복궁 광화문처럼 여러 차례 이전됐지만, 규모가 작아 더욱 초라하게 느껴진다.

덕수궁 복원은 1984년 중화전 전정(前庭)과 금천교(禁川橋)를 복원, 보수하면서 시작됐다.

지난해는 해방 이후 국립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으로 사용된 석조전 내부를 대한제국 건립 당시 모습으로 재현해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했고, 이에 앞서 2010년에는 을사늑약이 체결된 건물인 중명전을 원형으로 복원해 일반에 공개했다.

덕수궁에 남겨진 가장 큰 숙제는 선원전 터를 정비하는 것이다. 경기여고가 있던 이곳에서는 발굴 조사 결과 흥덕전(興德殿)과 흥복전(興福殿) 기초 흔적이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2039년까지 선원전 터의 복원 정비를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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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동 목원대 명예교수는 "덕수궁은 다른 궁궐에 비해 근대적인 궁궐이라는 색깔이 강하지만, 그중 일부인 넓은 선원전 권역은 오래전 파괴돼 오랫동안 국민의 뇌리에서 잊혀졌다"면서 "덕수궁의 예전 모습을 되찾는 것은 우리 근대사를 조명하는 아주 중요한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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