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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을 잘 서야 된다'는 말이 있다. 실력자와 가까워야 내 신세가 편해진다는 말이리라. 이 말은 비단 사람에게만 통하는 말은 아닌가 보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아닌 나무도 줄을 잘 서야 몸이 편해지나 보다.

 

우리 집에는 나무들이 제법 많다. 집 울타리 안에도 나무들이 있지만 집 뒤가 바로 산이라서 나무라면 원없이 보며 산다. 그런데도 우린 나무 욕심을 부렸다.

 

해마다 봄이 되면 몸이 근질거렸다. 더 이상 나무를 심지 말아야지 그러면서도 봄만 되면 나무시장 근처를 기웃거렸다. 그리고는 엄지손가락 굵기의 어린 애동 나무들을 사다 심었다.

 

 

그런데 그 나무들이 그대로 있나 어디. 심을 때는 엄지손가락 굵기여서 자리 차지를 안 하지만 몇 년 지나면 제법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존재 가치가 희미하던 나무들이 어느 새 자라서 우뚝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다. 시골살이의 진정한 멋은 여유와 여백인데 이제는 마당이 답답해 보일 정도로 나무가 많다.

 

이제 우리는 솎아낼 나무들을 찾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금만 눈 밖에 나면 그 나무는 퇴출 대상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차마 나무를 베어내지는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한다. 

 

집 울타리 안에는 큰 나무를 두는 게 아니라는데

 

본래 집 울타리 안에는 큰 나무를 두는 게 아니라고 한다. 나무 그림자가 져서 집안이 어두워질 뿐만 아니라 큰 바람에 나무가 쓰러지며 집을 덮치면 재물의 손해는 물론이고 사람이 다칠 수도 있으니 큰 나무를 두는 게 아니라고 하셨을 거다.

 

하지만 우리는 느티나무를 심고 싶었다. 느티나무가 다 자라면 얼마만큼의 자리를 차지하는 지는 계산에 두지도 않았다. 나무가 자라면 그늘이 많이 생길 테고 그러면 그 그늘 밑에 평상을 갖다놓고 쉴 수 있겠지 하는 그 생각 하나로 느티나무를 사다 심었다.

 

느티나무를 살 때 덤으로 얻은 나무가 몇 그루 더 있었다. 그 농원은 느티나무를 키워서 파는 곳이었는데 주인 눈에는 나머지 나무들이 돈이 될 나무로 보이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우리더러 마음에 드는 나무가 있으면 거저 가져가라고 그랬다.

 

우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나무 캐는 일은 중노동 중의 중노동이었다. 나무들을 포크레인으로 일부 캐놓은 상태였는데도 그 나무들을 옮기는 작업이 장난 아니게 힘들었다. 장정 서너 명이 달라붙어서 목도를 놓아야 겨우겨우 옮길 수 있을 정도로 느티나무들은 무겁고 컸다.

 

 

 

느티나무 세 그루를 차에 옮겨 싣고나자 나자 장정들 목에서는 쇳소리가 났다. 농원 한 쪽 귀퉁이에 꽃사과 나무와 라일락 나무 그리고 목련 나무가 보였다. 그 나무들은 느티나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일이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또 나무들을 캐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집에는 그 해 봄에 느티나무 세 그루와 꽃사과나무 두 그루 그리고 목련 한 그루와 라일락 나무 한 그루가 더해졌다.

 

처음에 자리를 잘 잡아야 존재감을 얻는다

 

나무를 심을 때 물론 심사숙고했다. 나무는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옮겨 심기가 쉽지 않은 물건이므로 나름대로 궁리를 많이 했다. 하지만 다음 해 봄에 보면 그 자리가 영 마뜩찮았다. 그래서 옮겨 심고 또 옮겨 심었다. 그 와중에 목련과 라일락 나무는 죽어 버렸다. 느티나무 한 그루도 저 세상으로 먼저 갔다.

 

꽃사과나무를 심을 때는 사실 별 생각없이 심었다. 느티나무가 중심이었지 꽃사과나무는 따라온 나무였을 뿐이었기 때문에 별 고민없이 자리를 잡아주었다.

 

한 그루는 그나마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그 나무는 오가며 쳐다볼 수 있는, 그야말로 명당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주인의 눈길을 받으면서 사랑 속에 컸다. 하지만 또 한 그루 꽃사과나무는 하수구 물이 흘러가는 한 쪽 모퉁이에 심겨졌다. 그래서 잘 크는지 어떤지 관심조차 제대로 한 번 받아보지 못했다. 줄을 잘 서지 못한 그 나무는 있는 지 없는 지 존재감조차 없었다.

 

그나마 그 나무는 생기기도 참 밉상으로 생겼다. 어떻게 생긴 나무가 심은 지 서너 해가 지나도록 꽃다운 꽃 한 번 안 피우는 거였다. 또 다른 한 그루는 봄이면 아롱아롱 꽃을 피우는데 구석쟁이 그 꽃사과나무는 꽃이 없었다.

 

 

또 그 나무는 어떻게 된 나무인지 전지를 하느라 잔가지들을 잘라주면 이듬 해 봄에 자른 그 부위 근처에서 더 많은 줄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다. 곱상스럽게 생긴 다른 꽃사과 나무는 꽃도 피우고 열매도 달리고 그리고 전지를 해주면 해준 그 모양 그대로 있는데 이놈의 나무는 밉다니까 더 미운 짓만 골라 하는 거다.

 

그래서 늘상 그랬다. 이 놈의 나무 잘라버릴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나무인데 뭐하러 놔둘 거냐 그러면서 없애버리자고 그랬다. 하지만 그 나무는 미움을 받으면서도 굳굳하게 살아갔다. 제 멋대로 가지를 뻗고 키를 키우면서 잘도 버텼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올 봄에 그 나무가 안 하던 짓을 했다. 미운 오리 새끼 같던 그 꽃사과나무가 꽃을 피운 거다. 그거도 보통으로 꽃을 피운 게 아니라 완전 '눈의 여왕'처럼 온 전신에 하얀 꽃을 달았다. 천덕꾸러기 꽃사과나무가 비로소 유리구두를 신고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유리구두 신고 춤추는 꽃사과나무

 

지난 겨울에 친정 아버지가 우리 집에 잠시 와계셨는데 그 때 아버지는 소일 삼아 나무들을 전지하셨다. 그냥 대충 눈대중으로 찔끔찔끔 가지를 잘라주던 우리와는 달리 아버지는 전문가의 솜씨로 나무들을 잘라주셨다.

 

사실 우리 아버지는 전지 기술자다. 예전 나 어릴 때 우리 집엔 사과밭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전지를 다 하셨다. 아버지는 천 평도 더 되는 사과밭의 나무들을 손수 다 하셨다.

 

아버지가 손을 대니 나무들 인물이 확 바뀌어졌다. 자를 건 과감하게 자르고 키울 건 또 키워주니 나무는 한결 간결해지고 몸이 가벼워졌다.

 

쓸데없는 것들을 버려서 그랬는지 이듬 해 봄에 우리 집 나무들은 제대로 꽃을 피우고 열매들을 달았다. 존재감없던 그 꽃사과나무도 비로소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꽃이 지자 열매들이 달렸다. 열매들은 차츰 몸피를 키웠고 가을이 되자 제각각 물들어 갔다. 관심을 별로 못 받던 그 꽃사과나무도 빠알간 열매들을 수도 없이 달았다.

 

 

기다리다 보면 좋은 때가 와

 

꽃사과나무에 달린 열매를 보자 남편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 열매를 말려서 찻물에 우리면 향이 그렇게 좋다며 따서 말리자고 한다. 그래서 생각이 날 때마다 툭툭 한 마디씩 던지곤 했다.

 

"여보, 꽃사과 따서 좀 말리지? 그거 썰어서 말리면 차로 마실 수 있는데 좀 해 보지 그래?"

 

차를 좋아하는 남편 눈에는 모든 게 다 차 재료로 보이는 모양이다. 하지만 과일 효소를 담는 데 재미를 붙인 내 눈에는 꽃사과 열매가 과일 효소 담기에 딱일 거 같이 보였다. 그래서 남편의 은근한 호소를 무시하고 과일 효소를 담기 위해 꽃사과를 따기 시작했다.

 

'차는 자기 혼자만 좋아하지만 효소는 식구 모두가 먹을 수 있는 건데... 그래, 효소 만들어야지.'

 

마당엔 가을 햇살이 자잘하게 꽂힌다. 햇살이 미치지 못하는 그늘진 곳에서는 과일 효소들이 익어간다. 저마다의 사연과 저마다의 맛을 가지고 효소들은 내년 봄에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그 때 꽃사과 효소는 어떤 얼굴로 우리를 찾아올까? 

 

새콤하면서도 달콤하고 그러면서 또 다른 색다른 맛을 가지고 꽃사과 효소가 우리를 찾아온다면, 꽃사과나무는 자리를 잘못 잡아서 천덕꾸러기로 살아온 날들을 보상받을 수 있겠지. 관심 밖이었던 그 꽃사과나무는 관심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으리라.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때가 온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내 가슴 속엔 벌써 상큼하고 향기로운 꽃사과 맛이 느껴져 온다. 꽃사과나무가 새로이 태어날 그 때를 조용히 기다려본다.


태그:#꽃사과나무, #과일 효소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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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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