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 프랑크 70주년: 그녀는 누구인가? 2차 세계대전 나치 홀로코소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안네 프랑크

사진 출처, PA Media

사진 설명, 홀로코스트 동안 숨어 지낸 그녀의 삶을 기록한 어린 십대인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책들 중 하나가 되었다

1929년 6월 12일에 태어난 안네 프랑크는 나치 수하의 홀로코스트 당시 네덜란드의 어린 십대였다. 그녀가 나치 전쟁 캠프에서 사망한 지 7년 후인 1952년 4월 30일 그녀의 일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올해는 또한 안네 프랑크 하우스가 대중에게 개방된 지 62주년이다. 프랑크의 은신처는 1960년 5월 3일 복원되어 방문객들에게 개방되었다.

안네는 그녀의 가족과 함께 암스테르담에서 거주했지만, 1942년 유럽 내에서 유대인을 없애려는 나치를 피해 숨어 살 수밖에 없었다.

숨어있는 동안 안네는 일기를 썼고, 이는 훗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책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녀는 홀로코스트에서 비극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작가가 되겠다는 자신의 꿈을 현실이 될 줄 몰랐을 것이다. 그녀가 쓴 글을 출판한 것은 그녀의 아버지였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았고 그렇게 그녀의 일기는 아버지에게 전해졌다.

현대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사건 중 하나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린 이 놀라운 10대 소녀에 대해 더 알아보자.

안네 프랑크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안네 프랑크'로 더 잘 알려진 '아넬리스 마리 프랑크'는 192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에게는 부모님과 3살 위 언니 마고가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독일은 매우 가난했고 많은 이들이 힘겨운 삶을 살았다.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의 인기는 점점 높아졌고, 많은 화살들이 유대인들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안네와 그녀의 가족이 홀로코스트 기간 동안 숨었던 책장

사진 출처, Reuters

사진 설명, 홀로코스트 동안 안네와 그녀의 가족이 숨어있던 비밀 별관은 특별한 책장 뒤에 숨겨져 있었다

1933년 나치가 선거를 마치고 권력을 잡았을 때, 그들은 유대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고 이는 그들의 삶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렵게 만들었다.

안네의 가족은 독일을 탈출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네는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네덜란드어를 배우며 새로운 생활에 정착했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제2차 세계 대전이 선포되었을 당시 그녀는 겨우 10살이었다.

그로부터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이 네덜란드를 침공했고 나치는 그곳에서 유대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홀로코스트 기간 동안 안네 프랑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그녀의 13번째 생일날, 안네는 키티라고 불리는 일기를 선물 받았다. 1942년 6월 12일 그녀의 첫 번째 출품작이다.

그 당시 나치는 네덜란드에서의 유대인 박해를 강화했다.

1942년 여름, 안네의 언니 마고는 나치에 의해 수용소로 일하러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려웠던 프랑크 가족은 미리 준비해놓은 숨겨진 비밀 별채에 몸을 숨겼다.

안네 프랑크 일기를 들고 있는 아버지 오토 프랑크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안네의 아버지인 오토는 1945년 안네의 사망 후 일기를 건네받았다

다른 4명, 반 펠스 가족 (헤르만, 오귀스트와 그들의 아들 피터)과 프리츠 페퍼가 안네 가족들과 함께 숨었다. 이들은 외부 세계의 음식과 소식을 가져다주는 오토의 충실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안네는 숨어 있는 동안 내내 일기를 쓰거나 다른 시와 이야기들을 쓰는 것을 즐겼다. 글쓰기는 그녀에게 일종의 도피였고 큰 위안거리를 제공했다.

어느 날 안네는 네덜란드 정부 교육부 장관이 사람들에게 전쟁 일기와 문서를 보관해 달라고 요청하는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이는 그녀가 일기를 책으로 다시 쓰도록 영감을 주었다.

그녀는 소설 "비밀의 별관"을 작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가 이를 마치기 전에, 최악의 두려움이 실현되었다. 2년간의 은신 후, 나치는 비밀 별관을 발견했다. 오늘날까지 그들이 어떻게 이것을 알아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1944년 8월 4일, 그들은 아파트에 숨어있던 모든 사람들을 체포하여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로 보냈다. 안네의 일기에 마지막으로 기재된 것은 불과 3일 전인 1944년 8월 1일이다.

붙잡힌 후 안네 프랑크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이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에 도착했을 때, 비교적 건강한 것으로 여겨졌고 모두 작업에 투입되었다. 아버지 오토는 아내와 두 딸과 따로 살아야 했다. 나중에는 안네와 마고 역시 그들의 어머니로부터 분리되었다.

아우슈비츠에 있는 아르베트마흐트 프리게이트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명한 문에는 '아르베트마흐트프레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것은 독일어로 '일이 당신을 자유롭게 한다'는 뜻이다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온 오토의 친구 중 두 명인 미에프 기스와 벳 보스쿠일은 안네가 다시 돌아올 때를 대비해 안네의 글을 찾아 보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이뤄지지 못했다. 1944년 11월 초, 안네와 마고는 베르겐-벨센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고 그들의 건강은 악화되었다. 1945년 2월 그들은 둘 다 발진티푸스로 사망했다. 그리고 불과 며칠 간격으로 그들의 어머니도 목숨을 잃었다.

그녀의 아버지 오토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가족이었다. 미에프와 벳은 안네의 글을 오토에게 전달했다.

그는 이 책을 읽고 이 글이 안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그녀가 "죽은 후에도 계속 살기를" 원했음을 알게 됐고, 안네의 글을 책으로 정리해 출판했다.

누군가 서점에서 안네의 일기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안네의 일기는 전세계 수백만명의 사람들에게 읽혀졌다

1947년 6월 25일, 3,000부가 넘는 헤트 아체르후이스 (비밀 부속서)가 인쇄되었다.

이 책은 많은 다른 언어로 번역되었고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렇게 전 세계의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안네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작가가 되어 숨어 사는 그녀의 삶에 대한 소설을 출판하고자 했던 그녀의 꿈이 실현된 것이다.

1960년 암스테르담에 있는 비밀 별관는 안네 프랑크 공식 박물관이 되었다. 지금도 방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