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분재, 이길원

분재



이길원



애초엔 등이 곧은 선비였다


가슴엔 푸르름을 키우고


높은 하늘로 고개를 든 선비였다


예리한 삽이 뿌리를 자르고


화분에 가두기까지



푸르름을 키우면 키울수록


가위질은 멈추질 않았다


등이라도 곧추세우려면


더욱 조여 오는 철사줄


십 년을, 또 십 년을…



나는 곱추가 되었다


가슴에 키우던 푸르름을


언뜻 꿈에서나 보는


등 굽은 곱추가 되었다


사람들은 멋있다 한다



[태헌의 漢譯]


盆栽(분재)



當初吾爲背直儒(당초오위배직유)


胸養靑氣欽高天(흉양청기흠고천)


忽然根切於銳鍬(홀연근절어예초)


吾身被囚於花盆(오신피수어화분)


愈養靑氣剪愈數(유양청기전유삭)


欲挺曲背鐵砂緊(욕정곡배철사긴)


一十霜(일십상)


又十年(우십년)


吾人終爲一佝僂(오인종위일구루)


胸養靑氣夢中見(흉양청기몽중견)


脊背彎曲如駱駝(척배만곡여낙타)


人人皆謂誠好看(인인개위성호간)



[주석]


* 盆栽(분재) : 분재.


當初(당초) : 처음에, 애초에. / 吾爲(오위) : 나는 ~이다, 나는 ~이었다. / 背直儒(배직유) : 등이 곧은 선비.


胸養靑氣(흉양청기) : 가슴에 푸른 기상을 기르다. / 欽高天(흠고천) : 높은 하늘을 흠모하다.


忽然(홀연) : 문득, 갑자기. / 根切於銳鍬(근절어예초) : 뿌리가 날카로운 삽에 의해 잘리다.


吾身(오신) : 내 몸. / 被囚於花盆(피수어화분) : 화분에 가두어지다.


愈養靑氣(유양청기) : 푸른 기운을 기르면 기를수록. / 剪愈數(전유삭) : 가위질이 더욱 잦아지다.


欲挺曲背(욕정곡배) : 굽은 등을 곧추세우려 하다. / 鐵砂緊(철사긴) : 철사가 굳게 얽다.


一十霜(일십상) : 10년.


又十年(우십년) : 또 10년.


吾人(오인) : 나. / 終爲(종위) : 마침내 ~이 되다. / 一佝僂(일구루) : 한 사람의 곱추.


胸養靑氣(흉양청기) : 여기서는 ‘가슴에서 기르던 푸른 기상’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 夢中見(몽중견) : 꿈속에서 보다.


脊背彎曲(척배만곡) : 등이 굽다, 등의 굽음. / 如駱駝(여낙타) : 낙타와 같다.


人人(인인) : 사람들. / 皆謂(개위) : 모두 ~라고 말하다. / 誠好看(성호간) : 정말로 보기가 좋다, 정말 멋있다.



[직역]


분재



애초에 나는 등이 곧은 선비였다


가슴엔 푸른 기상 기르고 높은 하늘을 흠모하였다


문득 예리한 삽에 뿌리가 잘리고


내 몸은 화분에 가두어졌다


푸르름을 기르면 기를수록 가위질은 잦아지고


굽은 등을 곧추세우려니 철사가 옥죄어 왔다


십 년,


또 십 년…


나는 마침내 한 곱추가 되었다


가슴에 기르던 푸르름은 꿈에서나 보았다


등이 굽어 낙타와 같으나


사람들은 모두 정말 멋있다고 한다



[漢譯 노트]


분재를 축소지향적인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역자 역시 오랜 기간 동안 그렇게 알고 있었다. 물론 오늘날 우리나라 분재가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기실 분재는 중국 당(唐)나라 때부터 있었던 원예 기술의 하나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이미 전래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시기에 우리 분재 기술이 일본에 전래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시대에는 특히 문인들이 애호하여 이규보(李奎報)나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등 기라성과 같은 당대(當代) 명사들이 분재를 주제로 한 시문(詩文)을 다수 남겼다. 그러니 조선시대에는 어떠했을지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오늘날 분재 기술자들이나 분재 애호가들은 분재를 하나의 예술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충분히 수긍이 가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분재는 사람이 식물에게 가하는 일종의 전족(纏足)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인위적으로 생장을 억제하여 고통을 강요하고 마침내 오그라든 그 식물의 몸을 우리가 즐긴다는 것을 가슴 아파한 데서 시인의 시상(詩想)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가슴에는 푸른 기상을 기르고 높은 하늘을 흠모하던 등이 곧았던 선비가, 사람에 의해 등이 굽어 마침내 낙타와 같이 되었음에도 세상 사람들이 멋있다고 환호한다는, 비애의 아이러니가 이 시의 주지(主旨)이다.


역자는, 방문(房門)이나 대문(大門)을 수고롭게 나서지도 않고 자연을 즐기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이 분재 문화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그 편의성과 멋스러움 때문에 분재를 즐기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도 여전히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개인의 기호(嗜好)나 생업(生業)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역자가 분재를 대할 때면 언제나, 밭 가장자리에서 소나 개구쟁이들에게 시달려 제대로 자라지 못해 작달막한 키로 애처롭게 열매를 달고 있던 농작물을 바라볼 때처럼,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세파에 휩쓸려 이울거나 진영 논리라는 그 좁은 틀 안에 갇혀, 정의(正義)에 대한 신념(信念)조차 왜소화된 이 시대의 지식인들도 분(盆)에서 키워진 식물처럼 안타까운 존재가 아닐까 하는 것이 그저 역자만의 생각일까?


역자는 3연 15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12구의 고시로 한역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구(詩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두 구를 삼언(三言)으로 처리하였다. 한역시는 짝수 구마다 압운하였으며 그 압운자는 ‘天(천)’· ‘盆(분)’· ‘緊(긴)’· ‘年(년)’·‘見(견)’·‘看(간)’이다.


2020. 1. 28.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