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맥주업계가 원료 및 제조공법을 바꿔 다변화에 나섰다. (왼쪽부터)오비맥주 '카스', 하이트진로 '테라, 롯데칠성음료 '클라우스 생' 드래프트. /사진=각사
국내 맥주업계가 원료 및 제조공법을 바꿔 다변화에 나섰다. (왼쪽부터)오비맥주 '카스', 하이트진로 '테라, 롯데칠성음료 '클라우스 생' 드래프트. /사진=각사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용, 싱겁다, 밍밍하다…. 전부 국산 맥주가 맛이 없다는 얘기다. 라거 일색의 국산 맥주는 맛과 향의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런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국산 라거 맥주는 원료 및 제조공법을 바꿔 다변화에 나섰고 에일 맥주 중심의 국산 수제맥주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오로지 맛을 위해 무알코올 맥주를 찾는 수요도 늘었다. 천대받던 국산 맥주의 반란이 시작됐다.

한국은 왜 라거 일색인가 


맥주는 발효 방식에 따라 크게 에일과 라거로 나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탄생한 맥주는 에일이었다. 에일은 고온(18~25℃)에서 발효 시 효모가 맥주 표면에 떠오르는 ‘상면 발효’ 방식으로 생산한다. 주로 갈색을 띠며 라거에 비해 알코올 도수가 높고 색·맛·향이 강한 편이다. 맥주의 본고장인 유럽에선 전통 방식인 상면 발효로 만드는 에일 맥주가 많다. 

라거는 저온(9~15℃) 상태에서 발효 시 효모가 맥주 표면 아래로 가라앉는 ‘하면 발효’ 방식으로 만든다. 주로 황금빛을 띠며 시원한 청량감과 부드러운 목 넘김이 특징이다. 저온에서 발효하는 라거는 산업혁명 이후 냉장 기술이 발명되면서 대중화됐다. 라거는 곧 현대식 대량생산 맥주의 상징이 됐고 미국·일본·한국을 포함해 전세계 맥주 시장의 70%를 차지한다. 

국내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부터 맥주가 본격 도입됐기에 일본이 채택하고 있던 하면 발효 방식의 라거 맥주가 주를 이뤘다. 당시 운영되던 일본 맥주회사가 1950년대 초반 민간에 불하되면서 ‘동양맥주’(현 오비맥주)와 ‘조선맥주’(현 하이트진로)가 탄생했다. 

이때부터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는 국내 맥주 시장을 주도했다. 양사는 폭넓은 맥주 라인업을 갖고 있지만 대표작은 ‘카스’와 ‘테라’로 모두 라거다. 라거 맛에 길들여진 국내 소비자의 선호도와 소맥·반주 등 음주문화가 반영됐다고 주류업계는 설명한다. 하지만 소비자의 기호가 다양해지면서 라거 일색의 국산 맥주는 맛없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국산 맥주, 맛없다는 편견을 버려!

/그래픽=김민준 기자
/그래픽=김민준 기자


최근 맥주업계는 이런 편견을 깨부수고 있다. 오비맥주는 세계적인 셰프 고든 램지에 이어 백종원 요리연구가를 광고 모델로 발탁했다. 대표적인 ‘맛잘알’(맛을 잘 아는 사람)을 앞세워 소비자가 국산 맥주 맛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화두를 던진 것. 

업계의 맛 경쟁도 치열하다. 맥주는 홉·효모·맥아·물 등으로 구성되며 각 재료의 비율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홉은 맥주의 향을 결정하고 보존을 돕는 재료다. 효모는 라거 혹은 에일이라는 맥주 유형을 결정한다. 보리를 발아시킨 후 말린 맥아는 맥주 특유의 달콤함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같은 라거 맥주라고 하더라도 맛이 천차만별인 이유다.

하이트진로는 맥주 맛의 핵심으로 꼽히는 맥아와 탄산감에 집중해 지난해 3월 신제품 테라를 선보였다. 전세계 공기질 1위 국가인 호주에서도 청정지역으로 꼽히는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의 맥아만을 100% 사용하고 발효과정에서 자연 발생하는 탄산만 100% 담은 제품이다. 

반응은 아직도 뜨겁다. 테라는 지난 10월까지 누적 판매량이 13억병을 돌파했다. 덕분에 하이트진로 맥주 부문 매출은 지난해 7266억원으로 전년 대비 1.8% 늘었다. 올해는 테라가 시장에 안착하면서 3분기까지 누적 638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17.9%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6년째 적자를 이어오다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에 맞서 오비맥주도 지난해 말 신제품 ‘오비라거’를 출시하고 광고 ‘오, 부드럽다’ 편을 통해 맥주 맛의 부드러움을 강조했다. 롯데칠성음료도 지난 6월 생맥주 맛을 구현한 ‘클라우드 생 드래프트’를 출시하며 반등에 나섰다. 두 제품은 모두 100% 맥아로 만든 ‘올 몰트’ 맥주다. 

성적은 어떨까. 업계에선 아직 오비맥주의 아성이 깨지지 않았으나 하이트진로가 바짝 추격하며 카스와 테라의 격차를 줄이고 있다고 판단한다. 한국기업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하이트진로의 맥주 점유율은 35%로 지난해 24%에서 11%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오비맥주는 56%에서 47~49%로 내려앉은 것으로 파악된다.

수제·무알코올도 ‘캬~ 이 맛이야’

맥주 맛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은 '무알코올'이나 알코올이 1% 미만인 '비알코올' 맥주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왼쪽부터)오비맥주 '카스0.0', 하이트진로 '하이트제로 0.00', 롯데칠성음료 '클라우드 클리어 제로'. /사진=각사
맥주 맛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은 '무알코올'이나 알코올이 1% 미만인 '비알코올' 맥주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왼쪽부터)오비맥주 '카스0.0', 하이트진로 '하이트제로 0.00', 롯데칠성음료 '클라우드 클리어 제로'. /사진=각사



맥주 맛에 대한 관심은 수제맥주 시장을 키우고 있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수제맥주 시장 규모는 880억원으로 전체 맥주 시장(약 4조원)의 3%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업계에선 올해 1200억원, 2024년엔 3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다. 맛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소규모 양조장에서 나온 수제맥주를 찾고 있기 때문. 

특히 올해는 맥주에 부과하는 세금이 종가세(가격 기준)에서 종량세(용량 기준)으로 바뀌면서 수제맥주 가격이 30% 낮아졌다.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수제맥주는 편의점 ‘4캔 1만원’ 행사에 참여하며 소비자와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편의점과 협업해 출시한 일부 제품은 ‘품절 대란’을 빚을 정도로 인기다. 

심지어 맛으로만 먹는 무알코올이나 비알코올(알코올 1% 미만) 맥주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오비맥주가 최근 출시한 비알코올 ‘카스 0.0’은 쿠팡에서 판매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초도 물량 5282박스(1박스=300㎖×24캔)이 완판됐다.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도 무알코올 맥주 ‘하이트제로 0.00’와 ‘클라우드 클리어 제로’를 판매하고 있다. 

현재 무알코올 맥주 시장 규모는 150억원. 업계에선 5년 안에 2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을 예측한다. 음주에 대한 부담 없이 맥주의 맛과 향을 즐기려는 젊은 층을 신규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실제로 카스0.0은 맥주와 동일하게 제조하되 마지막 여과 단계에서 분리공법으로 알코올만 빼내 맥주 맛을 확보했다. 

맥주 맛의 다양화는 국내 주류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몇 년 동안 국내 맥주 생산·소비량은 감소세를 보였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유흥시장도 위축됐다”면서도 “홈술·혼술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고 소비자 기호가 다양화되면서 맥주 시장이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