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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절단할 위기, 거머리 덕분에 살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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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더기·벌·거머리 등 살아있는 생명체를 이용해 병을 치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수술보다 통증이 적고 마취가 필요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중앙포토]

고대 그리스의 의성(醫聖) 히포크라테스는 “의사는 치료하고 자연은 치유한다(Medicus curat, natura sanat)”고 했다. 자연은 각종 약의 생산 원료가 가득한 보물창고다. 시판 중인 모든 처방약 중 25%는 식물, 13%는 미생물, 3%는 동물에서 유래한다. 항생제인 페니실린은 푸른곰팡이에서, 혈전용해제 히루딘은 거머리의 침샘에서 분비되는 물질에서 얻었다. 나비·딱정벌레·말벌의 독 추출물은 암 치료에 효과를 나타낸다. 용하기로 소문난 동물 의사 넷을 만나보자.

봉독(蜂毒) 탈모·관절염에 좋아

대기업 직원인 남현우(33)씨는 정수리에 원형 탈모가 생겨 고민이다. 지루성 두피여서 조금만 당겨도 모발이 뽑힌다. 한의원을 찾은 그가 처음 받은 치료는 봉독요법.

머리샘 한의원 배원영 원장은 “봉독요법은 소염·진통·혈액순환 촉진·면역력 강화에 효과적”이라며 “모발을 굵고 윤기 있게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봉독요법은 꿀벌에서 추출한 독을 이용한 치료법이다. 벌독을 희석한 뒤 1회용 주사기로 몸 안에 주입한다. 벌침을 피부에 찌르거나 살아 있는 벌에 직접 쏘이는 ‘벌침요법’과는 다르다. 벌침요법은 쇼크 등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위험하다.

봉독은 염증을 없애는 소염효과가 있다. 한방에선 오래전부터 류머티스성과 퇴행성 관절염 치료에 봉독을 활용해왔다.

구더기 욕창·화상 수술없이 해결

온종일 누워 지내는 박모 할머니(82·경기도 성남)에게 구더기는 징그러운 흉물이 아니다. 고질적인 욕창을 치료해준 고마운 존재다.

분당서울대병원 성형외과 허찬영 교수는 지난해 10월 박 할머니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구더기(파리의 유충) 요법을 추천했다. 고령인 데다 전신마취가 힘들어 수술할 수 없다고 여겨서다.

허 교수는 “좁쌀만 한 구더기를 환자의 상처 부위에 2∼3일 올려놓으면 죽은 조직을 먹어 치워 몸집이 1.5㎝가량으로 커진다”며 “두 차례의 구더기 치료로 욕창을 수술 없이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심한 상처·당뇨발·욕창·화상 등에 효과적이다. 특히 외과 수술이 불가능한 미세하고 깊은 상처, 진물이 많이 나는 상처에 유용하다. 외과 수술에 비해 통증이 적고 마취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장점. 요즘은 구더기를 바이오 백에 담아 혐오감을 줄였다.

거머리 버거씨병·당뇨발 치료

건설업에 종사하는 이종학(57·서울 서초구)씨는 혈관이 막혀 손가락 끝이 썩는 버거씨병 환자다. 20년 넘게 피워온 담배가 화근이었다. 치료시기가 늦어 손가락을 절단해야 할 상황이었다. 절망에 빠져 있던 지난해 12월 거머리 요법 치료를 시작했다. 6주가 지나자 통증이 가라앉고 죽은 부위가 되살아났다.

대한생물요법학회 한동하 회장(한의사)은 “거머리는 버거씨병 치료에 유용하다”며 “ 호전율이 81%에 달했다”고 말했다.

거머리는 과거 수지접합술에 주로 투입됐다. 최근엔 버거씨병·당뇨발·레이노이드병·혈관염에 의한 피부 심부(深部) 궤양에 쓰인다. 거머리의 침샘에서 분비되는 히루딘 등 다양한 생리활성물질은 혈관 속으로 들어가 통증을 억제하고 혈액순환을 도와 염증을 치료한다. 거머리에 물린 부위는 약간 가렵거나 부을 수 있으나 대개 2~3일이면 호전된다.

닥터 피시 각질제거·마사지 효과

잉어과의 일종인 닥터 피시(doctor fish)는 ‘피부과 의사’다. 이 어류는 물속에서 사람의 피부를 쪼고 핥는다. 이를 통해 피부 각질이 제거되고 마시지 효과를 얻게 된다.

주로 ‘가라루파’라는 물고기가 치료에 사용된다. 터키의 아나톨리아 고원지대(온천지역)에서 서식하는 어종이다. 지역명을 따서 ‘캉갈 피시’, 피부를 쪼아 각질을 먹는다고 해서 ‘크나버 피시’라고 불린다.

터키 등 유럽에서 닥터 피시는 피부질환 완화·개선 목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병원보다 일부 스파·온천·카페 등에서 주로 접한다. 게다가 국내에선 ‘가라루파’ 대신 짝퉁 닥터 피시(중국산 친친어)가 주류를 이룬다. 입술로 자극을 주는 가라루파와 달리 친친어는 이빨을 갖고 있어 세균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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