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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좀비>가 핫한 이유

무라카미 다카시가 부산에 상륙했다. 그의 세계사를 관통하는 여섯 가지 키워드.

프로필 by BAZAAR 2023.02.28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일본 작가’이자 ‘아시아 앤디 워홀’로 불리는 무라카미 다카시가 회고전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좀비»를 위해 10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그는 이번 전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복싱이 좋습니다’라고 널리 알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기기 위해서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제안하는 것입니다.” ‘귀여움’, ‘기괴함’, ‘덧없음’, ‘원상’ 네 가지 섹션에 걸쳐 전시된 1백70여 점의 작품들에는 무라카미 다카시가 제안하는 현대미술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 IV,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좀비», ‘귀여움’ 전시 전경, 부산시립미술관, 2023.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이우환과 그 친구들 IV,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좀비», ‘귀여움’ 전시 전경, 부산시립미술관, 2023.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슈퍼플랫

<은하철도 999>, <우주전함 야마토> 등 일본 애니메이션에 깊은 감명을 받은 무라카미 다카시는 스스로에게 ‘미술이란 무엇인가?’란 원초적인 질문을 던진다. 일본 대중문화가 낳은 오타쿠 문화가 서양권에서 주도하는 현대미술보다 ‘미성숙’한 취급을 받는 현상에 대해 고뇌한 작가는 서양과 일본 문화가 상하 개념이 아닌 동등하고 평평한 구조에 있다는 ‘슈퍼플랫(super-flat)’ 개념을 생산한다. 이를테면 캐릭터 ‘미스터 도브(Mr. DOB)’를 캔버스에 담으며 서양과 일본을 결합시켰는데, 이는 ‘고급미술(high-art)’을 상징하는 서구 미술에 ‘저급미술(low-art)’을 대변하는 일본의 서브컬처를 편입시키려는 일종의 전략이었다. 전시장 곳곳을 향유하며 그의 슈퍼플랫 개념에는 한계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페인팅에서는 ‘죽음과 삶’을, NFT <무라카미 플라워>(2000)을 현물화한 시리즈에서는 ‘디지털과 현실’을 제안하며 모든 것을 ‘평평한’ 구조로 만들었다. 무라카미에게 이질성은 곧 슈퍼플랫이다.
 

#오타쿠

254cm 글라스 파이버로 제작한 무라카미 다카시의 <My Lonesome CowBoy>(1998) 피규어는 뉴욕의 소더비 경매에서 약 1백64억원에 낙찰되며 ‘세상에서 가장 비싼 피규어’로 등극한 바 있다. 아쉽게도 이번 전시에는 회화가 피규어를 대신했지만, 그의 또 다른 대표작 <미스 코코>(1997) 피규어를 만나볼 수 있었다. 강조된 인체 곡선부터 미니스커트, 교복 넥타이, 플레이보이 버니와 같은 구두, 톡톡 튀는 색감, 그리고 만화 여자주인공 캐릭터와 유사한 신체 비례까지. 일본 팝미학과 서양 문화적 이상을 결합한 다소 선정적인 ‘여성상’ 뒤에는 일본의 현대문화뿐만 아니라 여성의 신체를 상품화하는 세계적인 강박 관념을 드러낸다. 90년대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히로폰 시리즈는 오타쿠 문화를 ‘예술’로 승화시킨 만큼 무라카미의 중요한 업적임을 깨달았다.
 

#미스터 도브

도라에몽과 슈퍼소닉 이미지를 결합시킨 ‘미스터 도브’는 향후 작가의 상상력에 불을 지피는 요소로 작동했다. 1970년대 만화 속 명대사와 당시 코미디언의 유행어를 합성한 ‘도보지테 도보지테 오샤만베’의 앞글자를 따와 1993년에 창조해낸 미스터 도브는 무라카미의 작품 속에 여러 모습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귀여움’ 섹션에 펼쳐진 <727 드래곤>(2018), <탄탄보: 감은 눈으로도 볼 수 있는 불꽃과의 조우>(2014), <스파클/ 탄탄보: 영원>(2017)에는 미스터 도브에서 진화된 괴물성을 드러낸 캐릭터 ‘탄탄보’가 담겨있다. ‘기괴함’ 섹션에 전시된 <프랜시스 베이컨에 대한 오마주: 이사벨 로손과 조지 다이어의 두상에 대한 연구 (밝은 배경)>(2017)에서 또한 미스터 도브 캐릭터를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의 불안을 강렬한 이미지로 표현하며 평생 30편의 삼면화를 제작한 프랜시스 베이컨을 존경해온 무라카미는 미스터 도브 캐릭터를 활용하여 20년간 일련의 베이컨 오마주 시리즈를 제작하게 된다. 미스터 도브는 어쩌면 무라카미 다카시의 ‘부캐’가 아닐까.
 
 무라카미 다카시, <스파클/ 탄탄보: 영원>, 2017, 복합 재료, 240x735cm, Francois Odermatt Collection. 이우환과 그 친구들 IV,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좀비» 전시 전경, 부산시립미술관, 2023.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무라카미 다카시, <스파클/ 탄탄보: 영원>, 2017, 복합 재료, 240x735cm, Francois Odermatt Collection. 이우환과 그 친구들 IV,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좀비» 전시 전경, 부산시립미술관, 2023.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동일본 대지진

동일본 대지진은 무라카미의 작업에 중추적인 영향을 끼쳤다. 2011년 지진이 터진 이후 그는 앞서 언급된 오타쿠, 서브컬처 등을 표현한 작업에서 전통, 종교, 철학으로 회귀하고 ‘예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사유를 펼쳐나간다. “저희 가족은 신흥종교를 믿었고 21세에 탈퇴한 이후에는 종교에 회의적인 사람이 됐습니다. 하지만 대지진을 방송으로 보는 순간 종교가 시작되는 순간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고통스러운 사람을 진정시켜주는 이야기를 부여하는 것이 종교의 핵심임을 깨달았다. 1885년 대지진 이후 예술가 카노 카즈노부가 부처의 가르침과 지침을 수호하는 오백나한을 묘사한 것처럼, 무라카미 또한 오백나한도를 제작하게 된다. ‘덧없음’ 섹션에 선보인 작품 <죽은 영혼들의 섬>(2014)과 <붉은 요괴, 푸른 요괴와 48나한>(2013)이 바로 당시 생성한 작품들이다. 그의 현란한 스타일로 재현한 불교의 오백나한과 금강역사, 아미타 내영도 등은 재난의 땅과 섬, 그리고 그로부터 살아남는 사람들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사유하도록 한다. 무라카미가 창조한 ‘스토리’는 하나의 종교이다.
 

#요괴

전시장 곳곳에서 무라카미가 창조한 다양한 요괴와 마주한다. 그는 요괴에 끌리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에겐 병, 재해, 전쟁 등 다양한 공포가 있습니다. 두려움을 실체화한 것이 괴물이나 요괴입니다. ‘이런 공포가 있었지’ 하며 공감해 주길 바랍니다.” <붉은 요괴, 푸른 요괴와 48나한>은 오백나한도의 북현무 부분에 나오는 두 요괴와 48나한을 형상화한 작업이다. 우리나라의 도깨비와 유사한 모습을 띠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두 요괴들은 인간에게 재앙을, 또는 잘못을 저지르면 잔혹하게 죽이거나 잡아먹는 존재가 아닌, 사찰 입구에서 공간을 수호하고 불법을 수호하며 악을 물리치는 존재로 묘사된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아버지를 잃은 소년이 시골마을로 이사하며 겪는 모험담을 담은 SF판타지 영화 <젤리피쉬 아이즈>(2013)에서도 일본의 민담, 설화, 만화 등의 요괴 캐릭터들을 혼성하여 창안한 53점의 요괴가 등장한다. 무라카미의 요괴는 인간의 영혼을 구제하는 존재다.
 

#NFT

전시장에서는 NFT 작업을 현물화한 무라카미의 근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마치 놀이동산과도 같은 ‘귀여움’ 섹션에 펼쳐진 <무라카미 플라워>(2022) 시리즈가 바로 그 예다. 3년 전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무라카미는 작품에 대한 새로운 고민 단계에 진입했다. 그는 재난과 같은 상황이 전 세계적으로 지속되면서 도망갈 곳이 없다고 느꼈다. “종교도 기능하지 못하게 됐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스토리도 만들 수 없는 상황에 빠졌었죠.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아이들이 온라인 수업 등 메타버스라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리얼리티를 이루는 모습을 보며 깨달음을 얻었다. NFT라는 또 다른 예술을 통해 스토리를 넘어서 ‘가상세계 속의 현실’과 ‘실질적인 현실’, 두 가지 현실을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픽셀 그래픽을 결합시켜 불교의 108번뇌와 연관된 <108 디지털 플라워>(2022)가 탄생했다. 디지털 이미지가 다시금 실체화된 일종의 설치물을 감상하는 것도 큰 재미. ‘기괴함’ 섹션에서도 그의 NFT 작업 <클론 X>(2022)를 확인할 수 있다. 무라카미가 창조한 ‘현실’을 마주하며 새로운 ‘차원’을 경험했다.  
 
※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좀비» 전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3월 12일까지 열린다.
 

Credit

  • 어시스턴트 에디터백세리
  • 사진부산시립미술관 제공
  • 디지털 디자인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