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보통사람 시대의 역모/김민환 고려대 신문방송학 교수

[열린세상] 보통사람 시대의 역모/김민환 고려대 신문방송학 교수

입력 2007-05-21 00:00
업데이트 2007-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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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환 고려대 신문방송학 교수
김민환 고려대 신문방송학 교수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발전함으로써 선거전의 양상은 많이 달라졌다. 전통적인 선거운동은 광장에 유권자를 모아두고 후보자와 찬조연사가 유세를 하는 것이다. 자유당 시절의 장충단 유세나 80년대의 여의도 유세는 그런 전통적 선거유세의 전형이었다. 이 방식은 유권자가 유세장까지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지만 장점도 많다. 후보자의 자질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유권자가 청중의 반응을 직접 느끼면서 다른 유권자들과 심리적 유대나 공감대를 넓힐 수도 있다.

라디오가 등장하면서 선거운동은 변화를 겪었다. 라디오는 맥루한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매우 정서적인 매체다. 따스한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하면 듣는 사람은 마치 친근한 사람과 마주 보며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래서 거대 담론이 아니라 일상사에서 느끼는 자질구레한 이야기로 청취자의 마음 깊숙이 파고 들 수 있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932년에 라디오의 이런 속성을 활용해 대선에서 이변을 만들어냈다.

텔레비전이 나온 뒤 선거운동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텔레비전은 영상을 보여준다.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후보자의 자질이나 정강, 공약과는 상관이 없는 요인이 선거운동에 매우 큰 몫을 차지한다. 텔레비전 선거에서는 후보자의 이미지가 매우 중요하다. 스마트하게 생긴 후보가 대중의 지지를 쉽게 끌어 모을 수 있다. 얼굴이 깨끗하면 참신하고 청렴한 사람으로 각인되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텔레비전의 비중이 증가함으로써 정치 담론의 질은 오히려 떨어졌다는 정치학자 제미슨의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인터넷이 등장하자 선거 판은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와텐버그가 지적한 바 있지만 정치의 마니아들은 인터넷을 통해 엄청나게 많은 정치정보를 얻지만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얻을 수 있는 정보량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다는 사실 때문에 차라리 정보탐색을 포기한다. 정보를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정보 빈부격차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인터넷 선거에서는 믿을 수 없는 정보가 나돌아 판세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어쩔 수 없는 업보다. 후보자들은 이런 점을 악용해 상대방을 흠집 내는 네거티브 캠페인에 주력한다.

늘 새로운 미디어가 나와 선거 판에 여러 모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미디어 덕분에 현저하게 진전한 것이 있다. 정치가 말 그대로 대중의 것이 된 점이 그것이다. 이 점 때문에 미디어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물론 정치의 대중화에 대해 볼멘소리를 토하는 학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벤자민 바버 같은 이는 민주주의란 교양 있는 숙의(熟議)를 통해 진리에 도달하는 장치가 될 때라야 진가가 드러날 수 있다면서, 미디어가 무지한 사람들을 정치판에 마구잡이로 끌어들여 결과적으로 여론몰이가 판을 치게 만들었다고 개탄한다.

미디어가 매개하는 선거에서 상대적으로 우월한 후보가 낙선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 때문에 바버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선거 결과가 자기 생각과 다르면 으레 미디어 탓을 한다. 지난 대선에서도 새로운 매체에 익숙한 철부지들이 일을 저질렀다고 해서 눈총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강점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교양 있는 유권자가 사려 깊은 숙고를 통해 합리적인 결론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유권자가 후보를 고르는 데 보다 많이 참여하는 것 그 자체다. 이건 보통사람 시대(age of the common man)의 기본 가정에 속한다. 대중참여를 두려워하는 것이야말로 기본을 거역하는 역모다.

김민환 고려대 신문방송학 교수
2007-05-2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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