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 부여의 옛 이름입니다. 찬란했던 백제의 서울이었던 부여는 그러나 지금은 백제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백제가 워낙 옛 나라다 보니 당시의 건물이나 유적은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부여는 오히려 다른 도시들보다 크게 내세울 볼거리가 적은 도시입니다. 한국 대부분의 도시가 그렇듯, 건축적으로도 주목할 작품이 들어서 있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모처럼 이 부여에 눈길 끄는 작품이 새로 생겼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문을 연 롯데부여리조트 건물입니다. 지난 11월 이곳에 다녀왔습니다. 국내 대표적인 건축사진가인 김재경 선생님의 깔끔하고 시원한 사진을 중심으로 보시겠습니다. 보시면 바로 알겠지만 멋있는 사진은 김재경 선생 것, 후진 사진들이 제겁니다. ㅠㅠ

 저 건물은 큰 활처럼 휘어 돌아가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부채꼴처럼 원을 그리는 건물 두 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렇게 원을 그리는 모양의 건물은 많지는 않아도 드문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건물은 그동안 한국 건물들, 특히 콘도 건물들에서 보지 못했던 여러 새로운 점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 건물은 전망 좋고 빛 잘 드는 남쪽은 객실들이 배치되고 그 뒤쪽은 복도가 배치되었습니다. 그래서 뒤쪽이 심심하기 쉬운데, 오히려 정 반대로 건물 뒤쪽이 더 화려하고 볼거리가 풍부합니다. 그리고 건물 바로 앞에는 동그란 모양의 원형 회랑 한옥건물이 들어섰습니다.

 돌돌 말려 있는 건물벽도 무척 색상이 다채롭습니다. 어떻게 생긴 걸까요?

 다양한 색깔의 컬러 루버를 벽에 장식으로 붙였습니다. 루버는 색깔로 포인트를 주는 동시에, 그림자로 건물 표면에 새로운 무늬를 만들어줍니다.

 건물 중간에 갑자기 한옥 하나가 콕 박혀 있습니다. 전혀 달라 보이는 두 건축양식이 충돌하고 연결됩니다. 이 건물을 설계한 이는 김승회 서울대 건축과 교수입니다. 김승회 서울대 교수와 강원필 경영위치(건축설계사무소 이름) 대표의 공동 작품입니다.

 김 교수와 강 대표는 15년 넘게 경영위치란 사무소를 함께 운영하며 모든 작품을 공동으로 설계해왔습니다. 한 건물을 건축가 두 명이 함께 설계하는 경우는 많지만, 이 두 사람처럼 오랫동안 공동 작업을 해오는 건축가 콤비는 국내에선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건축계의 소문난 듀오입니다.

 이 건물이 건축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여러가지입니다.

 우선, 콘도건축이 재미있어졌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콘도건축은 거의 비슷했습니다. 크고 웅장하긴 해도 그 모양새가 다 엇비슷했던 것은 서양식 느낌 물씬 풍기게 기둥 장식 넣거나 각종 유럽풍 장식으로 꾸며 마치 예식장들이 화려해도 다 비슷한 짝퉁 서양건물 이미지인 것들처럼 오히려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호텔 건축과 예식장 건축의 그 중간 어디쯤 애매모호한 지점에 있는 표피만 강조하는 키치적인 건물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서도 건물은 무지하게 컸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방을 길게 늘어 세워 건물 복도가 한없이 긴, 그러면서도 내부는 기숙사 같은 또는 크게 뻥튀기한 아파트 같은 단조로운 곳이 많았습니다.

 이 건물은 그런 관습적이고 볼썽사나운 장식에만 치장하는 한국 상업 건물들 특유의 유치한 강박관념을 어느 정도 떨쳐냈고, 색상이 다양한 디자인으로 색감이 풍성하지 못한 다른 콘도들보다 훨씬 경쾌하면서도 눈길을 확 붙잡습니다. 그동안 콘도건축은 국내 유명 건축가들보다는 비슷한 디자인을 찍어내는 공장식 설계법인이나 시공회사 디자인팀들의 빤한 설계 일색이었는데, 이렇게 유명한 건축가를 기용한 점도 도드라집니다. 두 건축가는 설계현상경기에서 당선되어 이 건물을 디자인했습니다. 기존 콘도건축들의 아쉬움을 극복한 것은 이렇게 전문가에게 설계를 맡긴 덕분이라 하겠습니다.

 콘도처럼 많은 이들이 이용하고, 또 화려한 볼거리가 필요한 대형건물을 국내 유명건축가들이 오히려 하지 않았다는 것, 그게 지금 우리 건축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동안에는 설계 단가를 싸게 해서 빨리 짓는 것들이 우선이었고, 또 건설을 맡은 시공업체들이 설계를 자체 설계팀에서 해서 싸게 해준다는 논리로 공사를 수주하는 관행이 일반적이어서 건축적으로 주목받는 콘도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더 큰 관심거리이자 이 건물이 담고 있는 이슈는 우리 건축계의 오랜 논쟁거리이자 영원한 주제인 `전통과 현대의 조화‘, 또는 `전통의 현대화’란 주제입니다.

 이 콘도 건물은 옛 백제를 재현한 부여 백제문화단지 입구에 있습니다. 전통 건축물 재현 단지 앞에 있으니 `전통과 현대의 조화‘는 어쩔 수 없이 풀어야 할 숙제였습니다. 중간에 박혀있는 한옥 전망대도 그런 의무적인 해결 과제의 산물입니다.

 그동안 우리 현대건축에서 전통의 접목은 건축가들에겐 지긋지긋하고 정말 냉소받는 주제였습니다. 그 이유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콘크리트 건물에 무조건 기와지붕 올리면 된다는 박정희 시대의 마인드를 지금껏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을 현대화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콘크리트 건물에 기와를 얹거나, 기둥이나 처마를 한옥처럼 재현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문제는 이 한 가지 방법만 줄기차게, 건축의 전문가도 아닌 정치인이나 시장 등이 건축에 반영하도록 멋대로 지시하는 관행이라고 하겠습니다.

 한옥 기와지붕을 얹지 않아도 ‘한국인의 춤사위를 표현한 건물’, ‘한국의 갓과 부채를 형상화한 건물’처럼 한국적인 어떤 이미지를 꼭 집어넣어야만 전통이 살아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오히려 엇비슷한 건물만 양산할 수밖에 없겠죠.

 한옥 양식이나 디자인이 필요한 건물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전통적인 것과 특별히 상관없는 건물들에도 이런 요구들이 많았고, 그 결과 우리 공공건축에서 이런 전통양식을 접목시킨 건물들 가운데 국내외 건축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건물은 정작 전혀 없는 실정입니다. 오히려 `양복입고 갓 쓴 꼴’인 유치한 건물들만 만들었다는 후대의 냉소와 비판을 더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과의 접목을 피해갈 수는 없는 건물이었습니다. 이 건물이 들어선 곳이 백제 시절 건물들을 재현해 최근 문을 연 ‘백제문화단지’ 입구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백제문화단지 옆이라고 해서 전통미를 표현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전혀 다른 현대적 건물이 대비를 이룰 때 한옥은 한옥대로, 현대건물은 현대건물대로 더 대비되며 도드라질 수도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백제 건축의 전통미를 지금 구현하고 싶어도 당시 백제의 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는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옛 백제 건물은 단 한 채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후 고려시대 건물들과 비슷하리라고 추정할 수는 있어도 실제 어떠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건축이란 비슷해보여도 시대에 따라 변화가 많습니다. 고려의 건물과 조선의 건물은 얼핏 보면 닮아보일 수 있지만 그 풍기는 분위기와 이미지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니 백제 건축은 상상속의 어떤 이미지일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메인 디자인을 맡은 김승회 교수는 백제를 ‘재현’하기보다는 ‘상상’하는 방법을 골랐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라고도 하겠습니다. 그러면 백제란 나라의 문화는 어떠했을까요? 백제 건축이 풍겼을 그 느낌은 어땠을까요? 그건 아주 조금 남아있는 백제 문화재들이 담고 있는 특성이나 느낌에서 유추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백제 문화재들에서 느끼는 백제 문화의 특성은 바로 유려함, 그리고 선의 아름다움, 그리고 유려한데도 에너지가 넘치는 부드러운 힘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느낌을 지금 현대건축으로, 현대인의 삶을 담는 현대건축물이니 백제의 느낌을 전해지지 않는 백제의 양식으로 재현하지 말고 새롭게 상상해 표현하자는 것이 저 콘도건물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저 색상이 다양한 말발굽 모양 본관 건물 못잖게 건물 입구에 만들어놓은 저 동그란 한옥 회랑입니다.

 이렇게 완전한 원을 이루는 동양식 목구조 건물은, 뜻밖에도 이 건물이 세계 최초입니다. 중국의 토루 같은 원형 건물이 있긴 하지만 회랑으로 이렇게 원을 만든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실제 백제에 어떤 건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이런 건물이 있었을지도 모르잖아?”라고 즐겁게 제안하는 거죠.

 이 원형회랑은 김승회씨가 콘셉트를 디자인하고 호텔 라궁 등 현대 건축물을 한옥으로 하기로 유명한 조정구 구가건축 대표가 실시설계를 한 건물입니다.

 건축가의 노림수는 또 한 가지 더 숨어 있습니다. 아직도 문화유적 근처에 들어서는 건물은 그래도 한옥지붕을 올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부분 건축가들은 이런 요구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하지 기존 관행을 복사하듯 되풀이하고 싶어하는 작가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 건물은 이렇게 전통을 상징하는 한옥 회랑을 건물 앞에 배치함으로써 전통과 현대를 구분할 수 있도록 배치했습니다. 덕분에 콘도건물 자체는 아주 현대적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회랑은 공간 구성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 만 합니다. 단순히 전통을 상징하는 이미지 장식같은 건물이 아니라, 중요한 기능을 하는 쓸모있는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저 동그란 회랑은 콘도를 방문한 차량이 로비에 사람을 내려주고 돌아나가는 원형 회전로(라운드어바웃) 역할을 합니다. 일반 건물에선 동그란 분수대나 원형 정원으로 꾸며놓는데 아예 한옥 건물로 만든 것이죠. 그러면서 그 가운데 빈 공간은 평소에는 정원이면서 콘도에서 행사를 벌일 때는 이벤트장으로 쓰는 공공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콘도 건물 자체의 디자인과 공간 구성도 흥미롭습니다.

 콘도 건물은 상당히 거대합니다. 엄청난 덩치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건물을 보면 그리 둔중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동행했던 최욱 건축가는 “이 건물은 덩어리가 아니라 선으로 느껴진다”고 평했습니다. 과감한 곡선으로 건물의 무게감을 줄이고 시각적으로 가볍게 느끼도록 연출했다는 평입니다. 이 곡선은 윗 사진으로 보면 알맞게 휘어가는 것 같지만, 실제 그 각도는 상당합니다. 이렇게 강하게 커브를 도는 건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래에서 보면 그 느낌이 사뭇 달라집니다.

 건축사진가 한 바나나 정도의 곡선일 것 같은데 이렇게 보면 꼭 말발굽처럼 크게 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건축을 전공하신 분들은 바로 이 건물을 떠올리실듯 하네요.

 20세기 초 독일 건축가 마르틴 바그너와 브루노 타우트가 베를린에 만든 `말편자 집합주택’. 근대 도시에 걸맞게 열악한 노동자들의 주택을 쾌적하게 만들기 위해 새롭게 시도한 건축물로, 독일을 대표하는 유명 건축유산이다.

 이렇게 원형 디자인으로 한 것은 건축가의 여러 고민과 아이디어의 산물이라 하겠습니다. 건물 덩치가 상당한데 원형이어서 보는 사람의 시선은 상부로 향하게 됩니다. 상부는 하늘과 맞닿아 있습니다. 하늘과 원형 건물이 맞닿는 이 모양이 건물을 덩어리가 아니라 선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이 선이 건물을 가볍게 보이게 합니다. 우리 전통건축의 처마와 비슷한 시각적 원리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동그랗게 안는 동시에 땅도 동그랗게 감싸 안습니다. 그래서 마당의 느낌이 다른 콘도와 크게 달라집니다. 건물 외부 공간의 연출에서 색달라지는 것이겠죠. 이 건물의 또 다른 특징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보통 콘도들은 건물 자체와 내부는 한껏 꾸며도 외부 공간은 무척 심심했습니다. 이 콘도는 마당과 길, 이어지는 동선 등 외부가 풍성합니다. 그런 연출을 위해서도 저 곡선 디자인을 선택한 것입니다.

 거대한 말발굽 두 개가 공간을 나누고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중정 같은 공간이 생깁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 중의 하나는 사실 `입구‘입니다. 기존 콘도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입구입니다. 호텔의 경우 로비를 화려하게 꾸며 볼거리가 많은 편이지만 콘도들은 아파트나 주상복합공간 1층 홀처럼 평이하고 대동소이하게 처리해 특징이 적고 어수선한 공간이 되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이 콘도는 입구에 들어서면 장식이나 인테리어에서 크게 화려하진 않지만 원형 공간 안 중앙 정원이 바로 눈에 들어오면서 아늑한 공간감을 느끼게 됩니다. 보통 콘도는 콘도 건물만 화려하고 바깥은 썰렁해 볼거리가 없는데 건물을 두 개로 분리하고 공간을 잘게 쪼개고, 한옥회랑 등의 볼거리를 외부에 놓아 안에서 바깥을 볼 때도 심심치 않은 것입니다.

 아쉽게도 제 후진 사진뿐이어서 도저히 보여드리지 못하네요. 죄송…. ㅠㅠ 사실 건축가에겐 외부의 디자인보다 오히려 건물과 건물의 관계, 건물과 주변의 관계, 그리고 외부 공공공간의 구성과 변화 같은 것들, 그리고 일반 콘도와 다른 내부의 편복도 처리 같은 부분들이 더 중요했을 겁니다. 건물은 결국 디자인 자체보다는 장소를 만들어내는 종합적인 프로그램적인 측면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이용자들과 거주자들에게 오랫동안 더 큰 영향을 미치며 건물에서 받는 느낌을 만들어내니까요.

 건축이란 다 비슷해 보입니다. 다른 점은 아주 사소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사소한 차이는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공간이 달라지고, 느낌이 달라지고, 거기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콘도는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생활 속의 레저, 여가 공간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껏 좋은 건축물은 드물었습니다. 물론 이 롯데리조트 콘도가 최고의 건물은 아닙니다. 그렇긴 해도 이제 콘도건축이 조금씩 새로워지고 보기 좋아지려는 흐름의 신호탄으로 생각하면 반가운 건물입니다. 상업건물이라도 사람들과 가장 친숙한 건물들이 건축적으로 의미를 담고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모두에게 의미가 있는 변화라 하겠습니다. 한국 콘도건축, 과연 더 재미있어질까요? 그래야겠죠?

글 / 구본준 기자, 사진 / 김재경 건축전문사진가


# 건축 전공자가 아닌 분들께선 재미없으시겠지만 정보 제공 차원에서 김승회 교수와의 인터뷰를 추가합니다.

 구본준 기자 (이하 구) 백제는 건축물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콘도의 입지상 전통에 대한 접목 요구가 강했을 것 같습니다.

 김승회 교수 (이하 김) 사실 백제 건물에 대한 기록은 없고 석탑 몇 개뿐입니다. 우리에게 역사에 대한 상상력은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백제를 상상하되 21세기의 언어로, 목구조 건물과 현대건축으로 상상하자고 했습니다. 그런 다양한 상상을 담아내는 공간이란 뜻에서 이 콘도의 이름을 `백상원’이라고 붙였습니다. 백제에 대한 100가지 상상과 생각을 담는 곳이란 뜻입니다. 건축주가 건축가를 존중해준 것이죠.

  백제란 나라의 문화적인 특징은 무엇이었을까요?

  남아있는 백제의 그릇이나 산수문전, 향로 같은 것들을 보면 힘차면서도 부드럽습니다. 이런 느낌은 다른 문명, 그리고 동시대 문명과도 다른 고상한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서 느껴지는 것을 현대건축으로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유려하면서도 힘이 있는, 그런 느낌이죠. 건축주도 그런 점을 부탁했습니다.

  전통을 현대건축과 섞는 것은 늘 뜨거운 감자입니다. 건축가들에겐 참 지겹고 질리는 주제일 텐데요.

  한옥은 처음부터 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건물 입구를 한옥으로 꾸미고, 원형 회랑을 넣었습니다. 전통이란 것은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입니다. 사실 저도 한옥을 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원형회랑은 동아시아에서 없었던 건데 한옥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상상한 듯합니다. 꼭 전통적인 언어가 아니라도 건물을 백제의 마음으로 담느냐가 중요했습니다. 제가 요즘 `마음‘이란 단어에 빠져 있습니다(웃음). 세상은 결국 마음이더라고요.

  그럼 `콘도’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죠. 콘도를 설계한 것은 처음으로 아는데 무엇이 관심사였습니까?

  많은 콘도가 유니트(단위세대)를 어떻게 잘할 것이냐 관심에 머물렀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마당과 길과 통로를 어떻게 잘 만들까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개별의 집합이 아닌 공동의 공간을 잘 만들어서 그 전 콘도들에 없었던 것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외부의 공간들이 중요했습니다. 기존 콘도건물들 중에선 보광피닉스, 옛날 용평리조트 같은 건물들이 개인적으로 좋았습니다. 외부와 내부가 조화를 이룬 콘도들이었죠.

  건축주가 유명 건축가를 고른 것은 당연한 것일 텐데도 전례가 드물어 오히려 새롭습니다.

  롯데자산개발의 첫 번째 건물이었습니다. 현상설계에 정말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저희가 되었습니다. 구 중복도가 아니라 편복도로 한 점은 큰 차이로 보입니다. 김 기존 콘도에 대한 불만이 그 부분이었습니다. 유니트만 생각하고 외부 공간을 배려하지 않아 결국 공룡처럼 큰 공간이 되어버립니다. 중간 복도가 많아 답답하고 내부가 건조한 느낌이 강합니다. 그래서 다른 콘도를 해보고 싶어서 편복도로 갔습니다. 그래야 복도 채광도 잘되고, 복도가 곡선이 되면서 복도에서 보이는 장면의 변화를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커브를 그리기 때문에 방이 직각사각형이 아니라 사다리꼴이 되어버립니다. 그 대신 공간감이 달라졌습니다. 공간 깊이에 따라 영역이 세 개로 나뉘는 셈인데요, 가장 안쪽 창문 전망 부분은 폭이 넓어지고, 복도 쪽은 좁아집니다. 한 방 안에서도 공간과 느낌이 변하는 거죠.

  파사드가 앞쪽이 아니라 뒤쪽이 된 것도 재미있습니다. 뒤쪽에 복도를 배치하면서 거대한 평면이 나왔는데, 거기 컬러 루버로 장식을 과감하게 할 수 있었네요.

  서로 다른 2개의 파사드가 양면으로 있게 되었습니다. 컬러 루버로 된 단청 색에서 유래한 복도 쪽 입면이 한옥의 배경이 되면서 메인 파사드가 되고요, 전망 좋은 쪽은 발코니 이어지면서 리조트 콘도의 분위기를 냅니다.

  저 컬러 루버는 뭐로 만든 거죠?

  알루미늄에 도장을 한 겁니다. 컬러가 다 달라서 하나의 ‘아트 워크’가 되는 거죠. 색은 12가지입니다. 면이 커서 편안한 색감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단청 색을 파스텔 조로 톤 다운 시켰습니다.

  일반적으론 조금 색다른 정도지만 그동안 롯데그룹이나 콘도건축물들이 보여준 관행을 상당부분 떨쳤습니다. 특히 장식적이고 촌스럽고 화려하게 놀래는 것만 고집해온 롯데의 건물이 이렇게 바뀌다니 의외네요.

  비교적 행복하게 작업한 듯합니다. 건축주의 이해 덕분에 아이디어를 끝까지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원래 김 교수님과 강대표님 두 분은 전국 곳곳의 여러 보건소 건물들을 많이 설계했고, 새로운 디자인으로 소통하는 보건소를 지향해 주목받았습니다. 당시 보건소 건물들을 보면 무척 정제되고 차분한 것들이 많았는데, 최근 이화외고나 과천 주택, 그리고 이번 롯데리조트 등을 보면 훨씬 색상이 다양해지고 과감해졌습니다. 다양한 재미를 해도 어색하지 않게 풀어내는 느낌입니다.

  그동안은 제 스스로 규범이나 규율이랄까요? 그런 것을 만들려 했던 것 같습니다. 모더니즘이란 게 있고, 한국적인 상황이란 게 있는 거잖아요. 우리가 이미 서구의 산업사회의 문명을 받아들였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다른 정서도 있고 상황도 있는 거죠. 필지의 규모나 지형의 특징이라든가, 건축에 대한 사람들의 문화적 인식은 분명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더니즘 건축이 한국에 왔을 때 우리는 새로운 고민을 해야만 하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없으면 뿌리 없이 떠다니는 건축이 되죠.

 저는 그런 점에서 이상이나 김수영 같은 문학 작가들의 고민을 보면서 그 비슷한 것을 느껴요. 고민의 선배들이죠. 제가 개업을 해서 모더니즘 언어가 한국에서 어떻게 진화될 수 있는지 바닥부터 고민할 수밖에 없었어요. 한 10년쯤 넘어서 제 나름의 규율을 세웠다고 할까요? 그 다음부터 좀 자유를 얻은 것 같아요. 그게 2003~4년쯤이었습니다. 그 즈음부터 이화외고, 문학동네, 이우학교를 하면서 자유로워진 것이죠. 물론 자유로워졌지만 그 속에도 규율은 있죠. 제 나름의. 그래도 명랑하고 자유롭고 싶습니다.

  이전 김 선생님 건물들은 정제 또는 절제, 세련미 같은 것들을 무척 추구하신 느낌이었습니다.

  너무 다듬어졌다고 할까요? 저희 건축물이 너무 뭔가를 다듬으려 했던 것 같아요. 정제하려고 하는. 지금은 거친 맛도 맛이라고 생각해요. 전에는 웃을 겨를이 없었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작품할 수 있다고 할까요. 너무 중요해서 웃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위트라고 하는 것, 그게 우리 모더니즘이 가질 수 있다고 봐요.

  앞으로 어떤 건축을 하려 합니까?

  저는 건축이 낮아질 수 있는 데까지 낮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낮은 자리로 내려간 다음에 올라가야 한다는 겁니다. 낮은 자리란 눈을 마주치는 거죠. 제 눈이 높은데 있으면 안 되고 대중, 클라이언트와 눈을 마주치면서 같이 눈높이를 올려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아직 대중들은 전통에 대한 집착이 큽니다. 뭔가 한국적인 것이 필요하다는 믿음이라고 할까요?

  ‘파편’이란 단어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한국 모더니즘은 시작부터 파편적인 구석이 있어요. 우리 역사적 경험도 그렇고. 파편은 단절을 내포하는데 역사가 단절되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들이 개입되어 왔기 때문에 그것이 파편적인 역사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이 알게 모르게 우리 작업에 담겨 있었고, 그래서 정제된 것 같으면서도 ‘파편적 질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역사학회에서 ‘역사의 발전과 건축의 실천’이란 주제로 발표를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는 파편이란 단어를 안 쓰겠다고 밝혔어요. 파편이란 단어에는 자기 연민이 있어요. 이젠 자기 연민을 안 해도 된다, 우리 존재를 굳이 파편이란 연민어린 단어로 설명 안 해도 될 정도로 한국의 문화가 한 단계 위로 올라온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좀 더 자유롭고 편안하게 지금의 문화적 상황을 받아들이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남의 눈으로 나를 보려 했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측정하려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가는 길이 길이고, 우리가 만드는 것이 우리입니다. 그런 자신감이 사회전반적으로 예전보다 강해진 것 같습니다. 건축도 그렇고요. 우리 건축도 제대로 만드는 단계로 온 것 같아 기쁩니다. 그런 부끄러운 자기 타자화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거죠.

  결국 관건은 ‘자신감’ 같습니다.

  흉내가 아니고, 우리의 삶의 뿌리에서 시작된, 우리의 존재 조건에서 시작된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이게 없는 모든 실험은 꽃꽂이 같은 거죠. 일주일 만에 쓰레기통으로 가는.

  저 콘도작업에 대해선 어떻게 자평하십니까?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어요. 사진을 찍고 싶어지는 공간으로 작용하는 것, 그것 보며 너무 즐겁습니다. 다양한 공간 마련되어 있어서 즐겁게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말발굽 커브는 어떻게 나오게 된 건가요.

  말발굽은 땅의 형상과 주변 풍경과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곡선에 대한 제 생각이기도 합니다. 다른 차원의 생각들인 백제의 풍경, 복도에 대한 생각, 그렇게 하면서 재미난 모양의 마당을 만드는 서로 다른 위계의 생각이었는데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된 것입니다. 작은 잔재주보다 큰 포석으로 승부 내고 싶었어요. 이 건물이 커도 알고 보면 간단한 집입니다. 커브 몇 개, 그게 다에요. 디자인한 것처럼 안 보이는 디자인을 추구했습니다.

 이 시대에 만드는 모든 것은 이 시대의 소산입니다. 절대로 과거가 될 수 없어요. 이 시대가 과거를 어떻게 상상하느냐, 그 힘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속에서 자신감도 중요하고요. 르네상스가 그리스와 로마를 불러냈을 때 갖고 있던 생각이 뭐였을까, 피렌체와 베니스가 당시 얼마나 문화적 자부심과 새로운 역사에 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던가 그런 것들이 인상적이에요. 그리스와 로마를 새로운 문화로 탄생시킨 것, 그 힘이 몇백 년 지속한 거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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