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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났는데, 엄마는 지쳐서 쓰러져 있다. 아이는 어느새 속싸개를 풀어 헤치고, 젖을 달란다. 1개월까지는 밤마다 두시간마다 깨야 한다고 보면 맞다. 하루정도 3~4시간 자 줄 때가 있다. 감사하다. 그렇지만 다음 날은 1시간 간격으로 깰테니, 기대치를 낮추는 게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 엄마는 쓰러지고, 아기는 젖 달라고 혀를 낼름 아침에 일어났는데, 엄마는 지쳐서 쓰러져 있다. 아이는 어느새 속싸개를 풀어 헤치고, 젖을 달란다. 1개월까지는 밤마다 두시간마다 깨야 한다고 보면 맞다. 하루정도 3~4시간 자 줄 때가 있다. 감사하다. 그렇지만 다음 날은 1시간 간격으로 깰테니, 기대치를 낮추는 게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 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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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여덟 시 기상. 어젯밤 사투 때문일까? 정신이 몽롱하다. 옆에 누워있는 아내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있다. 혼수상태인 듯싶다. 오늘도 처자식을 위해 밥을 차려야 한다. 그래서 30분 먼저 일어난다. 2주째다.

승리감에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이 하나 있다. 바로 '하나'(아이 이름, 생후 3주)다. 볼록한 배를 보니 어젯밤 실컷 먹었나 보다. 하긴 시간마다 달라고 울어 댔으니. 싸주었던 속싸개도 풀어 헤치고 두 팔을 벌리고 대(大)자로 자고 있다.

'하나야! 네가 킹! 왕! 짱! 이다'

신생아 목욕시킬때 가제수건으로 눈, 코, 입, 볼, 이마, 얼굴 전체, 머리 순으로 얼굴을 씻긴다. 물의 온도는 체온에 맞춰야 아이가 놀라지 않는다. 아이들은 물소리를 좋아하지만, 오늘은 자던 걸 깨워서 그런지 "응아~!" 울어버린다.
▲ 신생아 목욕시키기 신생아 목욕시킬때 가제수건으로 눈, 코, 입, 볼, 이마, 얼굴 전체, 머리 순으로 얼굴을 씻긴다. 물의 온도는 체온에 맞춰야 아이가 놀라지 않는다. 아이들은 물소리를 좋아하지만, 오늘은 자던 걸 깨워서 그런지 "응아~!" 울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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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준비를 끝내고 아내를 부른다. 이때 하나도 같이 일어난다(너 부른 거 아니거든~!). 아내가 힘든 몸을 일으켜 식사를 할 때, 하나 몸을 말끔히 씻겨 주고 배냇저고리와 기저귀를 갈아준다. 아내가 식사를 맛있게 하고 나면, 가만있어도 젖이 흘러나온다. 알아챈 걸까? 하나는 여지없이 혀를 날름거린다. 텔레파시라도 주고받는 듯하다. 엄마의 신체적 변화를 읽는 능력은 뱃속의 10개월과 동일하다.

하나가 엄마를 찾으니, 엄마와 터치(임무교대). 요즘 잠을 설쳐서인지 밥맛이 없다. 아침은 거르고 바로 작업 투입이다. 좀 더 깔끔한 방으로 모시기 위해 청소부터 시작한다. 진공청소기는 전자파가 많이 나오고 소음도 있어 쓸 수 없다. 손 걸레질이 최고다. 어젯밤 사투의 흔적을 닦아 낸다. 여기저기 머리카락과 먼지를 쓸어내고, 내 손에 남겨진 것은 예닐곱 개의 축축한 똥 기저귀.

아내가 직장을 휴직하고, 모유 수유에 도전했다. 모유는 소화, 흡수에 좋고, 영양분과 면역체가 풍부하다. 소화기관 발달에 맞춰 6개월 동안 모유만 먹이고, 이유식은 그 이후에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물론 이유식도 직접 만들어 먹일 예정이다.
▲ 모유 수유를 하면 '황금빛 똥'이 나온다. 아내가 직장을 휴직하고, 모유 수유에 도전했다. 모유는 소화, 흡수에 좋고, 영양분과 면역체가 풍부하다. 소화기관 발달에 맞춰 6개월 동안 모유만 먹이고, 이유식은 그 이후에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물론 이유식도 직접 만들어 먹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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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들고 화장실로 간다. 화장실에는 어제 오후부터 미뤄온 기저귀 빨래가 한 아름이다. 오늘은 합이 18장. 보통이다. 처음에는 (쌀)때마다 비누칠해서 빨아 놓았지만 일주일도 안 되어 귀찮다. 수북이 쌓인 기저귀 빨래를 몰아서 한다. 어느 정도 색이 빠질 때까지 힘껏 빤다. 군대 이후 손빨래는 처음일 거다. 의식하지 못하는 찰나에 '한숨'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내가 말해주어 안 거다. 사나이가 선택한 길이 아닌가?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는 마음으로 신나는 노래를 불러본다. 다 빨았다. 이제 세탁기로 삶고, 헹구고 탈수까지 한다. 세탁기에 빨래를 집어넣고 나올 때면 뿌듯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화장실 일을 마치고 나면 10시. 주방으로 간다. 주방도 화장실과 다를 게 없다. 어젯밤에 미룬 설거지가 오늘 아침까지 더해져 개수대 안에 가득하다. 일단 감자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삶기 시작한다. 10시 반에는 간식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감자가 익는 동안 설거지 마무리(감자 익는 동안 하나가 날 찾았던 적이 있다. 기저귀 갈고 다른 것에 신경 쓰다가 냄비도 태웠다. 검뎅이의 씁쓸한 추억).

간식시간. 하나는 곯아 떨어졌다. 다행이다. 오늘은 감자와 두유를 먹었다. 유전자 콩으로 만든 두유 말고, 정상적인 콩으로 만든 두유다(생협에서 판다). 휴식도 잠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가 깬다.

* 여기까지 쓰는데, 하나가 다섯 번이나 불러주었다.

밥상차리기-기저귀빨래-간식만들기…

조산원에서 아기 목욕시키는 법을 배웠다. 체온에 가까운 온도에서, 가제수건(가제가 무슨 말인지 몰라 찾아봤다. 영어 거즈(gaze)에서 왔고, 일어식 표현인 듯하다)으로 눈 코 입 얼굴 머리 몸통 순서로 씻겨준다. 배꼽에서 계속 피가 나서 고생했다. 이유를 몰랐다. 이웃집 누나가 놀러 와서 알게 되었다. 물이 닿지 않게 씻겨주란다. 물이 닿으면 피가 나고, 진물이 나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 목욕 후에는 잘 말려주고, 배꼽은 알코올로 소독해 줘야 한다.

신생아를 배위에 놓고 재우면 편하게 잘 잔다. 이때 아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해 놓고 자도록 한다.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조그만 희망을 품고 자는 아빠는 행복하다.
▲ 엄마 가슴 다음엔 아빠 품 신생아를 배위에 놓고 재우면 편하게 잘 잔다. 이때 아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해 놓고 자도록 한다.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조그만 희망을 품고 자는 아빠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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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을 시키고 나면 또 젖을 달라고 쩝쩝 거린다. 엄마는 왼쪽 오른쪽 바꾸어 가며 젖을 물린다. 지금은 단번에 물지만, 초기에는 아내 가슴이 작아 여간 애먹은 게 아니다. 나는 하나 머리를 들이 밀고, 아내는 젖을 들이 민다. 한번 실랑이가 벌어지면 5~10분. 짧아 보이지만 정말 힘들다. 경험이 없다면 이해가 안 될 꺼다. 학창시절 손들고 서 있는 거랑 똑같다고 보면 비슷할지도. 하여튼 셋 모두 엄청 짜증난다. 아이와 함께 2주 정도 그 짓을 하다 보니, 이제는 능숙하다. 감사할 일이다.

맛있게 먹어주는 아내에게 감사

시계는 어느새 정오를 향해 가고 있다. 점심이다. 3주째 먹고 있는 미역국. 고기, 해물, 버섯, 사골 해봐야 4가지다. 아내는 좋으나 싫으나 계속 먹어야 하지만 감사하게도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하지만 나는 물린 지 오래.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가끔 라면도 혼자 끓여 먹는다. 꿀맛이다.

여기서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세탁기의 빨래는 이미 다 돌아가 있다. 깜빡 잊으면 저녁까지 간다. 지금 널어야 일광 소독이 가능하다. 탁탁 털어서 주름을 펴주고 볕이 잘 드는 곳에 내 놓는다. 집안에는 그런 곳이 없어 집 밖에다 내 놓는다.

하루에 20장 안팎의 천기저귀가 생긴다. 물로 똥을 닦아내고, 빨래 비누로 힘주어 똥물을 뺀다. 세탁기가 삶은 기능이 되어 이후에는 삶음세탁을 한다. 세탁기로 부터 아직 자유롭진 않은 것은 사실이다. 천기저귀를 쓰는데 우선 만족하고 있다. 

종이 기저귀를 안쓰는 대신 감수해야할 일이다. 한 아이가 자라는 데 쓰는 기저귀의 양이 숲 하나를 없앨 정도라고 하니 그렇게 했다. 더불어 경제적인 이유도 물론 있지만, 가장중요한 것은 아이를 위한 것이다. 천 기저귀를 쓰면, 쌀 때 마다 부모가 금새 알 수 있어 발진이나 요로가 덜 하다는 것. 두뇌 발달에도 좋다고 한다. - 효원이 잘 커요? (박기복, 살림) 참조.
▲ 기저귀 천 빨래하기- 빨래 후 널 때도 쫙쫙 펴서 널어야 갤때 편하다. 하루에 20장 안팎의 천기저귀가 생긴다. 물로 똥을 닦아내고, 빨래 비누로 힘주어 똥물을 뺀다. 세탁기가 삶은 기능이 되어 이후에는 삶음세탁을 한다. 세탁기로 부터 아직 자유롭진 않은 것은 사실이다. 천기저귀를 쓰는데 우선 만족하고 있다. 종이 기저귀를 안쓰는 대신 감수해야할 일이다. 한 아이가 자라는 데 쓰는 기저귀의 양이 숲 하나를 없앨 정도라고 하니 그렇게 했다. 더불어 경제적인 이유도 물론 있지만, 가장중요한 것은 아이를 위한 것이다. 천 기저귀를 쓰면, 쌀 때 마다 부모가 금새 알 수 있어 발진이나 요로가 덜 하다는 것. 두뇌 발달에도 좋다고 한다. - 효원이 잘 커요? (박기복, 살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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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한가하다. 2시 정도부터 책을 읽는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힘이 되는 이야기를 들어야 산후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산후조리, 육아관련 서적, 시사주간지, 월간지, 재미난뉴스 등. 삼칠일 전에 엄마가 책을 읽거나 모니터를 보면 눈이 나빠지기 때문에 내 목소리로 들려준다. 그래도 아이 때문인지 백과사전 두께의 육아 서적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모유에는 면역 항체, 천연 해독제가 풍부하다. 엄마 젖에 살아 움직이는 면역 요소로는 백혈구가 있다. 백혈구에 포함된 면역 요소(인터페론, 리소자임, 소염제 등)는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아내고 염증을 진정시키면서 아기 몸을 보호한다. 엄마가 어린 시절 극복했던 여러 가지 질병에 대한 항체도 아기에게 전달한다. 뿐만 아니라 모유수유는 엄마의 늘어난 자궁 수축 작용을 돕는다.' - 신토불이육아법 중에서

아이 상황이 매일 바뀌기 때문에 궁금한 것도 매일 생긴다. 마음이 가난한 거다. 삶과 연관된 공부를 하면 서른을 넘긴 머리도 십대처럼 돌아간다. '읽는 내용이 쏙쏙 들어온다!' 이 말이다. 이후 무조건 잔다. 낮잠은 산후조리를 지탱하는 힘이다.

지속가능한 시간은 30분?

아내와 나는 4시까지 푹(?) 잔다. 4시부터 반찬(숙주나물, 무나물, 콩나물, 호박전, 두부조림, 계란 장조림 등)을 만든다. 반찬은 매일 한 가지씩 준비해야 밥상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다행히 이웃에 사는 분들이 한두 가지 밑반찬을 가져주셔서 손을 크게 덜 수 있었다. 감사하다. 저녁 5시 반 식사시간이다.

저녁 시간 설거지를 마치고 쉰다. 3주 정도 되니 젖이 잘 나오고 해서 유축기로 젖을 받아 둔다. 긴긴 밤을 위한 것이다. 아내도 젖을 안 먹일 땐 회음부 소독을 하고, 간식을 먹는다. 놀러온 동네 친구들과 수다도 떤다. 드라마나 오락 프로도 한 편 정도 보며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30분 정도다.

지난 6월 17일 아내와 생일 축하를 했다. 아빠가 된 후 첫 생일이다. 딸 아이가 살아가기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해 본다. 노무현 대통령님 서거 정국 속에 산후조리-육아시기를 성찰하며 보내고 있다.
▲ 하나를 맞이하고 첫 생일을 맞는 아빠 지난 6월 17일 아내와 생일 축하를 했다. 아빠가 된 후 첫 생일이다. 딸 아이가 살아가기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해 본다. 노무현 대통령님 서거 정국 속에 산후조리-육아시기를 성찰하며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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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아이에게 전략적으로 젖 먹이는 시간이다. 12시까지 먹이고 나면 아이도 곯아떨어지고, 아내와 나도 곯아떨어진다. 하나는 우리를 몇 시에 깨울까? 예비 아빠에게 감히 충고한다면 기대치를 낮추는 게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우리는 내일 아침에도 혼수상태로 아침을 맞이할 테니. 아~! 밤이 두려워!

생명을 자라게 하는 과정은 무척이나 수고스럽다. 생명을 길러온 '모(母)성'이 새삼 존경스럽다. 그렇게 자라난 한 생명 생명은 그 만큼 소중한 것이다. 하나야! 지금의 추억, 깨달음 잘 간직할게! 엄마와 아빠 모두 '하나' 덕에 행복하단다.

그래도 하나(딸)의 얼굴을 보면 피곤이 싹 가신다. 생후 5-6개월 정도에는 '사회적 미소'를 짓는다고 한다. 무엇이냐면, 아이들 미소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는 발달이론이다.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나는 아직 사회적 미소를 보낼 줄 모른다. "어서 아빠에게 너의 미소를 쏴 다오!"
▲ 하나의 밝은 표정 그래도 하나(딸)의 얼굴을 보면 피곤이 싹 가신다. 생후 5-6개월 정도에는 '사회적 미소'를 짓는다고 한다. 무엇이냐면, 아이들 미소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는 발달이론이다.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나는 아직 사회적 미소를 보낼 줄 모른다. "어서 아빠에게 너의 미소를 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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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수동 마을신문 www.welife.org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산후조리, #아빠의 하루, #황금빛 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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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일들, '밝은누리'가 움틀 수 있도록 생명평화를 묵묵히 이루는 이들의 값진 삶을 기사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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