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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벌써 고사리를 꺾는 사람들의 차량이 제주 곶자왈 근처 여기저기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사람들의 손에 고사리들이 한 줌씩 들려 있는 것을 보면 고사리 꺾는 것이 제주의 또 하나의 삶의 풍경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듯싶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고사리는 여기저기서 무럭무럭 자라나며 많은 사람들에게 심심찮은 소일거리를 제공하겠지.

▲ 목이
ⓒ 고평열
비가 오면 반가워하는 것이 고사리를 꺾는 사람들뿐이랴. 생명을 다한 숲 속의 나무에 물이 오르도록 충분한 비가 내려주면, 겨우내 침잠해 있던 균사체들이 기지개를 켤 것이다. 봄은 식물의 꽃만 피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버섯의 꽃도 피어나게 한다. 그래서 봄비는 나에게도 기다림의 대상이다.

▲ 털목이
ⓒ 고평열
저 멀리 보이는 한라산의 정상 인근엔 아직도 녹지 않은 잔설이 보이지만, 버섯을 찾기 위해 봄이 무르익은 곶자왈로 들어섰다.

▲ 좀목이
ⓒ 고평열
제주의 봄은 해풍에 실려 해안가로부터 들어오는 듯하나, 버섯에게 있어 봄은 곶자왈에서부터 찾아든다. 적절한 습도와 균열이 간 바윗돌 사이사이로 스며 나오는 땅 속의 온기가 곶자왈 속의 봄을 재촉하기 때문이다.

▲ 꽃흰목이
ⓒ 고평열
말랑말랑한 젤라틴질의 육질에 아직 습기가 촉촉이 젖어 있다. 탕수육이나 짬뽕 같은 중국요리에서 자주 맛볼 수 있는 거무스름한 버섯인데, 600년경부터 중국에서 재배가 시작되었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 있어 인간과 가장 오랜 세월 가까이 해 온 것이라 여겨지는 목이 버섯이다.

▲ 혓바늘목이
ⓒ 고평열
순백색의 흰목이, 노란빛이 고운 황금목이, 시커먼 외양이 먹을 것 같지 않지만 식용인 좀목이, 오돌토돌 돌기가 돋아 있는 혓바늘목이, 붉으죽죽한 붉은목이, 털이 뽀송뽀송한 털목이 등등 목이는 그 종류도 다양하다. 대개의 목이는 식용하며 약용한다. 한국인들에게는 그다지 인기가 높은 버섯은 아니지만 중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식용버섯으로 각종 요리에 많이 쓰인다.

▲ 혓바늘목이-백색형
ⓒ 고평열
목이를 찾아 들어섰던 곶자왈은 이제 머지않아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지역이다. 바위를 밀어 붙이고, 나무를 자르고, 잔디를 덮어 매끈하게 만들어서 그 위에서 골프를 친다고 한다.

▲ 붉은목이
ⓒ 고평열
버섯을 찾는 사람의 눈에는 가장 먼저 목이가 눈에 띄지만, 사실 곶자왈 속엔 희귀종의 곤충들, 조상 대대로 생활의 근원이 되어온 나무들과 온갖 꽃들이 어우러져 함께 살고 있다. 산벚나무꽃이 흐드러져 있으며, 까마귀밥여름나무, 큰구슬봉이, 복수초 등이 짙은 봄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 아교좀목이
ⓒ 고평열
봄을 맞이해 늘 그렇듯이 연초록 새싹을 피워내고 있는 곶자왈의 나무들을 보면서, 내년부턴 그 곳에 머무는 모든 생명들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인간이 생존을 위한 해답으로 내놓을 수 있는 것이 꼭 골프장밖에 없을까.

▲ 황금목이
ⓒ 고평열
나무가 자라던 자리에는 이름도 어려운 외제잔디가 덮여 자랄 것이고, 삼삼오오 짝을 이룬 사람들은 곶자왈을 밀어 수십 만 년 세월의 흔적을 묻어버린 그 곳에서 웃음꽃을 피울 것이지만, 버섯의 균사체는 빛을 볼 수 없는 지하세계에 갇혀 다시 숲이 이루어질 그 세월이 올 때까지 침묵의 봄을 해마다 맞이할 것이다.

▲ 흰목이
ⓒ 고평열
다만 두려운 건 공존의 법칙을 도외시한 자연의 개발은 결국 함께 자멸할 뿐일 것이라는 그 무서운 경고가 들리는 것 같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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