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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한지민 "과연 저는 '조제'의 세계를 다 알았을까요?"


입력 2020.12.22 00:01 수정 2020.12.21 21:48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한지민, '조제' 촬영하며 원작 의식 안해

"남주혁과 두 번째 호흡, 많이 의지"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 영화가 주는 숨고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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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민의 '조제'는 달랐다.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속 이케와키 치즈루표 조제보다 삶, 그리고 이별에 있어서 한층 더 쓸쓸하고 담담했다. 한지민은 '조제'를 극장에 걸었지만 아직 손에서 떠나보내진 못했다. 여전히 조제는 잘 살아가고 있는지, 외롭지는 않은지 궁금하다.


한지민은 '조제' 촬영이 지금까지 작품들과 비교해 유독 어려웠다고 밝혔다. 상처투성이처럼 보이지만 겉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사나 감정보다는 절제된 눈빛과 공간, 소리들을 활용한 분위기로 조제의 언어를 완성했다.


"지금까지 기존에 했던 캐릭터들은 명확한 색이 있었어요. 그런데 '조제'는 정해져 있는 공간 안에서 살아간다는 부분이 조금 특별해 보일 수 있으나, 감정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인물이 아니라, 어려웠어요. 조제 속 세계의 말들도 이해하기 오래걸렸고요. 그렇지만 배우로서 재미있고 의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한지민은 원작의 존재를 크게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차별점을 두려 굳이 애쓰지도 않았다. 시나리오에 담기지 않은 조제의 삶을 촘촘히 메우다 보니 자연스레 원작의 조제는 결이 달라졌다.


"김종관 감독님이 그리고자 하는 '조제' 안에 들어가야 겠다는 생각부터 했어요. 원작에서는 20대 동갑내기라면, 지금은 연령대가 조금 더 높다보니 자연스럽게 차분하고 쓸쓸한 느낌이 더 나왔던 것 같아요. 그 시작점이 조제의 어린시절 트라우마였고요. 시나리오에 담기지 않았던 조제의 이전 삶의 서사를 만드는데 오래 걸렸어요. 저의 조제는 영석이 들어옴으로 인해 생기는 질감들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개봉 전에 원작을 다시 찾아봤는데 느껴지는 감정이 다르더라고요. 저희 영화도 보는 분들마다 감상이 다를 것 같아요."


단절된 세상에서 책이 전부인 조제는 영석에게 고맙다는 말 대신 "밥 먹고 가라"고 밥상에 수저를 하나 더 놓는다. 걱정돼 찾아왔다는 영석에게 불편하니 다신 찾아오지말라고 날선 말들을 뱉어내기도 한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낯선 인물이다. 그런 조제가 영석에게 마음을 고백한 일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일이었다. 한지민은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조제식 화법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곁에 있어달라고 고백한 후 영석이 내 옆에 있어주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불안의 존재가 없어져요. 그래서 이 신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했고요. 이후 '호랑이가 담을 넘어와도 나는 이제 무섭지 않아. 네가 내 옆에 있으니까'라는 말이 참 기억에 남아요. 어떻게 바라보느냐, 어떤 감정이냐에 따라 조제의 대사들이 다르게 들릴 것 같아요."


신체적 장애가 있는 조제의 움직임은 한지민이 아이디어와 공부를 통해 다듬어졌다.


"저는 조제가 신체적 장애가 있는 인물이다보니 움직임에 대한 디테일을 많이 고민했어요. 레퍼런스 영상을 많이 보고, 내 몸에 가장 익숙해 보일 수 있도록 연습했죠. 휠체어에 올라타는 장면, 차에 올라타는 장면이 그렇게 해서 나온 것들입니다. 나머지는 감독님과 '조제는 늘 넘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로 대화를 하며 만들었어요. 제가 의문이 들 때마다 감독님께서 확신을 주셨던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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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민은 2017년 허진호 감독의 영화 '두개의 빛'에서 시각장애인 역할을 연기한 바 있다. 두 작품이 장애를 가진 인물이란 공통점이 있지만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게 달랐다고 밝혔다.


"'두 개의 빛'은 시각장애인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작품이었어요. 시각장애인 중 80%는 후천적이라고 하더라고요. 빛처럼 그 분들에게 선물하고 싶단 마음에 참여했어요. '조제'는 장애에 초점을 맞춰 선택했다기보단, 정말 어딘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조제와 영석의 사랑 이야기에 마음이 끌렸어요. 일부러 결핍이나 장애가 있는 캐릭터를 찾는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한지민은 영화 속 조제와 영석이 왜 이별했는지 굳이 찾지 않으려고 한다. 모든 세상의 이별이 그렇듯 마음의 온도가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조제와의 만남부터, 사랑, 이별까지 영석에게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겁니다. 조제와 영석이 헤어진 이유가 현실적인 이유일까, 조제의 장애 때문일까 고민을 했는데 감독님은 명확하게 '왜'라는 이유를 담고 싶지 않다고 하셨어요. 헤어진 이유가 한 가지만은 아니겠죠."


한지민이 생각하는 '조제'의 매력은 영화를 보고도 쉽게 가시지 않는 여운이다. 자신이 직접 연기했지만 조제의 세계를 다 이해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고. 관객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한지민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조제가 외롭진 않은지 마음으로 안부를 묻는 일이다.


"영화를 다 보고 감독님께 '과연 저는 조제의 세계를 다 알았을까요?'라고 물어봤어요. 아직 조제의 세계를 모른다고 말한건 다른 대본들과 달리 지문과 감정들이 친절하지 않았거든요. 이 또한 조제의 세계를 열고 동행하듯 가기 위한 과정이었고요. 이런 물음표는 영화가 관객에게 던져주는 색다른 매력인 것 같아요."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조제'는 봄의 벚꽃, 여름의 빗소리, 가을의 떨어진 낙엽, 겨울의 하얀 눈밭을 천천히 카메라에 담았다.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조제의 숨소리마저 느껴질 것 같은 잔잔함이 한지민이 꼽는 관전포인트다.


"요즘은 빠르고 편한 것에 익숙해진 삶을 살아가고 있잖아요. 속도감이 느린 영화기 때문에 빠르게 돌아가는 급한 세상 안에서 관객도 숨 고르기를 할 수 있으실 겁니다. 배우의 감정과 표정, 대사 뿐아니라 공간과 계절과 소리로 전달해주는 이 영화의 매력을 관객들이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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