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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여교사에 "맞장 뜨자" 웃도리 벗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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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교사들은 학생들을 지도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거친 행동을 하는 제자들을 나무라도 소용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일부 교육감이 체벌 금지를 포함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하면서 초·중·고교는 많은 혼란을 겪었다. 학교 현장 취재를 통해 ‘2011 교권(敎權) 추락의 현실과 원인, 그 대안’을 짚어봤다.

지난달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남학생들의 싸움을 말리던 30대 여교사 A씨는 학생으로부터 “왜 시비를 거느냐”는 반말을 들었다. A씨가 타일렀지만 이 남학생은 욕설과 함께 “맞장을 뜨자”며 웃도리를 벗고 A씨의 어깨를 잡아당겨 넘어뜨렸다. 충격을 받은 A씨는 “학생에게 이런 소리를 들으며 교직에 있어야 하는지 회의가 생겼다”고 말했다. A씨는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같은 달 대구에서는 중학교 남학생이 등굣길에 담배를 뺏은 교감의 머리와 배를 때리는 일도 벌어졌다.

 국내 초·중·고교에서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회장 안양옥)가 본지와 공동으로 지난달 교권 침해 사례를 접수한 결과 교사 100여 명이 학생으로부터 욕설이나 협박을 들었다는 사례 등을 토로했다. 교사와 학생의 갈등 관계는 초등학교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10월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현장학습을 하다 무리를 이탈한 한 학생을 담임 교사가 나무라자 교사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 벌어졌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집계한 교권 침해 건수는 2006년 42건에서 지난해 523건으로 늘었다. 특히 교사를 폭행하거나 협박한 경우는 7건에서 146건으로 20배가량 증가했다.

 이러는 사이 교사들은 학생지도에 손을 놓고 있다. 한국교총이 고려대 표시열(행정학) 교수에게 의뢰해 전국 초·중·고 교사 1576명을 상대로 설문조사(10월)를 한 결과 67%가 학생들에 대한 생활지도를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체벌 금지 이후 학생지도와 관련해 가장 두드러진 변화가 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5.3%는 ‘학생의 문제행동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한다’고 답했다. 또 31.7%는 ‘학생 및 학부모와의 갈등 상황을 회피한다’고 했다. 이 조사에서 교사 10명 중 8명은 ‘체벌금지 이후 학생지도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교실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제도적인 장치는 마련돼 있지 않다. 친(親)전교조 성향 교육감들이 잇따라 학생인권조례와 체벌 전면금지 조치를 이슈화하고 있지만 학생에 대한 지도와 규율은 학교·학부모·지역사회·정부기관 등이 유기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학생들을 일일이 지도하겠다고 나서봐야 학부모가 문제 삼으면 골치만 아프다”며 “문제 학생은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라는 반응이 교사들 사이에 퍼져 있다”고 말했다.

 표시열 교수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낙오되는 학생들은 학교나 교사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저출산으로 가정의 생활지도도 약화된 측면이 있다”며 “그렇다고 체벌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만큼 학생의 기본권을 보장해주되 미국처럼 책임도 엄격하게 지도록 규율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교총 등은 학부모 통보나 경찰관 개입 등 명확한 지도매뉴얼 마련 등의 제도가 갖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양옥 교총 회장은 “교권이 보호돼야 학생들이 제대로 공부할 수 있다”며 “사회가 교권 보호 시스템 마련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만·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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