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거목들] ③ 박창배 전 한국증권거래소 이사장

입력 2016-02-16 10:22 수정 2016-05-10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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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채 1기’ 첫 내부승진 이사장…IMF 이후 ‘시장관리 새틀’

어떤 산업이 성숙했는지를 판단하는 방법 중 하나는 ‘사람’을 살펴보는 것이다. 박창배 전 한국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거래소 최초의 내부인사 출신 이사장이다. 증권시장의 중추기관인 거래소 이사장은 이전까지 주로 경제관료 출신들이 앉았던 자리다. 비록 후임 이사장들이 다시 외부 인사들로 채워지면서 내부승진의 명맥을 잇지는 못했지만, 이곳을 내부 인사가 채웠다는 것은 자본시장이 그만큼 원숙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기점이기도 하다.

박 전 이사장이 자본시장에 끼친 영향은 단지 ‘내부출신 이사장’이라는 데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가 거래소 이사장으로 재임했던 1999년~2002년 기간은 외환위기를 거친 직후 시장의 외형이 재편되던 시기였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상장제도, 퇴출제도, 분쟁조정제도, 공시제도, 감리시스템, 기업지배구조 개선방안 등의 거래소 제도는 박 전 이사장 재임기간에 구축됐다. 거래소가 국제적인 기준에 맞춰 증시의 ‘점심시간 휴장’을 폐지한 것도 이때였다.

여러 차례 공식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박 전 이사장은 끝내 사양했다. “특별히 여길 것이 없다”는 이유였다. 이에 이투데이는 이달 초 그가 종종 방문하는 거래소 동우회(OB모임) 사무실에서 만나 나눈 담소 중 일부만 인터뷰 내용으로 게재했다.

박 전 이사장은 거래소 이사장 재임 당시의 일들에 대해 묻자 “어떤 개인이 시장을 바꾼 것이 아니라 시장이 바뀐 뒤 정부정책과 거래소가 제도적으로 따라갔던 것뿐”이라며 몸을 낮췄다.

◇ 공채 1기 출신, 35년 몸담은 자타공인 ‘거래소맨’=박 전 이사장은 위성복 전 조흥은행장, 신복영 전 서울은행장, 박찬종 전 국회의원 등 인물이 많기로 유명한 서울대 상대(경제학과) 58학번이다. 1963년 한국증권거래소 공채로 입사했다. 1995~99년 ㈜부흥 대표를 지낸 기간을 빼면 2002년 이사장에서 물러나기까지 약 36년간 거래소에 몸담았던 ‘거래소맨’이다.

변변한 증권시장 기반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거래소에는 인재들이 몰렸다. 당시 10명의 신입직원 중 5명은 박 전 이사장의 서울대 경제학과 동기였다고 한다. 박 이사장과 같이 입사했던 동기 10명 중에는 국내 증권가 애널리스트 1세대로 꼽히는 심근섭 전 대우증권 전무도 있다. 심 전 전무는 조사부를 거쳐 1976년 현재의 대우증권으로 옮겨가 한국 증시에 애널리스트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증권사에 조사부가 없던 시절, 애널리스트의 역사는 거래소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도 있다. 박 전 이사장 역시 입사 5년만에 증권시장에 관한 최초의 해설서인 ‘증권’을 저술할 정도로 시장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이사장은 50여년 전 당시에 대해 “거래소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애착이 있는 사람으로서 나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회상했다. 거래소를 떠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박 전 이사장에게서는 거래소에 대한 애착이 묻어났다. 그는 “최초의 거래소가 암스테르담에서 생겨난 해가 1602년이니 약 400년의 역사가 있다”면서 “우리 거래소가 60년만에 이들과 어깨를 겨누는 것을 보면 거래소에 몸담길 정말 잘했고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실무자로서 박 전 이사장은 생각이 깊고 꼼꼼한 업무처리 스타일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1970년대 그가 감리부 차장을 할 때였다. 주가조작 사건이 불거진 계기로 거래소에 심리부서가 새로 생겨났다. 실무를 맡은 박 전 이사장은 심리규정 11개를 만들었다. 당시 심리부는 시장감시위원회로 확대됐고, 그가 만든 심리규정은 불공정행위 적발기준의 골간이 됐다.

◇ ‘포스트 IMF’ 금융격변기, 코스닥·코스피 진두지휘=박창배 전 이사장이 거래소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이사장에 오른 것은 거래소가 문을 연지 44년 만의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던 시기를 내세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코스닥시장 개설 초기의 운영기구인 코스닥증권 사장을 역임한 일이나, 증권거래소 이사장이던 때의 이야기보다 실무직원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대해 더 많이 언급했다. 이사장 재임기간 구축한 시장제도 등을 언급할 때면 그는 “그거야 직원들이 만들고 나는 사인만 했다”고 답했고, 1970~1980년대 실무자 시절의 일을 언급할 때면 당시의 이사장에게 공을 돌렸다.

그럼에도 박 전 이사장이 수장을 맡았던 기간 증시는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박 전 이사장은 외환위기를 겪은 후 국내 금융시장이 황폐해진 1998~1999년 코스닥증권시장㈜ 사장으로서 벤처기업 자금조달시장을 지휘했다. 주된 역할은 정부의 중소기업육성정책과 발맞춰 코스닥시장의 외연을 확대하는 일이었다. 신설 시장이 자리 잡기 위해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가 필요했다.

박 전 이사장의 활동은 숫자로 나타난다. 코스닥시장 등록법인 수는 1998년 말 331개에서 1999년 457개로 증가해 증권거래소 상장기업 수의 63%에 이르렀다. 상장자본금 면에서도 1998년 말 증권거래소 대비 9.8%에서 1999년 말 16.7%로 성장했다. 1999년 7월에는 코스닥지수가 200포인트(2004년 10배 조정 전 기준)를 돌파했고, 거래대금 역시 가파르게 증가해 박 전 이사장의 코스닥증권 사장 재임 직후인 2000년 2월 증권거래소를 추월하기도 했다.

코스닥증권 사장으로 있는 동안 코스닥의 양적 팽창에 힘을 썼다면, 증권거래소 이사장 재임기간에는 퇴출제도를 강화하는 등 코스닥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울였다. 박 전 이사장의 재임 기간은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를 겪은 직후 금융시장이 격변하던 시기였다. 특히 외국인의 주식투자한도가 완전 철폐되면서 증권시장이 개방됐고, 증시전산화로 온라인거래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시장관리가 어려워지는 등 환경이 크게 변했다.

박 전 이사장은 환경변화에 대응해 오늘날 증권시장의 모습을 구축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임기 말인 2002년 기관투자자가 국내 증권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6.4%로 늘었는데, 이는 국내 증권시장이 질적으로 성장하고 주식의 분산, 장기투자 관행 등이 정착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새로 출범한 금융감독원과 함께 거래소 내에 종합감리시스템 등 고도화된 시장감시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최대주주의 불공정행위와 위법행위 등에 대한 적극적인 제재조치를 신설해 시장에 대한 신뢰를 높인 점도 그의 재임기간 발자취로 남아 있다.

거래소의 관계자는 “외국인과 기관의 영향력, 시장의 진입과 퇴출제도, 공시의무 등 현재의 증권시장 구조가 대부분 박창배 전 이사장 시기에 구축됐다”면서 “거래소 내부 출신 인사인 만큼 실무관계와 시장의 미세한 부분에 누구보다 밝았던 분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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