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누에고치론(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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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누에→고치→나방'의 변태를 하는 누에의 한살이는 신비롭기만 하다. 알에서 갓 부화한 누에(개미누에)의 크기는 약 3㎜. 누에는 뽕잎을 먹으면서 성장한다. 4번의 잠(각 잠은 보통 1일)을 잘 때마다 허물을 벗고 5령이 되면 급속하게 자라서 약 8㎝의 애벌레가 된다. 5령 말의 익은누에는 먹기를 일절 멈추고 입에서 1500m의 실을 토해 고치를 만든다. 고치를 지은 후 약 70시간이 지나면 번데기가 되며, 그 12~16일 후 나방이 된다. 나방은 고치의 한쪽 끝을 뚫고 나오며, 암나방은 500~600개의 알을 낳고 40여 일간의 일생을 마치게 된다.

인류의 양잠(養蠶·뽕잎을 길러 누에를 침) 역사는 4000년도 더 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는 3000년 전 고조선 시대부터 양잠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한과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양잠이 더욱 장려·발전되었다. 서울 창덕궁 후원 관람지 입구에 수령 400여 년의 뽕나무(천연기념물 471호)가 우뚝 서 있다. 조선시대에 양잠은 국가의 기간산업이었다. 궁궐에 뽕나무를 심고 왕비가 직접 누에치기 시범을 보이는 '친잠례(親蠶禮)'를 거행했다. 서울 송파구의 잠실(蠶室)은 옛날 국가에서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친 데서 유래하는 이름. 양잠업은 사양산업이 된 지 오래지만, 최근엔 기능성 화장품이나 실크 인공고막, 컬러 공예품 등 다양한 제품 개발로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제1세션에서 지난한 산업 구조개혁을 '누에고치론'에 빗대자 시진핑 국가주석이 맞장구를 치며 화답했다. 박 대통령은 "누에 나비(엄밀히 말하면 나방이다)는 고치 속의 번데기 시절을 겪고 껍질을 뚫고 나오는 과정을 통해 힘을 얻어 화려하게 날아오른다. 만약 나비가 나오기 쉽게 껍질을 뚫어 주면 며칠 살지 못한다"며 "우리도 과감한 구조개혁을 통해 과거의 허물을 벗어던지고 혁신을 이뤄 낼 힘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시 주석도 누에고치론을 언급하며 구조개혁을 추진해 나갈 것을 G20 정상들에게 당부했다.

누에고치 속의 나방은 알칼리성 용액을 토해 내어 고치의 한쪽을 적셔 부드럽게 하여 발로 뚫고 나온다. 얼마나 지혜로운 영물인가. 이 고치의 지혜와 요령이 우리의 구조개혁에 요긴한 때이다.

윤현주 논설위원 hoho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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