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한국거래소는 2015년 민간기업이 됐다. /사진=장동규 기자
2009년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한국거래소는 2015년 민간기업이 됐다. /사진=장동규 기자
◆기사 게재 순서
①한국거래소 67년 독점체제, 이번엔 깨질까
②대체거래소, 이번엔 ‘닻’ 올릴까… “그 나물에 그 밥?”
③왜 한국거래소에서만 거래하지?… 해외서 활발한 대체거래소 언제 허용되나

2020년 국내 증시가 활황을 맞으면서 ‘대체거래소’(ATS·alternative trading system) 설립 추진이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체거래소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상장사들의 잇단 사고와 관리 부실 등으로 한국거래소(KRX)의 독점 논란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내 유일 정규 거래소인 한국거래소는 1956년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단체로 설립된 대한증권거래소를 전신으로 한다. 금융당국은 거래소 시장의 경쟁체제를 구축해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2013년 8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대체거래소 설립을 허용했다. 2009년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한국거래소는 관련 법안 제정을 계기로 2015년 공공기관에서 해제돼 민간기업으로 전환했다.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면서 독점적인 사업 구조가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증폭됐지만 대체거래소 설립이 수차례 무산되면서 거래소는 67년째 독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식 거래 당사자들의 안전성 확보와 거래소의 경쟁체제를 구축키 위한 대체거래소 설립 논의에도 탄력이 붙고 있다. 대체거래소는 2013년 8월 금융당국이 관련법(자본시장법)을 개정한 후 설립 근거가 마련되면서 한국거래소의 독점적인 사업 구조가 해소될 것이란 기대감이 증폭됐으나 그동안 논의만 수차례 있었을 뿐 아무런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한국거래소는 2015년 공공기관에서 해제, 민간기업으로 전환됐다. 그러다 2020년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초저금리를 이용한 주식 투자 붐이 일면서 재차 대체거래소 필요성이 대두됐다.

대체거래소는 다자간 매매체결회사로 금융회사들이 모여 전자거래 기반으로 설립한 증권거래시스템이다. 정규거래소인 한국거래소와 달리 상장심사, 시장감시 역할이 없고 주식 매매 체결 기능만 지닌다. 대체거래소가 설립되면 거래소 간 매매체결 서비스 경쟁을 통해 자본시장의 질적 도약을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다양한 주문 서비스와 매매 체결 구조가 생기면 더 다채로운 종목을 낮은 수수료로 더 긴 시간 거래도 가능해진다. 일본의 사례에서도 매매체결 시설 간 경쟁의 순기능이 관측되고 있다. 일본의 대체거래소인 PTS(사설거래시스템·proprietary trading system)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정규거래소인 JPX가 보다 적극적인 IT(정보통신) 투자와 함께 주문제도를 다양화하는 등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거래소 지분은 국내 증권사들을 비롯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3.03%) 한국거래소 자기주식(3.80%) 등 34개사 지분과 우리사주(0.89%)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자료제공=한국거래소, 그래픽=김은옥 기자
지난해 말 기준 한국거래소 지분은 국내 증권사들을 비롯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3.03%) 한국거래소 자기주식(3.80%) 등 34개사 지분과 우리사주(0.89%)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자료제공=한국거래소, 그래픽=김은옥 기자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발목 잡힌 대체거래소 설립

2015년 금융투자협회와 함께 한국투자증권 등 7개 증권사는 대체거래소 설립을 추진했지만 중단됐다. 당시 거래량 한도 5%를 초과하면 정규 거래소로 전환해야 한다는 규정이 대체거래소 설립의 걸림돌이 됐다. 정규거래소가 되면 많은 법적 규제로 증권사 입장에선 부담으로 작용했다. 2016년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금융투자업 규정이 개정으로 대체거래소의 거래량 제한이 시장 전체의 5%에서 15%, 개별종목 10%에서 30%로 완화되자 2018년 다시 설립이 추진됐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선 그동안 국내 대체거래소 설립이 번번이 무산된 이유 중 하나로 ‘복잡한 이해관계’를 꼽는다. 국내 증권사들이 한국거래소의 주식 90% 가량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주주가치 희석을 우려해 대체거래소 설립에 부정적이란 지적이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거래소 지분은 KB증권(6.42%) 메리츠증권(5.83%) NH투자증권(5.45%) 한화투자증권(5%) 유안타증권(3.46%) 등 국내 증권사들을 비롯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3.03%) 한국거래소 자기주식(3.80%) 등 34개사의 지분과 우리사주(0.89%) 등으로 구성돼 있다. 거래소 지주사 전환과 상장 방안이 확정되기 전 대체거래소 설립으로 경쟁체제가 구축될 경우 한국거래소 상장 시 보유지분 가치가 낮게 평가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거래소가 설립 위치, 세수 감소 등을 이유로 사실상 반대 의사를 표한 것도 대체거래소의 설립 추진에 발목을 잡은 요인이다. 대체거래소 도입 가능성을 두고 공공기관 해제를 요구했지만 막상 공공기관에서 해제된 후에는 대체거래소 도입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2019년 당시 한국거래소를 이끌었던 정지원 전 이사장은 “매매체결이 이미 완전 전산화돼 있고 거래 수수료도 최저 수준이어서 대체거래소가 도입되더라도 투자자 실익이 클지 의문”이라며 “설립되더라도 투자자 공백이 크지 않도록 당국이 협의해서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한국거래소 본사가 위치한 부산의 반대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한국거래소의 지방세수 감소와 금융중심지 위상 추락 등을 이유로 내세우며 대체거래소 설립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2019년 금융투자협회와 미래에셋·삼성·NH·한국·KB·키움증권 등 대형증권사 6곳이 ‘ATS 설립검토위원회’를 출범하면서 재논의가 시작됐다. 2020년 동학개미 열풍과 함께 거래량이 크게 증가하고 자본시장 인프라 선진화 방안으로 대체거래소가 언급되면서 설립 추진에 속도가 붙었다. ‘대체거래소 설립검토위원회’는 지난해 5월 설립 타당성 조사 용역을 실시했으며 올 상반기 금융위원회에 예비인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실제 대체거래소 출범은 빠르면 2024년 상반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거래소의 분위기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올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대체거래소 설립 추진에 대해 ‘동일 기능, 동일 규제’ 원칙을 강조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손 이사장은 “건전한 경쟁을 이룰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면 대체거래소는 (한국거래소가 발전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복수의 거래소가 있더라도 (한국거래소는) 청산결제, 시장감시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앞으로 제도나 인프라를 선도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대체거래소 설립 추진이 가시화되면서 최근 비상장 주식 중개 플랫폼 서울거래 비상장을 운영하는 피에스엑스(PSX)는 부산에 대체거래소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부산 민심에 부합하는 전략이란 평가다. 기존 대체거래소 논의가 증권사 위주로 이뤄졌던 것과 달리 IT기업 등 다양한 분야의 참여자가 논의에 합류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거래소는 정치적 이해관계의 산물로 각 지역에 대체거래소가 설립되면 부산이 상당한 정치적 박탈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복수의 거래소가 설립되고 그 중 하나가 서울에 위치할 경우 한국거래소를 부산에 둠으로써 의미하는 ‘지역발전’이란 정치적 언질의 의미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거래소의 공공기관 해제 조건이었던 대체거래소가 만들어지지 않으면서 투자 선택권 확대와 신축성 있는 거래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한국거래소의 공공기관 해제 조건이었던 대체거래소가 만들어지지 않으면서 투자 선택권 확대와 신축성 있는 거래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거래소는 사각지대?… 반사이익·정부 입김 등 지적

공공기관이던 한국거래소가 민간기업으로 전환되면서 감사원의 감사, 예산 사용 등 정부의 규제에서 보다 자유로워졌다. 대체거래소 출범이 늦어지면서 관리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이며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한국거래소는 2013년 대체거래소 도입 당시 스스로 발전하고 선진 거래소와 경쟁하기 위해 민영화가 필수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론 대체거래소 설립에 미온적이었다. 2019년에는 국내 시장이 외국과 달리 규모가 협소하다는 점에서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등 부정적 입장을 내놓으면서 조직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투자자들은 당초 한국거래소의 공공기관 해제 조건이었던 대체거래소가 만들어지지 않으면서 투자 선택권 확대와 신축성 있는 거래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의 입김으로 한국거래소가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한국거래소에는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등 출신이 두루 포진돼 있다.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금융위원회 출신이 꿰차는 이른바 ‘낙하산 자리’라는 오명도 있다. 한국거래소가 2015년 공공기관에서 해제된 후에도 5대(정찬우)와 6대(정지원) 이사장 모두 금융위원회 출신이었다. 현 7대 손병두 이사장 역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출신이다.

2020년 11월 7대 이사장 후보 접수를 앞뒀을 당시 한국거래소 노조는 성명을 내고 정치인·금융관료 등 낙하산 인사에 격렬히 반대했다. 당시 노조는 “금융투자자를 보호하고 거래소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선 공정하고 투명한 차기 이사장 후보 인사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며 “정지원 전 이사장의 임기가 끝났음에도 후임을 선임하기 위해 9월 초 구성된 추천위가 뒤늦게 이사장 후보를 모집하는 공고를 낸 배경에는 정부의 입김과 내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한국거래소의 독립성 문제를 지적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참여자 관점에선 다양한 혁신상품이 신속하게 상장되지 않는 데 대한 불만이 있다”며 “ETF(상장지수펀드) 등이 상장할 때 금융위원회 승인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란 의심의 시각이 많다”고 귀띔했다. 이어 “물론 관료들도 능력이 있다곤 하지만 해외 인재를 한국거래소 임원으로 선임한다면 많은 혁신이 일어날 것”이라며 “해외 유수의 거래소는 대부분 민간기업이다. 거래소의 글로벌화를 위해 해외에서 인재를 영입해 체질 개선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