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의 自蟲 누에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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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의 自蟲 누에와 ‘나’
  • 충북인뉴스
  • 승인 2007.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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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수 충북숲해설가협회 회원
성가실 정도로 볕 따끈한 날 도톰한 뽕잎을 조근조근 씹어 봅니다. 혀 끝으로 전해지는 까실함과 입안 가득 번지는 첫사랑같은 풋내에취해 아침이면 피어나는 나팔꽃같은 꿈을 꿉니다.
해마다 이맘 때면 할머니는 행랑채와 외양간 시렁에 묶어 두었던 잠박(누에채반)과 섶을 깨끗이 손질하셨습니다. 대부분의 곤충이 수정된 알에서부터 독립생활이 시작되듯이 누에 나방 애벌레도 작은 알에서부터 탄생합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삼신 할머니께 비나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주 새끼들 몸성히 나라에 큰 기둥되게 보살펴 주옵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1령, 2령....5령 누에가 허물을 벗을 때마다 장독위에 정화수 한그릇 반달처럼 떠 있습니다.

“할머니 오늘 누에 먹는 날이예요?

“그래 어여 다 방으로 들어 오니라”

늘 그래 왔듯이 우리 육남매는 제비새끼처럼 입맛을 쪽쪽 다시며 잠박 머리에 둘러 앉고, 할머니는 잠에서 막 깨어난 누에를 뽕잎에 돌돌말아 맏이인 내 입에부터 차례로 넣어 주셨습니다. 개불알풀꽃처럼 초롱초롱한 눈방울들을 깜빡이면서...··

“큰누나 맛있어?”
“응”
“더 먹고 싶지?”

뽕잎에 쌓인 누에는 꿈틀꿈틀 목젓을 타고 넘어 갔습니다.

“할머니 한번 더 먹으면 안돼요?”
“넘 많이 먹음 배아퍼 담에 또 먹자”
“나 빨리 공부 잘하고 싶은데”

먹어도 먹어도 새로 돋는 푸른 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누에를 먹으면 몸도 튼튼하고, 머리가 좋아져 공부도 잘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였습니다. 사그락 사그락 뽕잎 갉아먹는 소리를 들으며 언제 또 누에가 잠을자는지 봉당이 닳도록 방문을 열어보곤 합니다. 3령이된 누에는 두 마리만 뽕잎에 싸도 잎안이 꽉 찹니다.

그때 내 입은 사루비아 꽃잎보다 더 작았으니까요. 물커덩, 꿈틀하는 느낌도 혀끝으로 전해집니다. 할머니는 박하사탕을 준비하셨다가 풋내 가득한 잎에 한 알씩 넣어 주셨는데 떨떠름한 풋내 뒤에 화~~~~한 그 때, 그 박하사탕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할머니는 우리 육남매에게 먹일 누에는 가장 깨끗한 잠박에 품질이 뛰어나 거문고 줄을 맨다는 꾸지뽕만을 먹여 기르셨습니다.

봉당이 닳도록 삐끔삐끔 문을 여닫는 사이 5령이 된 누에는 어른 장지 손가락만큼 자라 있습니다. 이 무렵, 누에는 워낙 크기 때문에 뽕잎에 뚜루루말아 입에 넣으면 한쪽은 입밖으로 삐죽하니 나와 꿈틀거리며 회를 치기도 했습니다.

뭉클하는 순간 물푸레나무 즙같은 물이 잎밖으로 주루룩 흘렀는데 그 때 입 언저리로 차고 넘치던 그 푸른 물이 누에의 진한 피였다는 것을 나는 마흔이 훌적 넘어서야 알았습니다. 누에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져 공부를 잘 한다는 말은 영 신빙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나는 공부를 잘해본 적도 그다지 머리가 좋은편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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