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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의 나무는 푸르지만 회화나무는 겨울 고목처럼 말라있다.
ⓒ 황평우
덕수궁(경운궁)터에 미국 대사관과 대사관 직원 숙소를 짓겠다던 미국측의 목소리는 한풀 기가 꺾인 듯하다. 엊그제 새 장소로 용산이 거론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우리는 옛 경기여고터(덕수궁 선원전 자리)가 궁궐이었다는 중요한 지표가 되는 300년 정도로 추정하는 회화나무 한 그루를 기억한다.

모든 언론이 옛 경기여고터를 촬영할 때나, 미국 대사관 신축문제가 나왔을 때마다 외롭게 홀로 고통의 세월을 감내한 회화나무를 고맙게 생각했었다.

봄이 되면 연록색에서 청록색으로 이어져가는 회화나무의 싱싱함을 보고 반가워할 틈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덕수궁터에 있는 회화나무는 달랐다.

나는 잘 있을 터이니 제발 대형건물(미 대사관) 신축만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너무 고마웠다. 잘 살아있어서, 당당해서, 건강해서 고마웠다는 것이다.

2001년, 2002년, 2003년 이 터에 미국 대사관과 아파트를 짓겠다고 했을 때 우리는 이 회화나무의 중요성(궁궐의 지표석)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당당하게 끝까지 살아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덕수궁 주변을 돌아보면서 회화나무가 살아있음에 나는 희망이 살아 있음을 마음으로 확인했었다. '할아버지 나무여! 고마워요'라면서….

▲ 고목은 속이 비는 경우가 있다. 이 틈에 불을 질렀다.
ⓒ 황평우
▲ 회화나무 틈을 보면 이미 숯검댕이로 변해있다. 무려 3m가 넘는 방화 자국이 보인다.
ⓒ 황평우























2004년 4월 26일 덕수궁 주변을 걸어가는데 회화나무에 잎이 없었다. 순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 나무는 나에게 도와 달라는 손짓을 처절하게 했으나, 미국 정부 재산을 지키는 우리 경찰은 나를 제지하였다.

2004년 5월 5일 굳게 마음을 먹고 다시 할아버지 나무에 갔다. 경찰에게 나무를 보러왔다고 하며 들어가서 살펴보니 할아버지 나무는 거의 다 죽어 있었다.

▲ 방화로 말라죽은 회화나무! 그 생명을 다했다. 마치 조선의 역사처럼!
ⓒ 황평우
마치 골다공증으로 뼛속이 비어 있는 내 어머니의 몸처럼, 세월의 흔적과 우리의 무관심으로 비워 버린 할아버지 나무 둥지의 빈 곳 속에 고의로 누군가 불을 지른 것이다.

시커멓게 타버린 내 어머님의 속처럼, 할아버지 나무의 속도 타버렸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인간이 미웠을까! 이 자리에 어마어마한 건물을 짓겠다더니, 그것도 모자라 불태워버린 짓은 할아버지 나무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2003년 11월 발간한 덕수궁터 문화유적 지표조사 보고서 18, 19쪽에는 자연문화재로서 "옛 경기여고 교정의 한 가운데에 회화나무 한 그루가 위치한다. 수종은 회화나무로 알려져 있으며 식생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라고 분명히 '자연문화재'라고 보고하고 있다.

당시 연구조사위원장인 정영호 단국대 박물관장은 5일 필자와의 전화통화에서 2003년 6월 현장조사에서 "회화나무가 싱싱하게 살아있었고, 너무 기뻐 동행한 조사연구위원들과 사진을 찍으며 잘 살아줘서 고마웠고, 앞으로도 잘 살아주기를 학수고대했다. 회화나무가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정말인가? 정말인가?"하며 통탄할 일이라고 했다.

▲ 회화나무 주변에는 불탄 가지와 담배꽁초가 널려있다.
ⓒ 황평우
누가 불을 질렀을까? 그 자리는 우리 경찰들이 24시간 방범을 서는 곳이다. 다만 아주 어렵게 새 순이 하나둘 나고 있다는 것에 희망을 걸고 있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마지막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 과연 살릴 수 있을까?

회화나무는?

학 명 : Sophora japonica L.
과 명 : 콩과
특 징 : 낙엽, 활엽 큰키나무, 8월에 유백색 꽃, 10월에 염주처럼 잘록한 열매
쓰임새 : 가로수, 정원수, 약용

회화나무는 예전부터 고궁이나 서원 혹은 고택에서 보아 오던 나무다. 요즈음은 공원에도 가로수로 더러 보이는 나무다. 본래는 중국이 원산지이지만 우리와 함께 한 역사를 더듬어 볼 때, 이 땅에 흘러와 산 세월이 길어 우리 나무라 하여도 흠이 될 것은 없다.

예로부터 이 나무를 심으면 집안에서 학자가 나오고, 이름을 얻는다고 믿었으며 관직에서 물러날 때 이를 기념하여 심는 나무로도 알려져 있다. 또 회화나무 3그루를 집 앞문에 세워두면 행복이 찾아 온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이 비약을 하여 서울 압구정동의 가로수가 회화나무인데 그 때문에 이 동네에 부자가 많다고 쑥덕이는 이들도 있다. 옛 기록에는 이 나무를 한자로 쓸 때 괴수(槐樹)하고 하는데 느티나무를 두고 괴(槐)자로 쓰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이 한자가 나오는 곳은 실제로 가 보면 회화나무가 있기도 하고 느티나무가 있기도 한다.

예를 들어 높은 관직을 얻은 신하의 별칭이 괴문(槐門)일때는 회화나무를 말하는 것이고, 괴목(槐木)으로 만들었다는 가구 등에는 느티나무가 많다. 회화나무는 꽃봉오리는 쌀의 모양과 비슷하여 괴미(槐米), 피고 나면 괴화(槐花)라고 하는데 루틴이라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서 고혈압, 지혈, 진경, 소종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하여 차로 다려 마시기도 한다.

열매 역시 강장제 등에 쓰이고 괴료라고 부르는 수액은 신경마비증상에 효과가 있다. 단 장기간 복용은 좋지 않다. 똑같은 꽃을 괴황(槐黃)이라 하면 이는 종이를 노랗게 물들이는 염료로 쓰일 때이다. / 이유미(산림청 국립수목원 임업연구원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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