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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베니스비엔날레 참가를 계기로 글로벌작가로 세계미술계에 이름을 날린 서도호(徐道濩 Do Ho Suh 1962~)의 개인전 '집 속의 집(Home within Home)'이 삼성미술관 리움 에서 6월 3일까지 열린다. 설치, 조각, 영상, 드로잉, 오브제 등 43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세계를 잘 드러내는 근년의 전시를 독창적으로 재구성했다. 부모가 살았던 성북동 한옥뿐만 아니라 뉴욕 등에서 1년 이상 살았던 집 5채를 형상화한 이번 시리즈는 이미 런던, 시애틀 등에서 전시했지만 서울에선 처음이다. 그리고 시애틀미술관에서 선보인 '문'(Gate) 시리즈의 리움 버전은 퍽 인상적이다.

 

작가는 "작품 앞에서 관객이 잠시 일을 내려놓고 휴식과 공감, 사색과 철학의 시간을 열어준다면 성공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번 전시를 본 국내관객은 한국미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되찾게 되고, 각자 나름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어린 시절 경험한 한옥, 창작의 진원지

 

서도호는 10살 때부터 부친인 서세옥 화백이 덕수궁 내 연경당 사랑채를 본떠 지은 성북동 한옥에 살았다. 그런 한옥에 산 경험이 그가 예술창작의 진원지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당시는 개발붐시대라 사람들이 이런 것에 관심을 둘리 없었지만 서도호의 집 분위기는 그의 아버지 영향인지 남달랐다.

 

공간에 옷을 입힌다는 개념으로 만든 위 작품은 작가가 살았던 성북동 한옥의 북쪽 벽을 천으로 재현한 것이다. 집도 휴대폰처럼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발상이 참으로 앞섰다.

 

작가는 뉴욕에서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가면서 어려서 몸을 편하게 눕혔던 성북동 집과 그 창호지 사이로 들려오는 새소리며 바람소리 그리고 사람이 북적거린 일상의 소리도 그리웠을 것이다. 그런 열망이 작품의 단초가 되어 물아일체의 동양미를 구현하려는 과정에서 이런 작품을 잉태한 것 같다.

 

한옥의 예술화로 미술의 새 지평 열다

 

서도호는 1991년부터 미국생활을 하는데 서울 집과 너무 다른 뉴욕 집에 살면서 쇼크를 받고 두 문화의 차이점이 뭔가를 오랫동안 고민한다. 그런 심사숙고 끝에 1999년 드디어 LA 한국문화원전시에서 '서울 집/LA 집'을 선보인다. 한옥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그는 그것을 세계인이 누가 봐도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예술로 전환시킨다.

 

1999년 작품이 업그레이드된 위 '서울 집'은 시뮬라크르 방식으로 한복에서 쓰는 여름용 견직물인 은조사(銀造紗)를 입히고 기둥, 창살, 서까래, 기왓장 등 일일이 바느질하면서 얼개와 모형을 갖춘 수작이다. 어머니 자궁 속처럼 편해 보여서 너무 좋다. 또한 살굿빛 모시두루마기로 만든 백남준의 유작 '엄마(2005)'도 생각나게 한다.

 

선녀를 연상시키는 쑥색의 우아한 색감은 특히 한국인의 감수성을 건드린다. 관객마다 동경하는 '집'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면서 신기루 같은 환영도 보여준다. 게다가 21세기의 투명성, 경쾌한 유연성, 빠른 이동성 같은 시대정신까지 담겨 있어 매우 현대적이다.

 

서도호의 디테일한 아름다움

 

서도호의 드로잉도 그렇지만 한복감으로 만든 전매특허품 같은 베를린 집 복도의 표본을 보면 그 디테일한 공법에 전율이 오고 소름끼칠 정도다. 문 손잡이며 수도관 등 소품도 마치 살아있는 것 같다. 한반도 옛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문화재의 재현이라고 할까.

 

오브제로서 서양가구를 이렇게 한복의 투명한 천으로 감싸니 그 감칠맛이란 뭐라 형용할 수 없다. 반투명 천에 한 땀 한 땀 박아서 만든 그 세심하고 꼼꼼한 한국 어머니의 손바느질 솜씨가 연상되고 그 정갈한 맵시가 찡하게 느껴진다.

 

집 통해 '나와 너, 우리'를 다시 묻다

 

이번에는 한국의 집과 서양의 집을 합친 형태로 만든 작품을 감상해 보자.

 

'집 속의 집 1/11'은 미국 집 안에 서울 집이 안긴 형태다. 작가도 미국문화의 충격에서 벗어나 이젠 거기에 익숙해졌다는 뜻인가. 서도호는 이렇게 집을 통해 시공간의 경계가 없는 디지털유목시대에 '나와 너 그리고 우리'는 누군지 되묻는다. 내가 남의 안에 있어도 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에서 이런 작품을 착상했으리라.

 

서도호는 이렇게 서울, 뉴욕, 런던, 베를린을 넘나들며 자신이 경험한 기억을 다른 공간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내린 결론은 나와 너의 정체성과 관계성이 상충되지 않으며 결국 동양과 서양이 서로 구별하거나 경계를 짓는다는 게 불가능함을 함의하고 있다.

 

동서의 충돌 녹여낸 융합의 미

 

'별똥 별'은 성북동 한옥이 태풍을 맞고 날아와 작가가 사는 뉴욕 브루클린의 서양 집에 박힌다는 엉뚱한 상상력에서 온 것이다. 이국에 살면서 동서의 거부감과 이질감, 갈등과 충돌이 있으나 오히려 그런 요소를 융합의 장으로 바꿔 역으로 창조의 원동력이 되게 한다.

 

실물 5분의 1 크기로 축소한 이 작품은 2009년 LA카운티미술관에서 첫 선을 보인다. 건물내부에 집 구조 등 동서의 다른 건축양식을 압축한 것이다. 디테일하게 재현한 속을 들여다보니 눈을 의심할 정도로 극사실적이다. 그 빼어난 수작업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런 참신한 발상은 대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다. 작가가 뉴욕생활을 하면서 다국적 다문화 경험이 누적되면서 생긴 것인가. 이걸 개인과 사회, 과거와 현재, 동서양문화, 개인기억과 집단기억이 함께 빚어낸 발명품이라고 명명해도 좋으리라.

 

미의 유혹자가 연출한 '문(Gate)' 시리즈

 

끝으로 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문' 시리즈를 살펴보자. 이 작품은 2006년 시애틀미술관에서 선보인 것인데 리움 버전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장소 특정적 전시의 묘미를 실감나게 맛보게 한다.

 

한국의 건축과 애니메이션을 환상적으로 결합하여 신세계를 펼쳐 보인다. 그 각별함은 역시 착시와 환영을 주는 그림자효과에서 온다. 그는 미의 유혹자로서 그만의 역량과 면모를 최대로 발휘하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음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서도호는 이렇게 우리 삶의 기억을 꿈처럼 펼치는 공간작업에서 우리가 그동안 소홀히 했던 우리 것의 진수를 되돌아보게 하고, 또한 질 높은 한국미의 체험이 우리문화와 가장 빠르게 소통하는 길임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우리 것을 더 소중히 여기면서도 더 창의적이고 세계적인 사유를 하도록 유도한다.

 

집을 옷처럼 짓는 작가 서도호(Do Ho Suh), 그는 누구인가

 

서도호는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뒤 미국으로 건너간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회화를, 예일대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서도호는 1990년대 초반 이후 세계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뉴욕 PS1 그룹전에 참여한 것이 2000년임을 생각한다면 이후 10여 년간 그의 활동은 눈부시다.

 

그의 지명도는 세계 대형미술관에서 1년에 15곳 이상에서 작품을 선보여야 할 정도로 세계적 작가로서의 위업을 발휘한다. 최근 한국작가 중 단연 돋보인다.

 

서도호는 2001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되었고 2010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도 초청되었다. 휘트니 미술관, 모리 미술관 등 세계 유수한 미술관에서 전시를 가졌고 현재 뉴욕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미술관, 휴스턴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덧붙이는 글 |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747-18 www.leeum.org 02)2014-6901, 입장료는 성인 7000원 초중고 4000원


태그:#서도호, #'집 속의 집', #'별똥 별', #'서울 집', #한옥의 예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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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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