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국 상·하원은 자동차회사인 GM·포드·크라이슬러(이하 '빅3')를 위한 구제금융 가능성을 두고 18일과 19일에 걸쳐 청문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빅3 회장들과 전미 자동차 노동조합(이하 'UAW') 의장은 민주당 의원들로부터도 많은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심지어 일부 의원들은 빅3 CEO 세 명에게 워싱턴에 올 때 회사 전용기를 이용했는지 따져 물었고 그런 정신 상태로 250억달러를 달라고 하면 누가 주고 싶겠느냐며 심한 질책을 했다.

 

빅3에 대한 구제 금융을 반대하는 측은 현재의 위기가 경제 침체 때문이 아니라 자동차 업계 자체의 구조적 문제와 경영진의 무능 그리고 노동자(특히 노조)의 높은 임금과 수당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한 자동차업계의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이지 전국가적 문제가 아니며 혈세로 이들의 무능을 덮어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돈을 준다고 개선될 빅3가 아니며. 그런다 한들 사망선고 시한을 조금 연장하는 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찬성파는 빅3가 파산하면 자동차업계와 연관된 300만 여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자동차 부품 업체를 포함한 제조업이 동반 파산할 것이며, 미 전역 1만여 개의 자동차 판매회사 또한 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미시간의 민주당 상원인 칼 레빈은 1970년대 정부가 크라이슬러에 구제 금융을 지원해 성공한 바가 있고 현재 유럽 연합도 자동차 산업에 구제 금융을 지원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특히, 파산 이후 피해를 고려해 볼 때 7000억 달러의 3.7%일 뿐인 250억 달러를 할애하지 못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혈세로 무능 덮을 수 없어" vs "구제금융 지원한 전례 있어"

 

정부 구제안을 반대하는 측에서 꾸준히 제기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자동차 노조원들이 받는 임금과 수당에 대한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16일 ABC방송에 출연해 "자동차 노동자들이 지나치게 높은 임금과 수당을 받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받고도 좋은 차를 만드는 독일과 일본 노동자들과 비교하며 문제를 삼았다.

 

도이치뱅크 자료에 따르면 GM 노동자가 받는 임금 및 수당은 시간당 71달러이지만 도요타는 47달러. 2005년 이래 GM은 퇴직가족보험을 위해 약 320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

 

그렇지만 UAW의 론 게텔핑거 노조위원장은 "78만명 이상의 은퇴 직원들과 그 부양 가족에게 건강 보험을 지급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한 현 위기의 원인이 경기 침체와 그로 인한 소비 위축에 있는 것이지, 노동자들의 높은 임금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빅3는 이미 파산 후에나 있을 법한 노동계약 조건을 노조에게 제시했고 노조는 이를 대폭 수용했기 때문이다. 수당을 제외하고 현재 조합원들이 받는 임금은 시간당 27달러 정도라는 것이다.

 

UAW 워싱턴DC 노조지부장은 ABC와의 인터뷰에서 "UAW가 이미 2005년과 2007년에 큰 양보를 했으나 사측은 어떠한 경영상의 개혁과 변화도 모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가장 최근 사측과 맺은 계약에서 UAW는 퇴직 근로자에 대한 연금 지급을 회사 대신 떠맡았고 건강 보험과 임금의 단가를 낮추는 데 동의한 바 있다.

 

UAW는 어떤 일이 있어도 빅3가 파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파산 신청을 하면 법원에 의해 새로운 노동 계약이 작성될 것이고 현재의 노동계약 자체가 무효화돼 노동자의 지위가 더더욱 절박한 상황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UAW의 조합원은 지난 3년간 절반으로 줄어든 14만명으로, 노조는 2007년 새로운 계약서 체결 당시 사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많은 조합원을 정리한 바 있다. 지난 여름 빅3는 UAW 조합원을 상대로 대대적 명퇴를 장려했고 명퇴한 조합원 자리를 시간당 임금을 받는 비조합원들로 메우는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금융위원장인 바니 프랭크 민주당 의원은 "자동차 업계의 노동자 임금을 현 위기의 원인으로 몰고가서는 안 된다"면서 AIG 구제 금융 당시 어느 누구도 AIG 직원의 급료와 수당에 대해 문제삼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사이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먹해질 수밖에 없는 오바마와 UAW

 

빅3에 대한 구제 금융이 승인된다 하더라도 UAW에 대한 정부와 업계의 '칼날'은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해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UAW는 오바마 승리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오바마 캠프에 9000만 달러를 기부했을 뿐 아니라, 백인 블루칼라 밀집지역 미시간과 오하이오에서 오바마가 승리한 배경에는 UAW의 공이 크다.

 

만약 현 의회가 구제안을 통과시키지 못한다면 해결의 열쇠는 오바마 행정부로 넘어가게 되고 오바마의 입장은 매우 난처해질 수 있다. 국민 정서상 빅3의 파산은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정부가 UAW에 금전적 지원을 하는 것에도 대부분 반대하기 때문이다.

 

<구제금융 국가>의 저자인 베리 리톨즈는 이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 오바마가 부시 대통령으로 하여금 구제안을 통과시키게 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대통령은 한 번에 한 명뿐"이라며 부시 대통령을 존중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동시에 여러 경로를 통해서 빅3에 대한 구제를 직·간접적으로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제 금융을 지원한다고 해도 오바마와 UAW의 관계는 서먹해질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노조의 연금·건강보험·임금을 삭감하지 않고 업계를 성공적으로 구제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노조의 개혁과 더불어 현 위기의 큰 원인이 된 경영진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도 수반될 것이다.

 

지역구 위치에 따라 빅3 구제안에 대한 견해 달라져

 

지난 9월 말, 7000억달러의 금융 구제안 논의를 위해 백악관에서 회동이 있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신없이 바빴던 매케인 후보가 선거 유세까지 중단하고 참석했던 것으로 미루어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제일 먼저 회의장에서 나와 자신은 구제안을 결사반대한다고 기자들에게 외쳤던 인물이 바로 공화당의 리처드 셸비 의원이다.

 

빅3 구제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대표적 인사로 꼽히는 그는 앨라배마주의 공화당 상원의원이다. 그가 정부의 시장개입에 대해 철저히 반대하는 것도 한 이유지만 앨라배마의 정치·경제적 역학 관계 또한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앨라배마'는 해외파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메르세데스·혼다·현대 등의 현지 공장과 부품 공장을 유치함으로써 '디트로이트'로 대변되는 빅3와 대립각을 이루고 있다. 노조가 발달한 미시간·오하이오의 자동차 산업과는 달리 앨라배마는 대부분 노조가 없는 것도 대립되는 부분이다.

 

이웃한 조지아 주의 기아 공장이 곧 가동을 시작하면 앨라배마 노동자들이 대거 고용되는 것도 또 다른 배경이다. 미국 남동부에 위치한 앨라배마가 미국 자동차 산업의 또 다른 '허브'인 셈이다.

 

셸비 의원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앨라배마의 외국차 회사들 역시 저에너지효율 자동차를 생산하지만 그가 이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이 공장에서는 '기름 먹는 하마'인 각종 SUV와 트럭 - 메르세데스의 M클래스, 혼다의 파일럿, 현대의 산타페, 도요타의 타코마·툰드라 등 - 이 생산되고 있다.

 

지역구 산업을 지키기 위해 당의 노선을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민주당 의원들이 빅3 구제안에 찬성하지만 앨라배마에서 당선된 바비 브라이트는 강력한 반대를 표하고 있다. 현대의 공장이 위치한 몽고메리시의 시장을 역임한 그는 자신이 대표하게 될 지역구 내에 6500여명의 현대차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

 

복잡한 역학관계의 자동차 산업

 

그렇다면 과연 미시간의 손해가 앨라배마의 이득으로 환원될 것인가? 17일자 <뉴욕타임스>는 빅3가 파산하면 외국산 자동차가 빈 자리를 메우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켄터키에는 한 개의 도요타 공장과 두 개의 포드 공장 그리고 GM 공장이 하나 있다. 테네시에는 GM 공장과 닛산 공장이 있고, 앨라배마에는 외국차 공장뿐 아니라 빅3와 현대 및 닛산에 부품을 공급하는 수많은 공장이 있다.

 

빅3의 조립·부품 라인이 밀집된 곳은 미시간·오하이오·인디애나지만, 빅3는 다른 많은 주들과도 거래하고 있다. 포드는 작년 한해 동안 부품 구입을 위해 앨라배마에 20억 달러, 켄터키에 35억 달러를 지불했다.

 

미국 자동차 업계의 위기는 비단 빅3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2008년 10월 현재 기름 값이 현저하게 떨어졌음에도 신용 경색과 경기 둔화로 미국내 자동차 판매율이 지난 25년이래 최악을 기록했다.

 

업계의 자동차 판매량을 조사하는 '오토데이터'에 의하면 10월 자동차 판매량은 1983년 2월 이래 최하인 1060만대다. 최악의 판매부진은 GM(-45%)·포드(-30%)·크라이슬러(-35%)등이지만 업계 2위인 도요타(-23%)와 혼다(-25%)·닛산(-33%)도 전년도에 비해 하락을 기록했다.

 

한 자동차 전문지는 "앨라배마의 현대차 공장이 재고량 조절을 위해 일일 생산량을 줄이고 있고, 앨라배마에서 생산된 산타페 SUV의 판매량은 전년도의 절반에 그쳤으며, 지난달 출시된 신형 소나타는 작년 대비 20%의 판매율 하락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만약 미국 정부가 빅3에 대한 구제안을 승인한다면 그 혜택이 빅3에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앨라배마의 메르세데스-벤츠 공장은 독일의 다임러 AG가 소유하고 있고 이 회사는 크라이슬러의 일부도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구제안이 받아들여진다면 그 혜택은 다임러도 받게 될 것이다.


태그:#미국, #자동차산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