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ZINE VOL.122
전시원이
들려주는 이야기
잡초, 초대받지 못한 손님
 
뿌린대로 거두는 것이 정말로 세상의 이치일까요? 그런데 전시원이라면 그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 해당합니다. 씨앗을 뿌리지 않아도 새로운 식물들이 끊임없이 발아하고, 돌보지 않아도 왕성하게 자라며, 거두지 않아도 다음 해에 싹 띄울 씨앗을 스스로 땅속에 저장하는 식물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하지 않는 곳에 발생하는 이런 종류의 식물들에게 사람들은 ‘잡초’라는 명칭을 부여했습니다.
1. 4월이 되면 어김없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쇠뜨기들

전시원을 관리하는 것은 식물을 심는 일과 뽑아내고 잘라내는 일의 연속입니다. 어쩌면 심는 개체수보다 뽑아내고 제거하는 개체수가 더 많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잡초들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하게 되면 어느 순간 심겨져 있던 주인공(식물)은 햇빛을 받지 못해 그늘 속에서 도태되거나 피압되어 사라질 수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2. 쇠뜨기에 파묻힌 구절초
3. 쇠뜨기 제거작업 후에 드러난 구절초

하지만 그렇게 잡초와의 씨름을 계속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절대 그들을 쫓아낼 수 없다는 것과 애초에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완전한 제거가 아닌 적절한 수준에서의 관리로 기준을 바꾸고 전시원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면서 잡초를 새로운 시선으로 자세히 관찰해보기로 했습니다.
4. 좀씀바귀
5. 선씀바귀
6. 벌씀바귀
잡초이지만 예쁜 씀바귀들

장소를 가리지 않고 너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하지만 의외로 예쁜 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일정한 장소에서만 자라준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정원식물입니다. 잡초들이 짧은 시간 안에 그토록 많아질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많은 잡초들이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땅속의 줄기를 이용해서 빠른 속도로 번져나갑니다. 괭이밥, 쇠뜨기, 애기수영, 쑥처럼 관리가 가장 어려운 잡초들의 저력은 지상부에서 만들어내는 많은 씨앗과 함께 지하부에서 만들어지는 근경에서 나옵니다. 눈에 보이는 부분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도 투자해서 성공해나가는 것이 그들의 전략인 것 같습니다.
7. 쇠뜨기 근경
8. 애기수영의 근경
9. 쑥의 근경
10. 괭이밥의 근경
11. 바랭이의 근경
12. 벋음씀바귀의 근경
주의할 사항은 이렇게 땅속줄기로 번져가는 잡초들을 어설프게 잡아 뽑으면 잘려지면서 남은 부분이 다시 살아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잘려진 부분까지 확실하게 제거하지 않는다면 큰 효과를 볼 수가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애기수영은 겨울에도 지상부가 일부 남아있으므로 이른 봄에 제거작업을 시작하는 것이 힘이 덜 들어 좋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얼어있던 땅이 녹으면서 들떠있을 때는 근경이 끊어지지 않고 쉽게 딸려나오기 때문입니다.
13. 겨울을 나는 애기수영
14. 초봄의 애기수영
15. 수꽃이 핀 애기수영
다행히 잡초에게도 약점은 있어 보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햇빛을 좋아하고 그늘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잡초들은 경쟁자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생육을 시작하고, 더 빠르게 결실하면서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자 합니다.
전시원에 자주 발생하는 잡초들 중에는 한두해살이의 생활사를 지닌 풀들이 많습니다. 이 가운데는 무더운 여름부터 발아하기 시작해서 추운 겨울을 그대로 견녀내는 종류도 있습니다. 춥기는 하지만 그래도 햇빛은 풍부한 겨울에 조금씩 양분을 비축하면서 봄을 기다리는 모습인데, 대표적으로 달맞이꽃, 끈끈이대나물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 식물입니다.
16. 끈끈이대나물
17. 달맞이꽃
18. 말똥비름
여름에 발아해서 겨울을 나는 식물들
그런데 비슷한 생활사를 지닌 잡초들이라도 각자 발아시기에 대한 적응에는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달맞이꽃처럼 한여름에 생활사가 시작되는 종이 있는가 하면 냉이, 꽃다지 같은 십자화과 잡초는 무더위가 지나고 좀 더 선선해지는 시기가 되어서야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19. 냉이
20. 꽃다지
식물들은 씨앗을 멀리 산포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잡초들은 질보다 양을 추구하는 무리들로서 작은 씨앗들을 조금이라도 먼 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저비용의 효율적인 방법을 개발하였습니다.
21. 왕고들빼기
22. 지칭개
바람에 날려가는 씨앗
동물의 몸에 붙어서 이동하는 씨앗들도 많은데, 길가 주변에 무리지어 자라는 잡초인 질경이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씨앗을 생산합니다. 열매는 특이하게 사발의 뚜껑이 열리듯이 벌어지는데, 이 씨앗은 물이 닿으면 점액질이 생성되어서 동물의 몸에 달라붙을 수 있게 됩니다. 끈적이는 이러한 성분은 변비치료제로 제품화되어 사람들에게 널리 이용되고 있습니다.
식물의 씨앗은 적절한 발아 시기를 알아내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분석하고 반응할 수 있습니다. 질경이 씨앗은 주변에 다른 종의 씨앗이 없을 때보다 경쟁 식물인 토끼풀 씨앗이 있을 때 35시간이나 더 빠르게 발아한다는 것이 일본의 연구진에 의해 확인되기도 하였습니다.
23. 질경이 열매
24. 비를 맞고 점액질이 부푼 콩다닥냉이 씨앗
괭이밥은 쇠뜨기만큼이나 제거가 어려운 잡초입니다. 환경적응력이 누구보다 뛰어나서 장소를 불문하고 살아갈 수 있으며, 조금의 빈틈만 보여도 슬그머니 들어와서 빠르게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난감한 존재입니다. 이들은 누군가에게 뿌리가 뽑혀나가는 순간에도 씨앗을 더 멀리 퍼뜨릴 수 있습니다.
괭이밥의 씨앗은 겉껍질이 딱딱하지가 않고 흰색의 부드러운 육질입니다. 열매 안에 있을 때는 팽팽하게 압력을 유지하고 있다가 충격이 가해지면 뒤집혀지면서 속에 있는 씨앗을 튕겨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괭이밥을 제거하는 시기는 열매를 맺기 전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제초작업을 하는 시기에 열매가 달려 있다면 뿌리가 뽑힘과 동시에 자극을 받은 씨앗은 여기저기로 퍼져나가게 되어서 도리어 괭이밥의 씨앗을 산포시켜주는 것이 될테니까요.
괭이밥의 꽃,열매,씨앗
무수히 쏟아지는 잡초들의 씨앗은 저장고인 땅속에서 때가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잡초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씨앗의 형태로 대기하고 있는 수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비가 한번 올 때마다 땅속에 잠자던 씨앗들이 깨어나서 발아하는데 장마가 유난히 길었던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잡초가 왕성하게 자라서 관리에 많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정원사의 소원은 자신이 뿌린대로 거두고, 수고한 만큼만 댓가가 주어지는 세상이 오는 것입니다.
<참고문헌>
1.Akira Yamawo, Hiromi Mukai. 2017. Seeds integrate biological information about conspecific and allospecific neighbours. The Royal Society. Vol.284.
수목원과
석사후연구원 안은주     임업연구사 윤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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