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 장혁 /사진=sidusHQ
'보통사람' 장혁 /사진=sidusHQ
'마초'인 줄 알았는데 생각외로 달변가다. 수컷 향기 풍기는 터프한 외모 때문에 말 걸기가 조금 어려웠다. 하지만 눈이 마주치자, 선뜻 묻지 않은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무심하게 던지는 장혁(42) 스타일의 배려다.

장혁은 올해로 배우 생활 20년 차에 접어들었다. 1997년 SBS 드라마 '모델'로 데뷔한 그는 1999년 KBS2TV '학교'에 출연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정우성의 이름에 뒤따랐던 '청춘스타'의 계보를 그가 이었다.

그는 드라마, 영화를 가리지 않고 출연하면서 시청률과 흥행으로 대변되는 대중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 최근 종영한 OCN 드라마 '보이스'에서 장혁은 형사 무진혁 팀장을 연기해 해당 방송사 역대 최고 시청률 수립의 일등공신으로 꼽혔다.

이 기세를 타고 장혁이 2년만에 스크린에 복귀한다. 롤모델로 손꼽아왔던 선배 손현주와 영화 '보통사람'을 통해서다.

◆ "손현주 없는 앞마당 내가 지켜"

'보통사람'에서 장혁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명분이 최우선인 냉혈한 안기부 실장 규남 역을 맡았다. 그의 필모그래피상 가장 악한 역할임이 틀림없다. 장혁이 연기한 규남은 전작들과 호흡도, 연기 톤도 달랐다. 힘을 빼고서도 날이 바짝 서 있었다.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장혁은 대중에게 익숙한 이미지의 안기부와는 다르게 해석했다고 밝혔다.

"'강남 1970'이나 '그때 그 사람들'과 같은 작품을 봤습니다. 연기자들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아닙니다만, '안기부는 이래야 한다'는 식의 분위기가 있더라고요. 찍어 내리는 듯한 말투랄까요? 시나리오에서 규남은 내지르는 신도 있지만 감독과 상의 끝에 반대되는 연기를 하게 됐습니다. 권유형의 문장을 사용하는 사람이요. 유연하고 부드럽지만, 압도적인 위협감이 있어야 했습니다."

장혁은 중국영화 '바람의 소리'에 등장하는 고문 기술자 캐릭터에서 레퍼런스를 따왔다고 설명했다.

"규남은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지시만 내릴 뿐이죠. 고문하는 장소에서조차 고문한 적이 없어요. 감정을 빼고 건조함으로 채웠습니다. '보통사람'들이 부딪히는 거대한 벽이면서 시스템이죠. 유일하게 감독이 디렉션을 준 부분이었어요."

규남은 보통의 삶을 살아가던 강력계 형사 성진(손현주)에게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을 조작하라고 교묘히 끌어낸다. 때문에 '보통사람'에서 손현주와 장혁의 감정선은 드라마의 가장 큰 축에 해당된다.

"극 중 '누가 앞마당 지키냐'라는 손현주 선배의 대사가 있습니다. 손 선배가 안 계실 때는 제가 앞마당 지켰어요. (웃음) 연기가 맛깔스러운 배우들과 합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일입니다. 성진의 안타고니스트(적수)로 등장하는데 관객의 입장에서는 제가 봐도 밉살스럽고, 미안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나름대로 시대의 희생물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보통사람' 장혁 /사진=sidusHQ
'보통사람' 장혁 /사진=sidusHQ
◆ 장혁에 대한 몇가지 오해

장혁은 한방이 있는 배우다. 드라마 '햇빛 속으로', '명랑소녀 성공기'(2002), '고맙습니다'(2007), '추노'(2010), '마이더스', '뿌리깊은 나무'(2011), '아이리스2'(2013), '운명처럼 널 사랑해'(2014) 등. 그가 출연해 큰 인기를 끈 드라마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영화에서도 장혁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증명했다. 영화 '짱'(1998), '화산고'(2001), '영어 완전 정복'(2003),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2004), '의뢰인'(2011), '감기'(2013), '가시'(2013) 등 장혁은 정극, 액션, 로맨틱 코미디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을 거듭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혁의 연기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추노'다. 이 드라마에서 그는 대길 역을 맡아 액션과 감정선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폭 넓은 팬층을 얻게 됐다. 이후 완전히 다른 장르로 대중 앞에 섰을 때, 그는 생각지 못한 지적을 받게 된다. 언제까지 '대길'연기를 할 거냐고.

이에 장혁은 절친한 배우인 차태현을 예로 들었다. 차태현 또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 견우 캐릭터로 톱스타 반열에 올랐기 때문.

"태현이는 견우에요. 뭘 하든 견우죠. 로버트 드니로, 실베스터 스탤론도 걸출한 대표작이 있어요. 배우로서 색깔을 지우는 것이 미덕일까요? '추노'는 제 대표작이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았으면 해요. 장혁의 색깔을 확실히 살리고 싶습니다."

또 장혁은 대중이 그의 액션 연기에 대해 드러내는 반응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제가 하는 액션은 다 절권도래요. 사실 주짓수, 시스테마도 손기술만 보면 비슷하게 보일 수 있거든요. 20년 동안 액션을 전문적으로 배우면서 정말 열심히 해왔어요. 복싱도 하고, 전문 스턴트맨 못지 않게 몸을 던지고 있습니다. 제게 스턴트를 배우는 후배들도 있다니까요?"
'보통사람' 장혁 /사진=sidusHQ
'보통사람' 장혁 /사진=sidusHQ
◆ "전적이 화려한 선수가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해요"

'보이스' 종영과 함께 '보통사람'이 개봉되고 숨 고르기를 한 만도 한데 장혁은 차기작 선택을 앞두고 있다.

"복싱을 예로 들게요. 전적이 화려한 선수가 치열하게 살지 않았나 싶어요. 곧 다음 작품을 결정해야 합니다. 관객이나 팬들이 제게 보고 싶어 하는 면이 따로 있을 것 같아요. 그 의견도 중요하지만 배우가 분명히 원하는 것, 주관대로 연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관객과 평행선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그의 노력에 상응하는 상복도 뒤따랐다. 방송 3사 연기대상 주요부문을 휩쓸고, 예능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로 연예대상 인기상까지 받았다. 수상내역에는 유일하게 영화제가 빠져있었다.

"20년 동안 배우 생활을 했는데 영화제에 대한 기억이 없네요. 너무 신기합니다. 부산영화제 초기에 박신양 선배가 가자고 해서 잠깐 들린 적은 있지만, 대종상 시상식 같은 곳은 간 적이 없어요. 항상 촬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에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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