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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유독 떠오르는 차이코프스키의 4번 교향곡
[마에스트로] 12월 KBS교향악단과 경기필하모닉의 선택
김광현 777khkim@hanmail.net | 입력 : 2015-11-30 17:11:19
   
▲ 차이코프스키 4번 교향곡은 차이코프스키 스스로 자신 최고의 작품이라고 극찬할 정도의 명곡으로 꼽힌다.

지난 두 주간에 걸쳐 부산시향과 대구시향을 지휘하고 엊그제 서울로 올라왔다. 분명히 떠날 때는 가을이었는데, 올라와 보니 완연한 겨울이다. 필자는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눈도 몇 번씩이나 내렸다고 하니 말이다.

이런 겨울에 잘 어울리는 작곡가가 있다. 바로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이다. 그의 작품들은 연말에 앞 다투어 공연된다.

대표적인 작품인 발레 ‘호두까기 인형’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심지어 그의 교향곡 1번은 제목이 ‘겨울날의 환상’이니, 차이코프스키와 겨울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관계임이 틀림없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교향곡은 그 중에서도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4번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고 대중적인 인지도가 가장 높은 교향곡 5번이나 6번 ‘비창’이 아니라, 이 곡을 차이코프스키의 6개의 교향곡 중 가장 명곡으로 손꼽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완성도와 작품성을 지닌 곡이다.

12월 예술의 전당 일정만 보더라도, KBS교향악단과 경기필이 이 곡을 선택했다.

사실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소문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자와 결혼을 선택했는데, 이 결혼은 당시 그가 작곡하고 있던 오페라 ‘에프게니 오네긴’의 내용과도 연관이 있다. 그의 제자 ‘안토니나 밀류코바’는마치 오페라의 여주인공 타티아나처럼 수많은 편지로 그에게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쳤고, 결국 오페라 내용에 빠져 허우적대던 차이코프스키는 그와 결혼을 선택한다.

하지만 두 달여 만에 결혼생활은 실패로 끝나게 되고, 이로 인해 신경이 쇠약해진 그는 폰 메크 부인의 후원으로 스위스와 이탈리아 등지에서 요양하면서 작곡에 전념하게 된다. 이 곡은 이 시기에 작곡된 작품이며, 차이코프스키도 이 곡을 자신 최고의 작품이라고 극찬하며 이 곡을 폰 메크 부인에게 헌정하기에 이른다.

1악장 처음부터 금관악기들의 포효로 차이코프스키의 운명의 동기가 등장한다. 이 운명의 동기는 15분이 훌쩍 넘는 1악장 전반을 지배하는데, 악장 전체를 휘몰아친 이 동기는 4악장 클라이맥스에서 다시 한 번 등장하여 피날레의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사실 1악장은 어떻게 이렇게 작곡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한 구성미를 자랑하는데, 자칫 조금만 긴장을 풀고 늘어지면 지루하게 들릴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복잡한 리듬과 서정적인 멜로디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뛰어난 악장이다.

운명의 동기가 휘몰아친 이후의 2악장은 매우 쓸쓸하다. 멜로디와 클라이맥스로 유명한 교향곡 5번의 2악장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현악기 전체가 같은 멜로디를 노래하고, 그 사이를 목관의 대선율과 금관의 리듬으로 채워주는 차이코프스키 특유의 관현악법이 빛나는 악장이다.

3악장은 매우 재미있는 스케르초 악장이다. ‘농담, 해학’이라는 스케르초 본연의 뜻처럼, 마치 요한 슈트라우스의 피치카토 폴카를 연상시키는듯한 피치카토(현악기를 손으로 튕기는 주법)가 인상적이다. 뒤이어 유머러스한 관악 파트가 뒤따르고, 현의 피치카토와 관악기가 보기 좋게 섞이며 마무리한다.

4악장의 효과는 대단하다. 비극적인 운명을 일부러 숨기기 위해 마치 일부러 더욱 화려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한 듯하다. 정신없이 화려한 부분이 끝나면 잠시 숨을 돌리며 러시아 특유의 슬라브적인 선율이 등장하고, 다시 이 선율은 화려함과 오버랩되며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다.

아까 말했듯이 다시 운명의 동기가 등장하고, 폭풍전야같은 조용한 긴장에 이어 3악장의 유머러스한 모티브와 함께 곡은 피날레로 돌진한다. 모든 작곡가의 모든 교향곡을 통틀어 가장 화려한 악장을 꼽으라면 절대 빠지지 않는 악장이다.

차이코프스키 4번 교향곡 음반을 꼽으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세 명의 지휘자가 있다. 바로 므라빈스키와 게르기에프, 그리고 카라얀이다. 얀손스의 4번도 명반으로 치지만, 아무래도 교향악단의 연주력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이 연주한 도이치 그라마폰의 음반은 사실 음악 자체가 너무나도 심플하다. 차이코프스키가 아니라 마치 로시니를 듣는 기분이다. 오히려 게르기에프와 빈 필하모닉이 정말 빈 필 맞나 싶을 정도로 러시아적인 충격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와는 반대로 저 대척점에 서 있는 카라얀의 4번 음반은 말 그대로 ‘카라얀스러운’ 빛나고 유려한 차이코프스키이다. 그리고, 이제껏 말한 4번 음반에 대한 정보는 비단 4번뿐만 아니라 5번 음반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차이코프스키의 운명교향곡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교향곡 4번과 함께 겨울의 정취를 맞이하는 것도 이 계절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실연으로 접하면 더 좋고 말이다. 아무생각 없이 음악을 즐기시길 바란다. 단, 작곡가가 이 교향곡 속에 숨겨 놓은 운명의 조각들을 상상하면서.

지휘자 김광현은 예원학교 피아노과와 서울예고 작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지휘를 전공하였다. 대학재학 중 세계적 지휘자 샤를르 뒤트와에게 한국대표 지휘자로 발탁되어 제9회 미야자키 페스티벌에서 규슈 심포니를 지휘하였고, 서울대60주년 기념 정기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재학생 최초로 지휘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지휘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니, 로이틀링겐 필하모니, 남서독일 콘스탄츠 관현악단, 루마니아 크라이오바 심포니, 경기필, 부천시향, 원주시향, 과천시향, 프라임필 등을 지휘하였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원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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