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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다래꽃
 개다래꽃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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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군 성수산 기슭 숲길에 덩굴식물 개다래나무 군락이 6월 하순 초여름의 따가운 햇볕을 활력으로 푸른 잎들을 커다란 꽃송이처럼 하얗게 변색했다. 커다란 잎 아래에는 지름 2.5cm의 하얀 개다래 꽃들이 땅을 향하여 다소곳이 피어 있다.

개다래나무는 꽃이 피기 시작하면 나뭇잎들에 하얀 반점이 선명하게 생겨나 곤충을 유인한다. 꽃들의 수정이 이루어지면 하얀 반점은 사라지고 다시 푸른 잎으로 돌아가는 생존 전략의 지혜를 발휘한다.

성수산 자연 휴양림을 통과하여 개다래나무의 하얀 나뭇잎을 관찰하며 임도를 따라 1.5km쯤 올라간다. 수십 미터 크기의 바위들이 승천하려는 기상을 내뿜는 요새 같은 지형에 신라 말기에 도선 국사가 구룡쟁주(九龍爭珠)의 명당 터라며 창건한 성수산 상이암(上耳庵)이 있다.
 
상이암 여의주 바위 측면
 상이암 여의주 바위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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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암자는 고려와 조선 두 왕조의 창업 설화가 전해오는 천년 고찰 기도터이다. 성수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은 상이암이 잘 보이는 보현봉 위에서 산세를 살펴보며 암자 앞의 구룡쟁주 명당인 여의주 바위를 확인해 본다.

왕건(17세, 894년)과 이성계 장군(50세, 1380년)은 잠룡(潛龍)의 신분으로 이곳 성수산 상이암을 방문하여 하늘로부터 '성수만세(聖壽萬歲)'의 계시를 받았다고 상이암 사적기(寺跡記)는 전한다. 이들은 각각 24년과 12년 후에 비룡(飛龍)이 되어 고려와 조선을 창업한다.
 
상이암 여의주 바위
 상이암 여의주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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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동북아시아의 국가 명운(命運)은 북방 유목민족의 역동성에 크게 좌우되었다. 북방 민족이 발흥하던 중국 당송(唐宋) 교체기인 10세기 초에 고려가 건국되었고, 몽골이 후퇴하는 원명(元明) 교체기인 14세기 말에 조선이 건국되었다.

이곳 성수산 상이암은 두 왕조를 새로 세운 생왕(生王) 기도터라고 한다. 두 잠룡은 이곳에서 기도와 수양을 하면서 당시의 국제 정세를 전망하고 시대의 변화에 적응할 대안을 모색하였을 것이다. 국가와 민족들도 긴 역사적 안목으로 치열한 생존 전략을 구사한다.

성수산 계곡에 군락을 이룬 개다래나무는 하얗게 변색한 나뭇잎을 꽃잎처럼 활용하여 멀리 있는 곤충을 유인하고 약간의 향기를 내뿜어 나뭇잎 뒤의 작은 꽃에까지 찾아오게 한다. 그런데 풀잠자리가 개다래꽃을 찾는다.
 
개다래나무 흰색 잎
 개다래나무 흰색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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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대 페름기에 출현한 풀잠자리는 이전의 석탄기에 나타난 잠자리와는 다른 종류이다. 풀잠자리는 번데기 단계를 거치는 완전변태 곤충으로 나비와 딱정벌레에 가깝다. 나비가 출현하기 이전인 중생대 쥐라기까지 풀잠자리는 훗날 나비의 생태계 지위를 누렸다고 한다.

풀잠자리는 개다래 암꽃에 산란하는데 부화한 유충은 숙주로 삼은 개다래 열매를 충영(蟲廮, 벌레집)으로 울퉁불퉁하게 만들며 그 속에서 성장한다. 풀잠자리 유충은 3령이 되면 개다래 열매를 빠져나와 고치를 지어 번데기로 머무르다가 우화하여 성충이 된다.
 
개다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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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설화가 씨줄과 날줄로 엮어진 임실 성수산 상이암 계곡의 개다래나무 군락지에 개다래꽃이 수없이 피는 초여름이다. 자연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물들은 서로 그물망을 맺으며 변화하고 적응하여 생존의 지혜를 생명력 충실하게 전개하고 있다.

태그:#임실 성수산 상이암, #구룡쟁주 바위, #개다래꽃과 풀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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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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