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편집: 2024년04월26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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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와 달팽이: 현대 사회의 유목민을 위한 들고 다닐 수 있는 집

서도호와 달팽이: 현대 사회의 유목민을 위한 들고 다닐 수 있는 집

문화비평가 마셜 매클루언은 1988년 과학기술이 발달해 ‘지구촌’ 시대가 오리라고 예견했다. 그 말대로 우리는 이제 비행기에 몸을 싣기만 하면 지구 반대편으로 편히 이동한다. 이렇듯 대륙을 쉽사리 넘나들며 사는 요즘 사람에게 유목민 같은 삶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약 4천만명이 평생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산다고 한다.¹  그들은 옛날처럼 한곳에서 나고 자라 그 자리에  뿌리 내리지 않는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문화권을 옮기며 사는 세계화 시대에 문화 정체성 담론은 더욱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미술가 서도호가 살았던 뉴욕 또한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국제 도시이자 다문화 사회이다. 하지만 뉴욕은 각 집단의 문화가 용광로에 녹아 한 문화로 재탄생하는 ‘멜팅팟’ 형태라기보다는 다채로운 문화 정체성을 가진 구성원들이 조화를 이루며 고유성을 지키는 ‘샐러드 볼’ 형태에 가깝다. 그래서 저마다 나름의 사유가 있어 뉴욕으로 이주한 이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자기가 가져간 문화 정체성이 더욱 뚜렷해짐을 경험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인종국적문화 배경을 생각해볼 일이 드물지만 해외에서 살다 보면 종종 이러한 질문들에 답변해야 하는 때가 있다. 그러므로 서도호가 작업에서 주제로 삼은 문화 정체성은 유목 생활Nomadic Life을 지향하는 현대인에게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보편성을 지닌다.

Do Ho Suh 'Hubs' series, 2022 /Courtesy of Do Ho Suh & Lehmann Maupin Gallery

“낯선 공간에서 내 오감이 말을 듣지 않는 무딘 느낌이 있었어요. 한국에서는 손 뻗으면 머리맡에 뭐가 있고, 어디는 어느 정도 넓이이고, 이런 걸 감각적으로 다 예측할 수 있는데 미국에서는 그게 안 되는 거예요. 마치 다른 사람 몸에 들어온 것처럼, 내 팔이 얼마나 긴지 몰라서 팔을 뻗어서 다 만져봐야 되는 거. 몇 인치, 몇 파운드 하면 알만한 건지 감이 딱 안 오는 거. 그래서 센티미터와 인치가 같이 있는 자를 들고 다니며 공간의 크기를 재기 시작했어요.” -2009년 미술 전문 기자 이규현과의 인터뷰에서 ²

새로운 문화권에 진입한 후 겪은 이질감을 서도호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러한 경험에 대응해 고이 접으면 트렁크에도 들어갈 법한 부피와 무게를 지닌 집을 짓기 시작했다. 천으로 만든 집. 그래서 세계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는 집. 서도호의 조형 언어는 어릴 때 식구들과 함께 산 한옥 기억을 기반으로 하여 자기 정체성을 투영하는 대상이 된다. 반면 집이 지니는 의미는 이방인으로서 맞닥뜨린 환경이 주는 불편함이나 문화에서 느낀 혼란과는 상반된다.

본래 집은 튼튼한 건축물을 뜻하지만 안락한 가정이라는 의미로 정서적 공간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어에서는 하나로 표현되는 ‘집’이 영어에서는 건축을 가리키는 ‘house’와 가정을 가리키는 ‘home’으로 나뉜다. 서도호가 표현한 집은 후자이다. 얇고 투명한 천은 ‘house’라는 딱딱한 구조물에서 ‘home’이 주는 감각만을 떠내어 옮겼다. 재단사가 몸 치수를 재어 맞춤옷을 짓듯이 그는 자기가 산 집 구석구석을 세밀히 측정해 집을 지었다.

Do Ho Suh ‘The Perfect Home II, (2003)’ /Courtesy of Do Ho Suh & Lehmann Maupin Gallery

특히 미술가 서도호가 고른 재료가 인상 깊은데, 색감이 맑은 은조사는 벽의 안팎 공간을 가볍게 통과한다. 덕분에 집이 지니는 육중한 무게감이 상쇄된다. 마치 누구나 가지고 있을 기억 속 집에 대한 느낌만을 남긴 듯하다. 동시에 그 작품 안에 들어선 관람객은 과거와 현재,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동양과 서양, 실제와 가상이 뒤섞인 초현실 세계에 선 듯한 느낌을 가지며 저마다 오래된 추억 속 집을 떠올린다.

Do Ho Suh ‘Fallen Star-1/5, (2008) /Courtesy of Do Ho Suh & Leeum Museum of Art

지금까지 서도호가 지어온 집들은 뉴욕(아파트), 베를린(아파트), 성북동(한옥) 등 그가 산 여러 도시와 공간을 포함한다. 2012년 3월 리움 미술관에서 열린 서도호 개인전 <Home Within Home(집 속의 집)>에서는 그가 살았던 두 공간을 선보였다. 자기가 이방인으로서 전혀 다른 세계에 불시착한 경험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뉴욕의 빨간 벽돌집에 한옥이 꽂혀 있다. 서양 문맥에 동양 오브제가 별똥별처럼 날아와 떨어져 있는데, 그 둘이 전혀 어울리지 않아 객지에서 사는 사람들이 흔히 겪는 문화적 이질감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Do Ho Suh ‘Home Within Home, 2013’ /Courtesy of the artist &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하지만 어떤 공간이든 처음에는 낯설어도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공간을 기억할 무언가가 한 겹씩 쌓이기 마련이다. 서도호 대표작 ‘Home Within Home’에는 그가 산 집들이 크루아상처럼 겹겹을 이루고 있다. 어린 시절을 보낸 한옥을 미국 유학 시절 산 서양식 집이 에워싼 식이다. 그리고 작품의 우리말 제목 ‘한옥을 품은 양옥’, ‘양옥을 품은 서울 박스’, ‘서울 박스를 품은 서울관’, ‘서울관을 품고 있는 서울’에서 짐작하듯이 삶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유대와 의미를 지닌 공간을 확장하며 살아간다.

달팽이는 한평생 집 하나를 지고 다닌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외부 세계와 부딪힐 때 자기를 지키려고 껍질 집으로 쏙 숨는다. 많은 현대인이 유목민 같은 삶을 사는 오늘날 미술가 서도호가 지은 ‘들고 다닐 수 있는 집’이 모두에게 하나쯤 필요하지 않을까. 내 집만이 주는 정서 안정과 고유한 정체성을 달팽이처럼 언제나 이고 다닐 수 있도록.


1 New York Times ‘Beyond Borders: A Deep Dive Into the Nomadic Way of Life’
(https://www.nytimes.com/2022/10/14/travel/anthony-sattin-nomads-interview.html)
2 이규현 ‘미술가 서도호: 문화의 간극에서 바라본 세상’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67840&amp;cid=59117&amp;categoryId=59117)


Words by Rosie Suyeon Kang
Main Still. Courtesy of FRIEZE & Lehmann Maupin Gallery
Still. Courtesy of the artist & Lehmann Maupin Gallery
Still. Courtesy of the artist & Leeum Museum of Art
Still. Courtesy of the artist &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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