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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위원장
ⓒ 사진공동취재단
'공개적 극비리' 속에 이루어지고 있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세계적으로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

1월 초순부터 중국 동북 지역에 '김정일 방중설'이 유포되더니, 지난 9일에는 중국 단둥역은 물론 선양역에까지 일반인의 접근이 차단되고 압록강에서도 유람선 및 보트의 운항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었다. 10일 오전 6시 10분 단둥역에 도착한 특별열차에 김정일 위원장이 탑승했다는 사실을 단둥역 관계자가 확인까지 해 주었으나, 그 특별열차는 선양을 거쳐 랴오둥반도(요동반도) 남단의 항구도시 다롄으로 가고 말았다.

특별열차가 베이징을 향할 것이라던 당초의 예측이 빗나가자, 이번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상하이를 방문할 것"이라느니, "베이징 옆의 텐진에 그냥 있을 것"이라느니, 심지어는 "11일 중국을 거쳐 러시아로 떠난 것으로 보인다"느니(영국 로이터통신) 하는 등등의 추측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김정일 위원장이 이미 9일에 비행기를 타고 상하이로 향했다"는 보도가 나오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광저우·선전·우한을 방문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제 김 위원장의 행보에 관한 보도는 덩샤오핑의 '남순 코스'를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는 단계에 이르렀다.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국제적 관심을 끌기 시작한 지 4일이 경과한 지금 시점에서, 국제사회는 북한 지도부가 김 위원장의 초기 행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공개적 극비리' 속에 이루어지는 '연출'을 통해 북한 지도부가 얻으려는 효과가 어떤 것인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난 4일간 한국 등 세계 언론이 김 위원장의 행보를 집중적으로 취재·보도하는 과정에서, 북한 지도부가 의도한 메시지 가운데 2가지가 미국 등 국제사회에 전달되었다.

첫째, 달러 위조 의혹을 앞세워 북한 경제를 압박하는 미국을 상대로 김정일 위원장은 일종의 '여유'를 과시했다. 김 위원장이 덩샤오핑의 '남순 코스'를 모방하고 있다는 메시지는 미국의 경제 제재에 대한 북한의 '답변'을 보여 주는 것이다.

지금 미국이 북한에 가하는 경제 제재는 '단기간'의 효과를 목표로 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남순 코스'를 밟고 있다는 메시지가 국제사회에 전달되고 있다. 그런데 '남순 코스'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장기간'을 요하는 경제개혁이다.

미국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포기시키기 위해 '단기간'을 목표로 한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장기간'을 목표로 한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세계 언론을 통해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김정일'과 북한이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으며 앞으로 얼마든지 극복해 나갈 '여유'를 갖고 있다는 자신감을 미국과 부시 행정부에 전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6자회담 무대에서 국제적 연대를 통해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미국을 상대로 김 위원장은 '북-중 공조'를 과시했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과정은 북-중 양국의 상호 신뢰와 협력 없이는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달 초순부터 북-중 국경지대에서 '김정일 방중설'이 유포되었다. 그리고 단둥역과 선양역 부근의 삼엄한 경비나 압록강의 선체 운항 금지 그리고 단둥역 관계자의 발언 등은 양국 간의 긴밀한 밀착 없이는 쉽게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다. 또 중국 외교부 쿵취엔 대변인은 '김정일'의 방중 사실을 부인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속 시원한 대답을 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국제사회에 보여 주고자 하는 '장면'들은 중국측의 협력 하에 '쉽사리' 그리고 '빠짐없이' 노출되고 있다. 다분히 '통제된 노출'로 명명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겠다. 위에서도 강조한 바와 같이, 이러한 '공동 연출'은 최근 수개월간의 양국 간 밀착이 없었더라면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경우에 따라서는 중국측이 북한과의 밀약을 깨고 미국측에 정보를 넘겨줄 가능성도 상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쉽게 믿기 힘든' 절박한 상황에서 북한이 중국측과 공동으로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측에 대해 상당한 신뢰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뢰감이 있기 때문에,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과의 합작 '드라마'를 통해 미국 앞에서 북-중 공조를 과시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그는 중국이 북한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줌으로써, 대북 압박정책이 무용한 것임을 부시 행정부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중국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신뢰가 확고부동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북한이 건국 이래 최악의 위기에 처했던 1990년대 초반의 '핵 위기' 때에 중국이 북한을 배신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한편으로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을 경계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중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점도 주시하고 있다. 그는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만큼은 중국 역시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북-중 공조를 선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다. 미국 견제에 관한 한 북·중 양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보기 때문에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북한이 중국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의 핵우산을 뚫고 통일을 이룩하려면 북-중 공조가 아닌 남북 간의 민족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지만, 남측이 민족공조와 한미공조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민족공조에 큰 기대를 걸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있다. 만약 민족공조를 확실히 신뢰할 수 있었다면, 그는 이번 같은 경우에 중국 대신 남측을 방문하였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처럼 민족공조가 불철저한 상황에서는 남북공조보다는 북-중 공조를 통한 대미(對美) 견제가 더 효율적이라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의 대북 압박이 가중되는 상황 속에서 중국 방문 초기의 행보를 통해 (1)북한은 미국의 경제제재를 극복할 여유를 갖고 있다는 점과 (2)북-중 공조로 미국의 국제적 포위를 뚫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물론 그가 위와 같은 상징적 메시지만을 전달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것은 아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이 같은 상징적 측면(1차 메시지)뿐만 아니라 실질적 측면(2차 메시지)도 있다. 이번 중국 방문의 실질적 측면은 이후 일정을 통해 더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세계적인 관심 속에 이루어진 '김정일'의 중국 방문 4일간의 '활동'이 보여 준 것은, 미국과 부시 행정부의 대북 압박에 맞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특유의 자신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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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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