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TV 속 패션 읽기]주부라고 귀엽게 입으면 안 돼? 최강희식 신(新) 주부 패션기

중앙일보

입력

이 시대를 사는 여자의 삶은 녹록치 않다. 아내는 아내대로,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딸은 또 딸대로 화나는 일도 참아야 할 일도 참 많다. 이런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투영해주는 건 TV 속 드라마다. 그래서 드라마 여주인공이 갈등에 빠지면 그들의 처지에 몰입돼 함께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반대로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걸 보면 속이 뻥 뚫리는 대리만족을 경험하기도 한다. 아무리 ‘막장’이라 불리는 드라마일지라도 여자의 인생을 담으면 늘 높은 인기를 얻는 이유다.

KBS드라마 '추리의 여왕'에서 호흡을 맞춘 최강희와 권상우. 유설옥 역의 최강희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범죄 사건들을 해결하는 귀여운 전업주부다. [사진 KBS 추리의 여왕 홈페이지]

KBS드라마 '추리의 여왕'에서 호흡을 맞춘 최강희와 권상우. 유설옥 역의 최강희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범죄 사건들을 해결하는 귀여운 전업주부다. [사진 KBS 추리의 여왕 홈페이지]

이달 초 또 한명의 평범한 아내이자 며느리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시작했다. 지난 4월 5일 시작한 KBS 드라마 ‘추리의 여왕’이다. 평범한 전업주부가 뛰어난 추리력으로 범죄 사건을 척척 해결해 나간다는 줄거리도 신선했지만 그 역할을 최강희가 맡았다는 점에서 더 관심이 갔다. 지금까지 엉뚱하고 발랄한 캐릭터를 그려온 최강희가 연기할 주인공 '유설옥'의 캐릭터는 사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다. 하지만 패션에 대해서는 ‘믿고 본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뛰어난 패션 감각을 자랑하는 그가 그려내는 평범한 주부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물방울 무늬 카디컨으로 귀여움을 부각시킨 유설옥의 패션. [사진 KBS 추리의 여왕 홈페이지]

물방울 무늬 카디컨으로 귀여움을 부각시킨 유설옥의 패션. [사진 KBS 추리의 여왕 홈페이지]

드라마 속 유설옥은 엄한 시어미니와 틈만 나면 돈 뜯어갈 궁리만 하는 시누이를 ‘모시고’ 산다. 고등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까닭에 시어머니에게 무시를 당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진심을 다해 만들어 대접할 정도로 바보같이 착한 며느리다.
이쯤되면 유설옥이 불쌍한 여주인공처럼 보일 법도 하지만 오히려 그의 모습은 통쾌함 그 자체다. 경찰이 꿈이었던 설옥은 시어머니의 불호령을 무서워하면서도 몰래 집을 빠져나가 동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해결한다. 이 과정에서 이불빨래를 시키는 시어머니에게 변비가 심하다는 핑계를 대고 화장실에서 몰래 빠져 나와 마약범을 잡는 장면이나, 시어머니에게 자리를 비운 것을 들킬 찰라 주방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해 태연하게 생선을 튀기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치 함께 고비를 넘긴 것 같은 안도감과 묘한 쾌감이 밀려온다. 시어머니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꿈을 소소하게나마 실현시키고 있는 설옥의 모습이 유쾌하고 귀여워서다.

시어머니에게 추리활동을 들키지 않으려 허겁지겁 돌아온 설옥. 당황한 나머지 횟감으로 사온 자연산 도미를 기름에 튀겨 버린다. 넉넉한 스웨터에 영국풍 체크가 새겨진 원피스를 덧입은 모습이 귀엽다. [사진 KBS추리의 여왕 영상 캡처]

시어머니에게 추리활동을 들키지 않으려 허겁지겁 돌아온 설옥. 당황한 나머지 횟감으로 사온 자연산 도미를 기름에 튀겨 버린다. 넉넉한 스웨터에 영국풍 체크가 새겨진 원피스를 덧입은 모습이 귀엽다. [사진 KBS추리의 여왕 영상 캡처]

너비가 넓은 세일러복 스타일의 외투와 목에 두른 작은 스카프가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사진 KBS 추리의 여왕 홈페이지]

너비가 넓은 세일러복 스타일의 외투와 목에 두른 작은 스카프가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사진 KBS 추리의 여왕 홈페이지]

설옥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중요한 요소는 바로 패션이다. 전업주부라해서 옷에 무심하거나 반대로 과하게 신경 쓰지도 않은 균형감 있는 스타일을 보여준다. 최강희가 지금까지 보여줘 온 편안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스타일링이 새로운 ‘주부 패션’을 제시하고 있다.
기본은 ;편하면서도 여성스러운' 캐주얼이다. 최강희의 스타일링을 담당한 강성도 패션 스타일리스트는 "검사 남편을 둔 평범한 가정 주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간격이 넓은 스트라이프, 도트 패턴, 컬러풀한 아이템들로 다양하게 믹스매치해 유설옥 패션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히피를 연상시키는 보헤미안 스타일의 블라우스에 통이 넓은 바지나 넉넉한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는다. 그 위엔 카디건이나 어깨를 덮을 정도로 너비가 넓은 칼라의 외투를 덧입어 여성스럽고 귀여운 매력을 부각시켰다. 몸싸움이 치열한 마트의 타임 세일이나 범죄 현장에서는 큼직한 항공점퍼를 즐겨 입는다. 하지만 하의로는 부드러운 소재의 통 넓은 바지를 입는다든지, 자수가 놓인 스웨트셔츠를 입어 여성스러움을 놓치지 않았다.

극중 최장희는 보헤미안 풍의 브라우스로 여성스러움을 살리기도 항공점퍼로 활동적인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사진 KBS 추리의 여왕 홈페이지]

극중 최장희는 보헤미안 풍의 브라우스로 여성스러움을 살리기도 항공점퍼로 활동적인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사진 KBS 추리의 여왕 홈페이지]

러플이 달린 블라우스에 통넓은 체크무늬 바지, 그 위에 회색 카디건을 입었다. [사진 KBS추리의 여왕 영상 캡처]

러플이 달린 블라우스에 통넓은 체크무늬 바지, 그 위에 회색 카디건을 입었다. [사진 KBS추리의 여왕 영상 캡처]

무심한 듯 툭툭 걸쳐입은 것 같지만 설옥의 패션엔 치밀한 계산이 숨어있다. 먼저 설옥의 밝은 성격과 포근한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함께 입는 옷의 컬러톤을 비슷하게 맞췄다. 강 패션스타일리스트는 "강한 컬러 대비의 옷은 혹여 강한 성격으로 보일 수 있어 최대한 자제했다"고 말했다.
옷은 전체적으로 품이 넉넉한 것을 선택하는 반면 특이한 장식이 있거나 화사한 컬러로 된 옷으로 포인트를 준다. 범죄 현장을 다니며 추리를 하고 또 시어머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뛰어다닐 일이 많다보니 아무리 이뻐도 불편한 옷은 배제했다. 옷이 튄다면 검정색 단화를 신거나 어두운 색 가방이나 스카프를 매 전체적인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든다. 예를들어 여러 층으로 나뉘어져 있는 캉캉 스커트 위에 형광색의 큼직한 스웨터를 입어 튀는 스타일링을 했다면, 여기에 하양·검정색의 무채색 가방을 들어 차분하게 만드는 식이다. 그래서 최강희의 패션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개성 있고 편안하면서도 잘 단장한 여성미를 풍긴다.

형광색 스웨터에 무채색 스트라이프 가방을 매 차분한 이미지를 연출했다. [사진 KBS 추리의 여왕 영상 캡처]

형광색 스웨터에 무채색 스트라이프 가방을 매 차분한 이미지를 연출했다. [사진 KBS 추리의 여왕 영상 캡처]

주변의 많은 여성들이 나이가 들수록 여성스러움을 잃어간다고 토로한다. 특히 가족을 돌봐야하는 전업주부의 경우는 더 하다. 만일 봄나들이를 앞두고 "입고 나갈 옷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면 설옥의 패션에 집중해보자. 여성스러운 옷입기의 새로운 해법을 제시해줄테니.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