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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전통…된장 항아리 속엔 구더기 '드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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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충북 재래된장 제조업체의 장독 속. 된장 위에 죽은 파리가 여러 마리 보인다. 이 업체는 3000여개의 장독 속에 장을 보관하고 있었다.

시판 된장의 세계에선 ‘재래’가 훈장이다. 직접 메주를 띄워 된장을 담글 엄두가 나지 않는 소비자에게, 시골 된장의 구수한 맛이 그리운 소비자에게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 파는 ‘재래 된장’은 고마운 존재다. 삶은 콩에 균주를 주입, 속성으로 발효시켜 만든 개량 된장과는 확실히 맛의 깊이가 다르다. 하지만 일부 재래 된장이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된장 항아리 속에서 구더기가 들끓고, 된장을 넣어 보관하는 자루 위에선 쓰레기가 뒹굴었다. JTBC ‘미각스캔들’ 제작진이 우리나라와 중국의 재래된장 제조업체를 찾아 현장을 확인한 결과다.

말로는 전통 방식 … 발효주정 넣어 만들어

이 업체 창고에서 발견된 ‘발효주정’ 깡통.

 지난 7월 JTBC ‘미각스캔들’ 제작진에 제보가 들어왔다. 자신들이 근무했던 된장업체의 위생 상태가 엉망이란 제보였다. 제보자들은 “국산콩 100%라고 홍보하지만 사실은 미국산 콩을 사용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들은 증거물로 수입콩이란 표시가 돼 있는 콩자루를 가져왔다. “(수입콩을 쓰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까 봐 밭에서 바로바로 태워버리는 포대 자루”라고 했다. 제작진은 해당 업체의 실상을 확인하러 갔다. 충북에 있는 이 업체는 죽염을 사용해 만든 된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재래 된장과 고추장·간장 등을 인터넷과 전화 주문을 받아 전국에 판매하고 있으며, 신문·방송 등을 통해 “암반수로 빚은 죽염된장” “맛도 그만, 건강에도 최고”란 취지의 기사로 여러 차례 소개됐다.

 업체 사장은 ‘미각스캔들’ 제작진에 가마솥에서 삶은 콩을 절구통에 넣고 찧는 모습을 보여주며 “국산콩만 사용해 전통 방식으로 된장을 담근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식자재 보관 창고에서 ‘미국산 콩’이라고 적힌 포대 자루를 찾아냈다. 제보자들이 가져온 것과 똑같은 자루였다. 또 ‘발효주정’이라고 적힌 깡통도 발견했다. 발효주정은 콩을 발효시킬 때 넣는 균을 말한다. 공장에서 된장을 대량생산할 때 사용한다. 발효주정을 넣어 만든 된장은 엄밀히 말해 전통 방식의 재래 된장이 아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위생 상태였다. 사장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몰래 뚜껑을 열어본 장독 속에는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다. 또 죽은 파리 여러 마리가 된장 위에 널브러져 있는 장독도 있었다. “3000여 개의 장독을 매일 관리하고 있다”는 업체의 설명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50)씨는 “된장이 얼마나 위생적으로 관리됐는지의 기준이 되는 게 구더기”라며 “구더기가 발생할 정도로 관리가 안 됐다고 하면 다른 부분도 잘못될 가능성이 많은 제품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제보자들은 이런 ‘구더기 된장’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자사 식당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전했다. “구더기나 곤충이 들어있어 반품돼온 된장을 부속 식당에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 업체가 운영하는 한식당 얘기다. 된장찌개와 된장삼겹살구이 등이 주메뉴로 신문·방송과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 지역의 맛집으로 소개된 곳이다. ‘미각스캔들’ 허귀정 PD는 “재료의 원산지도, 만드는 방식도 모두 거짓이었던 업체를 그동안 여러 매체에서 ‘맛집’으로 다뤘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중국산 된장 연 2000여 t 수입

중국 옌지시의 된장 제조업체 창고에 보관돼 있는 메주. 곰팡이와 먼지로 뒤덮여 있다. 업체 측은 “한국에서 주문을 받아 만든 메주”라고 했다.

 ‘미각스캔들’ 제작진은 재래시장에서 특별한 상표 없이 ‘집된장’ ‘시골된장’ 등으로 팔리고 있는 된장의 제조업체도 추적했다. 충북 M시장에서 재래 된장은 1㎏에 6000∼1만원 정도에 팔리고 있었다. 상인들은 하나같이 “국산콩으로 우리 집에서 담근 장”이라고 설명했다. “집에서 많이 담가 찾는 사람에게 판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산콩 백태의 가격이 1㎏에 1만원 정도. 재료비 이하의 가격으로 판다는 얘기다. 제작진은 시장에서 팔고 있는 한 ‘집된장’의 출처를 찾아나섰다. 공장은 중국 옌지(延吉)시에 있었다.

 지난달 31일 찾아간 중국 재래 된장 제조업체의 위생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한국에서 주문받아 지난해 겨울 만들었다는 메주는 공장 창고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정상적인 공정대로라면 올봄 간장과 된장을 담그는 데 사용됐어야 할 메주다. 메주 위에는 곰팡이가 피고 먼지가 뽀얗게 앉았다. 원래 메주 색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비위생적인 제조환경에서는 메주에 아플라톡신이란 독소를 만들어내는 곰팡이가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아플라톡신은 간암 등을 유발하는 강력한 발암물질이다.

 소금물에 메주를 넣어 간장 성분을 빼는 과정은 지저분한 욕조에서 이뤄졌다. 욕조 구석구석에 이물질이 묻어 있었고, 녹슨 자국이 선명했다. 된장은 포대 자루에 담겨 창고에 보관돼 있었다. 버무린 된장을 항아리 대신 포대 자루에 넣어 숙성시키는 게 이곳의 된장 제조 방식이다. 된장 자루에는 언제 만들어진 된장인지에 대한 표시도 전혀 없었다. 이 업체 관계자는 “날짜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다. “1년에 몇 번 위생검사를 받느냐”는 질문에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옌지시의 또 다른 된장 제조업체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포대 자루에 담긴 된장이 쓰레기와 함께 창고에 보관돼 있었고, 된장 자루 중엔 밑이 터져 국물이 새나오는 것도 여럿이었다. 심지어 곰팡이가 슬어 있는 자루도 눈에 띄었다.

 ‘미각스캔들’ 허 PD는 “우리나라에 수입돼 들어오는 중국산 된장이 연 2000여t에 달한다”며 “이렇게 비위생적으로 만들어진 된장이 국산 재래 된장으로 둔갑해 팔리지 않도록 정부 당국에서 된장의 원산지 표기에 대한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래 된장의 문제를 다룬 ‘미각스캔들’은 9일 오후 10시50분 JTBC에서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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