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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세상은 CEO를 원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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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06면

1990년 한강둑 복구공사를 지휘하고 있는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회장. 중앙포토 

“저는 평생 일해본 사람입니다. 현대건설이란 작은 회사에 들어가서, 그때는 종업원이 100명이 안 됐어요. 정주영 회장과 함께 자동차도 만들고 배도 만들어서 큰 회사가 되고 종업원이 16만8000명이 됐어요. 온 세계를 다니면서 일했어요. 말이 아니라 실제 해본 사람이에요.”

이명박, 일 잘하는 기업가 이미지 밀어붙여

가평=연합뉴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20일 봄비 속의 동두천 시내를 누볐다. 시장 보궐선거 지원 유세였다. 그가 붙잡은 화두(話頭)는 ‘일’이었다. 전날 전남 무안읍에서도 같았다. “우리도 일하는 지도자, 일을 성취해본 지도자를 뽑아내야 합니다”는 그의 말에 박수가 쏟아졌다.

“평생 일했다”와 “일을 성취했다”는 대목은 다른 주자와 차별화되는 그만의 훈장이다. 그래서 그의 일 얘기엔 설득력이 있다.

“오늘밤 12시까지 기다리겠소. 그래도 우리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내일 아침 당신네 공장은 가동을 못하게 될 것이오.”

이튿날 이명박은 직접 불도저를 몰았다. 그러곤 골재생산업체인 공영사의 진입로를 갈아엎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동원된 중장비들이 이 회사가 뿜어내는 돌가루 때문에 나가 떨어지는 데도 해결책을 찾아주지 않자 최후통첩 뒤 택한 행동이었다. 공영사는 두 손을 들었다.

경부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던 1968년 현대건설 중기사업소의 27세 관리과장 이명박의 얘기다. ‘결단’과 ‘추진력’ ‘돌파력’으로 상징되는 ‘이명박 브랜드’의 한 장면이다.

그로부터 9년 뒤, 입사 12년 만에 이명박은 현대건설 사장에 올랐다. 서른다섯 살의 최연소 사장이었다. 그 뒤 15년간 현대건설ㆍ인천제철 등 8개 사의 대표이사를 지내며 ‘샐러리맨 신화’를 써내려 갔다.

그는 일을 통해 최고경영자(CEO)가 됐고, CEO로서 성공했다. 그런 점에서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란 평가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성공한 CEO’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붙어 있다. 만약 그가 성공한 CEO가 아니었다면 ‘서울시장-유력 대선주자 부상’이라는 정치적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40%를 넘나드는 지지율의 출발점도 ‘일 잘하는 CEO 이명박’이다. 경기침체로 먹고살기 힘들어진 세태도 맞아떨어졌다. 지난 13~14일 갤럽 조사에 따르면 대선후보로서 이 전 시장을 선호하는 이유 중 30.5%가 ‘추진력 있다’였다. 그 다음이 경제성장 기대(21.8%), 경력ㆍ경험(8.7%)이었다. 이 전 시장 캠프의 정두언 의원은 “세상은 지금 CEO를 국가 지도자로 원한다”고 말한다.

서울시장으로서의 성공도 CEO식 행정이 기반이 됐다. 연 10% 예산 절감을 추진할 때다. 그는 계약심사과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해당 부서가 직접 예산을 줄이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계약심사과는 각 부서가 민간 기업들과 맺은 계약의 타당성을 하나하나 진단했고, 부풀려진 비용들을 줄여나갔다.

버스노선 개편 때엔 업자와의 유착 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해 150여 명에 가까운 교통관리실 직원 대부분을 교체해놓고 일을 시작했다. 고객 제일주의도 도입했다. 미술관과 박물관의 야간개장, 서울시청 앞 횡단보도 설치 등이 단적인 사례다.

CEO는 성과를 중시한다.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을 활용한다. 청계천 복원의 관건은 수천여 상인들의 반대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였다. 서울시 공무원들은 4200차례나 상인들을 만나 설득해냈다.

유능한 CEO일수록 사람을 쓰는 기준은 일이 된다. 박형준 의원은 “이 전 시장은 능력 위주로 사람을 등용한다. 일을 할 때는 인간성보다 능력을 중시한다. 그러다 보니 따뜻하다는 말을 좀체 듣지 못한다”고 말했다. 때론 장점이 약점이 되기도 한다. 이 전 시장의 메시지를 담당하는 신재민씨는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이 전 시장에 대한 제일 나쁜 이미지는 독선적이라는 것이다. 유능하면 할수록 흔히 독선적이고 건방지다는 이미지를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성공한 CEO란 이미지가 밝은 색채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CEO로 장수했던 시절은 성장 지상주의가 풍미했던 개발시대였다. 박근혜 전 대표 측의 이혜훈 의원이 “지난 시절 건설회사엔 정경유착이라는 전근대적 잔재가 있지 않았느냐”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가 청렴결백해서 대선후보로 선호한다는 이가 극히 미미한 것(0.4%)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현대건설 CEO를 15년이나 지낸 이른바 ‘건설족’이란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의 핵심 공약인 경부 대운하에 대해 “토목공사 벌이듯 나라를 운영하려고 한다”(김종민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는 비판도 나온다.

이익극대화를 추구하는 CEO는 공동의 선(善)을 목표로 하는 국가 지도자론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도 그를 깎아내리는 단골메뉴다. 신기할 정도로,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CEO 출신 대통령이 드문 것도 그 때문이라는 설명까지 곁들여진다. 이에 대해 정두언 의원은 “서울시장으로서 기업가정신과 공익을 성공적으로 조화시켜냈다”고 반박한다. 이 전 시장은 “기업 경영이든 국가 경영이든 경영의 본질은 같다”고 역설해왔다.

주목할 것은 그를 궁지로 몰아넣을지 모르는 ‘검증’의 소재 역시 CEO 시절 생성된 게 많다는 점이다. “재산이 신고된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등의 재산형성 시비도 그중 하나다. CEO로 승승장구했던 화려했던 과거의 한 토막이 그의 발목을 붙잡을 수도 있다. 그걸 뛰어넘어야 대한민국 CEO에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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