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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린재동충하초
ⓒ 고평열
연 이틀 꿀물 같은 단비가 내리더니 버섯 채집을 나선 숲은 제법 가을 맛이 익었다. 처서가 지나서인지 물찻오름의 숲에 내리는 햇살에도 바늘 같던 따가움이 한결 무뎌졌음이 피부로 느껴진다. 8월이 이렇게 접히고, 2006년의 여름도 언제 그랬냐는 듯 맥없이 가을에 무너지고 나니, 더위를 노래하던 매미소리에도 차츰 힘이 빠져나가는지 느릿느릿 울어 옌다.

▲ 큰번데기동충하초
ⓒ 고평열
버섯 관찰은 오전이 좋다. 새벽부터 일찌감치 준비한 버섯들은 한낮이 되어가며 갓을 활짝 펴거나, 혹은 포자를 퍼트릴 준비를 끝낸 상태가 되기도 한다. 포자가 익으면 초파리, 달팽이, 거미 등의 곤충들이 미리알고 맛있게 식사를 끝내 버리기 일쑤다.

아침이슬에 싱싱하게 터지려는 버섯들을 채집해야 가지고 오는 동안 물러지지 않는다. 갓이 이미 펼쳐진 다음에는 순식간에 액화되어버리거나 갓이 뭉개지기 쉬워진다. 버섯은 수분이 95%를 차지하며, 섬유질이 아닌 '균 덩어리'라는 걸 또한 잊으면 안 된다.

▲ 유충긴목구형동충하초
ⓒ 고평열
비가 많이 내렸던 7월에는 제법 버섯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서 8월과 9월에 대한 기대를 한껏 했는데,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습기가 부족했던 8월은 버섯마저 더위를 먹었는지 예상보다 가난을 면치 못했다.

▲ 제주긴뿌리동충하초
ⓒ 고평열
작년 이 시기면 어느 만치, 얼마만큼, 어떤 버섯이 났었다는 걸 머릿속에서는 얼추 그려내는데도, 그 땅의 그 어두컴컴한 흙 속에는 보고자하는 버섯의 균사체가 살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반복하며 찾아가도 만날 수 없는 아쉬움. 8월은 그렇게 더위만큼이나 무거운 아쉬움을 한 짐 내게 안기고 9월을 맞이하고 말았다.

▲ 눈꽃동충하초
ⓒ 고평열
올 여름은 작년 관찰했던 장소를 똑같이 관찰했는데, 버섯 발생이 현저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버섯도 해거리현상을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작년 8월엔 흔히 보였던 동충하초도 보기 힘든 귀한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 올 해의 물찻오름 숲 속 버섯의 특징이었다.

▲ 번데기곤봉형눈꽃동충하초
ⓒ 고평열
'동충하초' 겨울엔 충의 몸으로 있다가 여름이 되면 풀처럼 돋아난다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곤충의 몸에서 발생하는 버섯을 말한다. 포자가 달린 자좌(버섯씨앗인 포자가 달리는 부분)는 밖에 노출되어 있다가 지나가는 곤충의 몸에 포자를 감염시킨다. 병들거나 때가 되어 죽은 곤충은 썩게 마련이지만, 동충하초의 포자에 감염되어 죽은 곤충은 썩지 않고 겨울을 나고, 다시 여름이 되면 동충하초를 피워 올려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

▲ 딱정벌레동충하초
ⓒ 고평열
인간에게로 말하자면 치명적인, 균에 의한 전염병에 감염되어 죽는 것인데, 이렇게 죽은 곤충의 몸을 영양분으로 삼아 다시 동충하초의 생명이 이어지며, 이 동충하초를 사람들은 영약이라고 섭취한다. 중국 고위 정치인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법으로 동충하초를 장복한 사실이 알려지며 한때 인기를 얻었던 버섯이 동충하초이다.

9월엔 충분한 비가 내려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다. 비가 내리면 숲은 축축한 습기로 충만하고, 푸르른 녹음이 드리워진 그늘 아래에는 버섯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는 민달팽이들이 여느 날처럼 느릿느릿 기어 다닐 것이다. 가늘고 긴 다리로 조그마한 몸을 번쩍 들어 올린 유령거미들도 사뿐사뿐 이동하며 나와 더불어 버섯을 찾을 것이다.

▲ 매미다발동충하초
ⓒ 고평열
고요함이 덧씌워진 숲의 정적 속엔 자손을 보다 많이 퍼트리려는 버섯들과, 맛있는 버섯을 보다 싱싱할 때 먹고자 하는 곤충들과의 소리 없는 줄다리기가 매일매일 열린다.

▲ 유충회색눈꽃동충하초
ⓒ 고평열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에 같이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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