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거장 차이콥스키의 인생과 음악을 뮤지컬로 재탄생시킨 ‘안나, 차이코프스키’의 한 장면.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클래식 거장 차이콥스키의 인생과 음악을 뮤지컬로 재탄생시킨 ‘안나, 차이코프스키’의 한 장면.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안나, 차이코프스키’는 클래식 거장의 인생과 음악을 대학로 뮤지컬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베토벤의 삶과 음악을 담은 팩션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의 제작사 과수원뮤지컬컴퍼니가 두 번째로 내놓은 작곡가 시리즈다. 국내에서 차이콥스키를 주인공으로 하는 뮤지컬이 무대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차이콥스키는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공주’ ‘호두까기 인형’ 등 발레곡을 비롯해 ‘비창’ 등 교향곡과 ‘피아노협주곡 제1번’ 등 여러 걸작을 남긴 러시아 작곡가다. 뮤지컬은 전쟁 중인 러시아를 배경으로 차이콥스키(배우 에녹·김경수·박규원 분)와 그의 비서이자 제자 알료샤(김지온·정재환·김리현 분)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자극적인 서사나 연출 없이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격조 있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처럼 감상할 수 있다. 눈보다 귀가 즐거운 뮤지컬이다. 바이올린·비올라·첼로·플루트·클라리넷·팀파니·신시사이저·퍼커션 등 9인조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넘버를 듣고 있으면 마치 클래식 공연장에 있는 느낌이 든다.

뮤지컬은 차이콥스키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 ‘예브게니 오네긴’ ‘호두까기 인형’ 등을 작곡하면서 겪는 내적 갈등을 밀도 있게 그린다. 재미있는 건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나오는 인물들이 살아나 현실 세계의 사람들과 만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작품세계와 현실세계가 섞이면서 단조로울 수도 있는 스토리가 한결 깊어진다.

주인공 차이콥스키보다 눈에 띄는 인물은 그의 곁에서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가상의 문학잡지 편집장 안나(김소향·최수진·최서연 분)다. 배우 김소향이 작품 말미에 부르는 넘버 ‘작은 꽃’은 이 작품의 백미다. 안나가 전쟁이란 비극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말자고 노래하는 장면이다.

클라이맥스에서 김소향의 감정이 폭발하자 객석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이 보였다. 김소향이 언론 인터뷰 등에서 “이 노래 하나 때문에 이 작품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산과 같은 김소향의 존재감이 결과적으로 다른 캐릭터들을 산 아래 저 밑까지 밀어낸 건 아쉬운 대목이다. 공연은 서울 동숭동 유니플렉스에서 이달 30일까지.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