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민의 나무 오디세이] 회화나무 있는 집에 큰 인물 난다  

경북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천연기념물 제318호 회화나무.
경북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천연기념물 제318호 회화나무.

회화나무는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대표적인 정원수다. 집안에 회화나무가 있으면 행복이 찾아오고 자손이 벼슬에 올라 출세한다고 믿었다. 양반 마을인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의 종택 앞에는 아름드리 회화나무가 위용을 자랑한다. 회재(晦齋) 이언적(李彥迪)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옥산서원(玉山書院)의 입구 계곡에도 하늘을 찌를 듯이 쭉쭉 뻗은 회화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남평문씨 세거지인 대구 달성군 인흥마을에도 회화나무가 마을 중심에 위풍당당하게 세월을 버티고 있다.

대구 중구 달성공원에 있는 수령 200년 넘는 회화나무. 조선 세종 때 달성토성의 땅을 정부에 헌납한 달성서씨의 구계 서침 선생을 기리기 위해 대구시에서 회화나무의 이름을 '서침나무'로 명명했다. 서침 선생은 달성토성을 국가에 헌납했고 이에 조정에서는 보상을 제의 했지만 사양하는 대신 대구 지역 백성들의 환곡을 깎아달라고 건의해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줬다.
대구 중구 달성공원에 있는 수령 200년 넘는 회화나무. 조선 세종 때 달성토성의 땅을 정부에 헌납한 달성서씨의 구계 서침 선생을 기리기 위해 대구시에서 회화나무의 이름을 '서침나무'로 명명했다. 서침 선생은 달성토성을 국가에 헌납했고 이에 조정에서는 보상을 제의 했지만 사양하는 대신 대구 지역 백성들의 환곡을 깎아달라고 건의해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줬다.

◆조선 사대부가의 대표적 정원수

옛날 선비가 사는 마을 앞에 회화나무를 심고, 뒷산에는 쉬나무를 심었다. 회화나무는 선비가 마을에 살고 있음을 알리며 쉬나무는 열매로 기름을 짜서 등잔불을 밝혀 선비가 학문에 정진하기 위함이다.

'회화나무가 어떻게 생겼더라?' 생김새가 궁금하면 아까시나무에 뾰족한 가시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회화나무와 아까시나무 둘 다 콩과에 속하는 나무로 잎 모양이 기수우상복엽(奇數羽狀複葉)이다. 모양이 서로 비슷해서 중국에서는 아까시나무를 가시가 달린 회화나무라는 의미로 자괴(刺槐)라고 한다.

회화나무는 한자로 괴목(槐木), 꽃을 괴화(槐花)라고 했다. 괴(槐)의 중국 발음이 회[huái]이기 때문에 회나무 혹은 홰나무에서 유래해 회화나무로 부르게 됐다. 회화나무의 한자 槐(괴)는 木(목)+鬼(귀)로 구성되는데 한자 鬼(귀)는 회화나무에 가지가 부러지거나 상처가 생겨 혹처럼 툭 튀어나온 자국을 뜻하는 옹두리를 본 뜬 글자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느티나무도 괴목(槐木)으로 표기하기 때문에 헷갈린다. 중국에서는 회화나무에만 쓰이고 느티나무에는 欅(거)라는 한자를 쓴다. 중국이 원산지인 회화나무는 낙엽활엽교목으로 높이가 30m, 굵기가 직경 2m까지 자라며 잔가지는 푸른색을 띤다.

회화나무꽃
회화나무꽃

회화나무는 7, 8월에 새로 난 가지 끝부분에 황백색 꽃이 핀다. 꽃에는 루틴(rutin) 성분이 10~25%나 되기 때문에 한방에서 고혈압 예방과 치료약으로 쓰인다. 또 부적을 만드는 종이인 괴황지(槐黃紙)를 물들이는 데도 사용했다. 지금 한창 여물고 있는 열매는 긴 콩꼬투리 모양으로 염주나 묵주처럼 잘록하다.

회화나무를 중국에서 학자수(學者樹)라 부르고 영어로도 '차이니즈 스칼라 트리(Chinese Scholar Tree)라고 한다. 명예와 권세, 출세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길상목(吉祥木)으로 대우 받아 왔다. 회화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좋은 기운이 모여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나 인물이 나오며 잡귀신이 감히 오지 못한다고 믿었다. 명나라 때 이시진이 엮은 『본초강목』에는 늙은 회화나무에는 신선이 깃들어 잡신(雜神)의 범접을 막아준다고 기록돼 있다.

옛날 중국 궁궐에는 주나라 관제를 기록한 『주례』(周禮)에 따라 조정 앞에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 선비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벼슬인 삼공(三公) 즉, 태사(太師) 태부(太傅) 태보(太保)가 이 나무를 향해 앉았기 때문에 삼괴(三槐)라고 부르기도 했다. 조선도 이를 본받아서 궁궐에 회화나무를 심었다. 창덕궁 돈화문 안쪽의 회화나무들은 천연기념물 제472호로 지정돼 여전히 기세가 당당하다. 그래서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터에는 오래된 회화나무가 남아서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대구 중구 종로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회화나무 일명 '최제우나무'.
대구 중구 종로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회화나무 일명 '최제우나무'.

◆사연이 많은 회화나무

최제우나무=경상감영의 옥사(獄舍)가 위치했던 대구 중구 종로초등학교 교정에는 수령 400년쯤 되고 높이 17m, 둘레 2.8m인 회화나무가 있는데 별칭은 '최제우나무'다. 일찍이 사회 평등을 주장하며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가 경상감영 감옥에 갇혀있었다는 사실에 착안해 나무 이름을 지었다. 수운의 고초를 이 나무는 마지막까지 지켜봤을 것이다.

천연기념물 제318호=경북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마을 한가운데 있는 당산나무로 천연기념물 제318호로 지정된 이 나무의 수령은 500여 년 정도로 추정된다. 사람 가슴 높이 나무 둘레가 5.9m나 되는 엄청나게 큰 나무로 애틋한 전설이 전해진다. 고려 공민왕 때 마을에 사는 젊은이가 전쟁에 나가면서 나무를 심고 부모께 자신을 돌보듯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했는데 젊은이는 전장에서 죽고 부모는 나무를 자식처럼 잘 보살펴 오늘날에 이른다고 한다.

경주 계림 회화나무=계림은 역사적 공간인 시림(始林)이자 경주김씨 시조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깃든 곳이다. 수령이 1300여 년이라고 적힌 안내판 뒤의 회화나무는 거대한 인공 그루터기와 뿌리에서 새로 자란 맹아 줄기가 앙상하기 짝이 없지만 삼국시대에 회화나무가 한반도에 자리 잡고 있었음에 증명한다.

경북 경주시 계림에 있는 회화나무.
경북 경주시 계림에 있는 회화나무.

안동 맹사성과 회화나무=안동 시내에 오래된 회화나무를 맹사성(孟思誠)이 심었다는 전설이 있다. 맹사성이 안동부사로 부임했을 때 순시하다가 여기저기서 젊은 과부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사연을 알아본 뒤 안동의 지세를 면밀히 살펴보고 시내 여러 곳에 회화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풍수지리에 능통한 맹사성이 풍수적 결함을 보완, 처방한 일종의 '비보풍수'에 회화나무를 활용한 셈이다.

◆남가일몽 고사 품은 나무

중국 당나라 사람 순우분은 자기 집 남쪽에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어느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 꿈에 괴안국(槐安國) 왕의 환대를 받고 왕의 사위가 되고, 남가군(南柯郡)이라는 지역의 태수를 지내며 20여 년간 선정을 베풀고 그 또한 호강했다. 하지만 태수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눈을 번쩍 뜨니 그가 누린 호강은 회화나무 아래에 있는 개미나라에서 벌어진 꿈속의 일이었다. 전기소설 『남가태수전』에 나오는 '괴안몽'(槐安夢) 얘기다. 인생이 덧없고 한때 부귀영화가 부질없을 때 자주 쓰는 고사 '남가일몽'(南柯一夢)이 바로 회화나무에서 비롯됐다.

사람들은 회화나무가 자유분방하게 가지를 뻗는 게 선비의 호연지기(浩然之氣) 기개와 닮았다고 좋아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아무 곳이나 멋대로 가지를 뻗기 때문에 곡학아세(曲學阿世)하기 쉬운 나무로 보는 사람도 있다.

내년 대선에 출마할 각 정당 후보를 뽑기 위한 경선이 한창 진행중이다. 여기에 나선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의 평가나 판단도 회화나무의 기세나 얽힌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왠지 든다.

편집부장chungham@imaeil.com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