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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삼순이’로 로코퀸 올랐던 김선아 그녀에게 느껴지는 농염한 ‘품위’

한인구 기자
입력 : 
2017-10-20 10: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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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자에게서 내 남자의 향기를 느꼈다.”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되짚어 보면 기억의 한 장면을 차지하고 있는 한 화장품 광고의 카피다. 배우 김선아(44)가 나온 1996년 이 광고는 대중에게 ‘김선아’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의 도회적인 분위기는 패션을 주도하는 화장품 광고와 맞아떨어졌다.

잠시 스쳐가는 향기인 줄 알았던 김선아는 이내 배우로 전향했다. MBC 일일드라마 <방울이>로 데뷔한 그는 고두심(66), 채림(본명 박채림·38) 등과 호흡을 맞췄으나 역할은 크지 않았다. 신인 배우로서의 가능성만을 보여줬다. 드라마 <승부사> <사랑과 성공> <세상 끝까지> <베스트 극장-그녀의 화분 NO.1> 등 역할과 작품을 가리지 않고 출연하며 눈도장을 찍은 김선아는 1999년 <점프> 이후 <황금시대> <좋아 좋아>, 영화 <예스터데이> <몽정기> <위대한 유산>에서 주연을 맡았다. 여자 배우로서 미모만을 앞세운 ‘작품의 꽃’이 되기보다는 장르에 따라 인물을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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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만났던 인생작 <내 이름은 김삼순> 김선아는 2005년 배우 인생을 바꿔 놓은 작품을 만났다. 바로 <내 이름은 김삼순>이다. 외모, 집안 모두 부족한 30대 노처녀 파티시에 김삼순 역할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연애세포를 자극하는 감정을 전하면서도 30대 여성이 가진 상처와 서러움을 그리며 공감대를 자아냈다. 현빈(김태평·35)과 보여준 ‘연상연하’ 커플은 종영 시청률을 49.1%까지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야말로 ‘김삼순 신드롬’을 일으켰고, 김선아에게는 ‘로코퀸(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시청률)숫자에 민감한 사람은 아녜요. 산수를 못해서 그런가(웃음). 솔직히 시청률은 배우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까요. ‘내 이름은 김삼순’ 시청률이 50%가 나왔을 때 ‘그러려니’ 했었어요.”

반향이 컸던 만큼 상복도 따랐다. 김선아는 그해 ‘MBC 연기대상’에서 인기상, 베스트커플상, 최우수상 대상을 차지한 데 이어 ‘그리메상’ 최우수연기상과 ‘제1회 드라마 어워드’ 여우주연상, ‘제18회 한국프로듀서상’ 연기자상, ‘제1회 서울드라마어워즈’ 미니시리즈부문 최우수상 등 8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남들이 한 번 받기도 어려운 상을 싹쓸이했다.

김선아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캐스팅 1순위 여배우로 올라섰지만, 안방극장에 돌아오는 시간은 예상보다 꽤 길었다.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3년 만에 드라마 <밤이면 밤마다>를 차기작으로 삼았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마음속에 있던 김삼순에 대한 그리움은 그대로였다. 제작진이 바라는 모습도 김선아 이전에 김삼순이 우선이었다. 성공의 빛에 가려진 어둠을 걷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캐릭터를 맡을 때마다 (김)삼순이의 영향이 굉장히 컸죠. 시청자들이 원하는 모습이 분명히 있었어요. 감독님들도 ‘삼순이를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할 정도로요.” 자신의 인생작이 어느 틈엔가 서서히 발목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김선아의 드라마와 영화를 통튼 필모그래피는 그래서 더 치열해 보인다. 그는 2009년 드라마 <시티홀>에서 9급 공무원에서 시장이 된 신미래 역으로 등장했다. 시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는 열혈 시장 캐릭터와 달콤한 로맨스를 넘나들었다. 코믹뿐만 아니라 유려해진 감정 표현으로 배우로서 성숙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1년에는 <여인의 향기>를 통해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연재를 연기해 보는 이들의 눈물을 쏙 빼놨다. 체중을 14kg이나 감량해 죽음 앞에 찾아온 사랑을 외면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 2013년 영화 <더 파이브>에서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위한 처절한 복수를 펼치는 김은아로 변신했고, 2015년 드라마 <복면검사>에서는 강력계 반장 유민희로 출연했다. 데뷔 초 낯설기만 했던 ‘주연 배우’는 어느새 그가 있어야 하는 자리가 됐다. 그럼에도 대표작은 언제나 <내 이름은 김삼순>이었고, 흥행에 대한 아쉬움은 언제나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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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그녀>로 다시 주목받는 김선아 작품에 얽힌 갈증을 풀어준 건 <품위 있는 그녀>였다. 김선아와 <베스트 극장-그녀의 화분 NO.1> <내 이름은 김삼순>을 함께했던 김윤철 PD가 연출했다. 배우와 PD의 인연이 세 번째 이어졌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성공한 기운은 <품위 있는 그녀>로 전달됐다. 12년이 지나서 다시 김 PD를 만난 뒤에야 김삼순이 아닌 박복자로 김선아는 다시 주목받았다. “많은 시간이 지나도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있잖아요. 친하지 않았더라도 눈동자나 손짓들이 기억나는 사람, 안 친했어도 너무 고마웠던 사람들이요. 김윤철 PD님이 그런 분이죠. 열심히 살려고 했지만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고 느끼던 저에게 토닥토닥 해주셨던 분이에요. 저에게 손을 내밀어주실 때 진짜 감사했어요.”

박복자는 35년 전 파양된 충청도 출신으로, ‘상류사회’라고 일컬어지는 세상 꼭대기를 향한 야망을 가진 인물이다. 안태동(김용건 분) 대성펄프 회장의 간병인으로 재벌 집에 발을 들여놓은 뒤 그룹 부회장 자리까지 꿰찼다. 그는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김 PD의 섬세한 연출에 백미경 작가의 탄탄한 필력이 더해진 <품위 있는 그녀>는 JTBC 드라마 최고시청률인 12.06%를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힘쎈 여자 도봉순>이 세운 JTBC 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9.66%)까지 갈아치웠다. 첫 방송에서는 2% 시청률에 그쳤지만 회가 갈수록 입소문을 탔다. 박복한 삶을 살았던 박복자를 연기한 김선아의 공이 컸다. “촬영 후 없어진 줄 알았던 감정이 방송을 보면서 다시 살아나더라고요. 시청률에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기록을 보고 놀랐죠. 대본이 좋았던 만큼 성공할 거라고 예상은 했어요. 완전사전제작 드라마가 아니었더라도 성공했을 겁니다.”

<품위 있는 그녀>는 박복자가 살해당한 장면이 먼저 공개된 후 그가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과정을 따라갔다. 김선아는 박복자가 죽는 엔딩을 찍은 뒤 나머지 촬영에 들어갔다. 박복자의 죽음과 진범을 찾는 것이 작품의 중심축이었으나 단순히 살해범을 찾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박복자를 통해 욕망이 뒤엉킨 상류사회의 민낯을 그렸다. “어떤 게 박복자의 진심인지 계속 물음표를 두고 봤어요. PD님에게도 질문을 많이 던졌죠. 나중에는 답을 모르니 어느 선까지가 박복자의 마음인지도 모르겠더라고요. 박복자는 항상 혼자였고, 방황하며 살 수밖에 없었죠.”

모든 촬영을 방송 전에 마친 사전제작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는 김선아와 김희선(41)의 만남으로도 관심을 끌었다. 김희선은 전직 스튜어디스이자 대성펄프 둘째 며느리인 우아진으로 출연했다. 제목 그대로 품위 있고, 이름처럼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우아한 성격을 가졌다. 우아진은 박복자와 각을 세우다가도 연민으로 그를 감쌌다. 김선아, 김희선은 촬영 전부터 우려 섞인 시선을 받기도 했다. 주연급 여자 배우들이 한 작품에서 잘 섞일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1990년대부터 한국 드라마를 대표한 여배우인 두 사람은 <품위 있는 그녀>에서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한 데 어울렸다. 김선아, 김희선은 박복자, 우아진의 삶을 고스란히 작품 속에 녹여냈다. 김선아는 인터뷰 내내 박복자를 떠올리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촬영과 방송이 끝나고서도 쉽사리 박복자의 손을 놓지 못하는 듯했다. “박복자로 사는 동안에는 잠시 김선아와는 이별했죠. 몇 년을 같이 지낸 사람도 성격이나 상황을 모두 알기는 어려워요. 작품 하는 동안에는 개인 생활을 버리고 그 인물이 되려고 하죠. 저만의 룰이에요.”

김선아는 “지독하리만큼 나는 내가 모자란다고 느낀다. 이렇게라도 해야 박복자에 대한 예의인 듯했다”고 말했다. 마흔 살이 넘어도 자신을 모르는데, 몇 달 동안 자신이 맡은 인물에 집중하지 않으면 캐릭터가 무너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김삼순과 박복자. 김선아에게 각별한 캐릭터는 무엇일까. 김선아는 “내 이름은 김삼순과 품위 있는 그녀를 비교하기는 힘들죠. 둘이 싸워 봐야겠는데?”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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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모델로 연예계 첫발

대구 출신인 김선아는 중학교 때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이민을 떠났다. 1993년에는 홀로 미국 인디애나주에 위치한 볼스테이트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일본어와 영어에 능통하고, 피아노 연주가 특기다. 하지만 데뷔 전까지 카메라 앞에 서는 경험은 전혀 없었다.

광고 모델로 처음 연예계에 발을 디딘 후 배우라는 낯선 분야에 도전한 김선아는 데뷔 초에는 대본을 소화하는 데 애를 먹었다. 오랜 타국 생활로 한국어에 미숙해 드라마·영화 제의에 선뜻 응하지 못했고, 몇 달 동안 한국어 연습에 매달려야 했다.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던 당시 무던히 배우의 길을 준비했다. 21년이 지난 지금도 배움의 중요성을 느끼고 실천하고 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잘하고 싶은 마음에 요즘도 연기수업을 받고 있어요. 2006년부터 꾸준히 받고 있죠. 배움에는 끝이 없거든. 연기가 쉽지 않고,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껴요. 앞으로도 계속 좋은 작품을 만나고,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싶어요.”

쉬지 않고 작품을 일궈 왔지만, 의외로 작품 수는 활동 기간에 비해 많지 않은 편이다. 2000년 이후로는 1년에 두 작품 이상 하지 않았다. <품위 있는 그녀>로 복귀하기까지도 2년이 걸렸다. 이와 관련해 김선아는 “성격인 것 같다”고 답했다. 촬영을 하거나 이를 앞두고 고민하기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 출연을 선택하는 시간이 짧지 않다는 것이다. 대본을 읽고 등장인물의 삶을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싸우는 김선아는 외로울 법했다. 혼기를 훌쩍 넘긴 나이에 결혼 계획에 대한 대화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에이, 즐겨야죠.” 작품 인물이 아닌 김선아를 향한 궁금증에 대해서는 부끄러운 듯 에둘러 말했다.

<품위 있는 그녀> 종영 후 제주도에 다녀온 김선아는 박복자의 헤어스타일보다 더 짧게 머리를 잘랐다.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제주도 여행을 하다가 문득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짧아진 머리에도 드라마 흥행으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은 더 많아졌다. “시청자 분들께 저는 통통한 삼순이로 오래 기억에 남아있었죠. ‘품위 있는 그녀’ 방송 전에는 저를 잘 알아보지 못하셨는데, 이제는 멀리서도 ‘복자 언니’라고 말해서 놀랐어요. 머리카락을 자른 걸 들켜서 이제는 자유가 없어졌네요(웃음).”

[한인구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창간 7주년 특집호·제85호 (2017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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