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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숭 구멍 난 특이한 외벽, 그 사이로 눈·비까지 숭숭

강남구 신논현역 부근 ‘어반 하이브’

등록 : 2017-07-20 14:38 수정 : 2017-07-2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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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신논현역의 랜드마크로 떠오른 ‘어반 하이브’ 외관.
강남 지역의 랜드마크로 부상

강남의 신논현역 근처를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사거리 모퉁이에 서 있는 빼곡히 구멍 뚫린 17층짜리 콘크리트 박스를 기억할 것이다. 부근 지리를 설명할 때 구멍 숭숭 난 건물을 기준으로 설명하면 못 보고 지나치긴 불가능하니, 명실공히 지역의 랜드마크라 아니 할 수 없다. ‘어반 하이브’(Urban Hive)라는 영어로 된 이름도 벌집같이 생긴 건물의 독특한 모양새에서 따와 붙여준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꽤 오랜 시간 바다 건너에서 지내다 한국에 다시 들어온 첫해에 강남을 지나다 이 건물을 만났다. 이방에서 돌아온 고향에서 되레 약간의 문화 충격을 받았다고 해야 할까? 멀리서부터 걸어가며 한참을 눈을 떼지 못했다. 처음엔 오래되어 낡은 건물의 외관을 개선해서 경제적으로 부동산 가치를 올려보려는 단순한 외장 작업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본 외벽은 가볍게 입혀 놓은 패션으로서의 포장이 아닌 엄청난 두께의 콘크리트 구조체였다. 그리고 그 벽의 수많은 원들은 말 그대로 뻥 뚫린 구멍이었다. 당시에 받은 느낌을 한마디로 하자면, 요즘 아이들 말투로 ‘헐!’이었다.

기둥 없는 내부 공간

이 건물은 외피가 구조체의 역할을 해줌으로써 기둥 없는 내부 공간을 가능하게 한 것이 가장 중요한 개념일 것이다. 건축가도 이 건물을 그렇게 설명했고, 그 생각은 여러 매체에 새롭고 창조적인 접근 방법으로 크게 평가되었다. 심지어 과학 관련 기사나 서적에까지 놀라운 창의적 해법으로 소개되었다.

외골격을 형성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특히 다양한 구조적 실험을 계속해온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오가 미키모토 백화점에서 깔끔하게 실현해내서 이미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바 있었다. 기발한 생각은 먼저 해낸 사람에게 그 공이 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긴 하지만, 하늘 아래에 온전히 새로운 것은 없는 법이다. 무언가 영향받았다면 영향을 준 고마운 원천을 밝히면 되고, 내가 그 내용을 더 발전시켰다면 그 원천이 내 어깨를 두드려줄 수도 있겠다. 혹시 독자 중에 이 건물이 외골격 디자인을 강조했다고 해서 최초의 발명쯤으로 오해한 분이 계시다면 그 오해 푸시길 바란다. 설계자도 그런 오해는 반가울 리 만무하다.

외부로 개방되어 있는 1층 현관 로비의 모습.
미키모토 백화점과는 닮은 듯 달라

연분홍의 미키모토 백화점은 외벽 구성과 구멍 모양만 다르지 외골격 구조로 기둥 없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강철판 사이에 콘크리트를 채워 넣은 20㎝의 얇은 외벽판만으로 구조를 해결하고 스위스 치즈 같이 뚫린 불규칙한 구멍에는 꼭 맞는 유리창이 끼워져 있다. 또한 이 건물의 용도는 백화점, 즉 상업시설이어서 구멍으로 들어오는 불규칙한 자연광이 주는 재미는 만끽해도 그로 인한 불편함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다.


이에 비해 어반 하이브는 자연광을 외면하기 힘든 업무시설이고, 그런 이유 때문인지 전면에 난 모든 구멍은 같은 크기와 형태의 기하학적 원이며, 그 바탕은 잘 빚은 회색 노출 콘크리트이다. 유사하지만 다른 점도 많은 미키모토와 어반 하이브를 ‘같은 옷 다른 느낌’처럼 비교해보아도 재미있을 것이다.

기둥이 아닌 외벽이 구조를 담당해주니 내부에는 기둥이 없다. 외벽은 구조용이라 눈과 비는 안쪽에 마련된 유리벽이 막는다. 설계자는 이런 외골격 구조에 이중 외피를 이용한 디자인으로 기둥 있는 일반 건물보다 공간 효율성을 높였다고 믿는 듯하다. 기둥 없는 공간은 사용이 유연하고 기둥으로 인한 여타 제약도 없어 많은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콘크리트 외벽 두께 40㎝에다 그 외벽과 안쪽 유리벽 사이의 빈 공간 50㎝, 거기에 유리벽 자체 두께까지 더하면 건물을 두르고 있는 외피 층의 두께는 거의 1m에 이른다. 이러니 경제적인 공간 조성이라는 주장을 편하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동쪽 공간, 뚫린 공간으로 바람이 숭숭

상품이나 작품을 진열하고 전시하는 환경에서는 자연광 유입을 제한하고 인공조명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업무시설에서 자연광의 유입과 고른 분산은 매우 중요하다. 이 건물은 업무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자연광은 구멍 난 외벽으로 제한되고 그로 인한 그림자가 사무실 내에 원형 무늬를 만든다. 공간적 유희를 즐기자고 만든 건물이면 모르겠지만 일터의 책상 위에 빵빵이 그림자라니, 빛의 제어는 힘들고 실내는 어두울밖에.

유리벽으로 외부와 차단된 쪽의 3면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콘크리트 외벽과 안쪽 벽 사이에 복도가 놓인 동쪽 공간은 외벽의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드나든다. 비 오면 비 맞고 눈 내리면 눈 맞으며 복도를 걷는다. 화장실 가는 길이 여름엔 무덥고 겨울엔 외투가 필요하며, 장마철엔 빗물을 닦고 동지섣달엔 눈 치워야 한다. 누군가 겨울에 사무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서면 사무실 안으로 찬바람이 들이치고, 바람 좋고 햇살 가득한 날이면 각층 복도에 말리자고 널어놓은 빨래가 한가득이다. 강남 한복판의 고층 빌딩에서 말이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인위적인 도심 생활의 톱니바퀴 사이에 자연의 끝자락이 애매하게 끼었다.

구멍 숭숭 뚫린 외벽과 내벽 사이의 복도로 구성된 내부 모습.
유리창에 낀 때 닦기 어려운 창문 구조

건물에 생기는 모든 수평면은 세심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그 면에 온갖 먼지와 오물이 앉았다가 비와 눈을 따라 흘러내려 벽을 더럽게 만들고 그 아래 서 있는 사람의 하얀 블라우스에 얼룩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신경 덜 쓰고 대충 디자인한 숱한 창문들이 멜로물 여배우의 눈물에 마스카라 번지듯 벽을 더럽히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이 건물 외벽의 빵빵이 개구부들은 롤리팝 캔디에 꽂힌 막대처럼 동그란 구멍 아래 까만 줄이 하나씩 매달린 채 조금씩 진해져간다.

막대사탕이나 끈 달린 풍선으로 예쁘게 여긴다면 이깟 땟국물 무시하고 자연이 선사한 그래픽쯤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더 힘든 문제는 속으로 숨었다. 이 건물의 유리벽은 콘크리트 벽으로 가려져 있으니 그 사이를 청소하고 구멍을 통해 유리를 닦으려면 꽤나 애를 먹겠다. 닦기 힘들면 그저 무심하게 못 본 척하는 것도 방법이다.

건물 외관은 70m나 되는 높이의 콘크리트 벽에 뚫린 원형 구멍들의 획일적인 질서정연함만으로 뚝심 있게 승부를 건다. 주변에 즐비한 그저 그런 강남 건물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여봐라며 나서고 싶었겠다. 그랬다면 독자적 아름다움을 주장할 만한 당위성은 확보했어야 했고, 유지·관리에 문제없는 창의 기능성이라도 담보했어야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야간의 실내조명으로 빛나는 건물 외벽의 구멍들을 도시의 밤에 떠오르는 수천 개의 달이라고 시적으로 표현했다지만, 건물 이름은 벌집인데 달이라니…. 그걸 보고 달을 떠올린 상상력은 놀랍지만 나는 주변 사람들의 환공포증(반복되는 특정 문양에서 느끼는 일종의 불안장애)이 더 우려된다. 갑자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이 두개 뜬 이상한 세계 <1Q84>가 떠올라 3000여개나 되는 달이 무서워지려고 한다.

모양도 맛도 없으면서 값까지 비싼 떡?

한국 영화가 미국에서 상영되는 일이 드물 때, 애써 지역의 유일한 개봉관을 찾아 <디 워>(D-War, 심형래 감독·2007)를 본 적이 있다. 엔딩 크레디트에서 흐르는 아리랑 위로, 심각한 장면이면 더 커지던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개연성 없는 플롯에 널뛰는 스토리, 이미지에 기댄 채 오락도 메시지도 없는 영화가 무언가 엄청난 것이 있는 듯 부풀려졌고 꽤 많은 이들의 지지도 얻었다. 그 바람에 혹시나 했던 나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졌다.

세상은 언제나 만만치 않아서, 모양 예쁘고 맛도 좋은데 값마저 싼 떡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양도 별로고 맛도 없는데 씹기까지 불편한 떡이 값도 후하게, 칭찬도 넘치게 받는 일도 있으니 세상일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 건물은 2008년 한국건축가협회상 본상과 2009년 서울특별시건축상 대상을 받았다.

글·사진 안준석 공학박사·건축가(AIA),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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