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배의 그림으로 보는 인류학]로댕에게 기회의 끈이 된 '청동시대'

미술사학자 2017. 2. 2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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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시대, 오귀스트 로댕, 1887년 작, 178㎝.

오늘 소개해 드리는 청동상은 가장 유명한 조각가 로댕의 데뷔작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로댕은 조각에 관심을 가진 이후 정규 과정에 해당하는 국립 미술학교에 여러 번 도전했으나 계속 실패하게 됩니다. 이후 독학에 가깝게 공부를 하고, 현장에서 장식용 조각 등을 수선하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정통이 아니죠.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정식 교육에 해당하는 아카데미 포즈를 두고 로댕은 “그것은 수백년간 의미없는 반복”이라고 비판합니다. 로댕은 고대 유물에서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본인이 발견하고 해석한 ‘자연스러움’을 자신의 무기로 삼았습니다.

“토르소에 해당하는 상반신이 가볍게 뒤틀려 있는 자세 아래로 양쪽 엉덩이 부분 근육의 수축과 대비는 조용한 움직임을 담고 있다. 또한 머리카락 위에 얹힌 손과 최종 완성본에서는 없어진 창을 들고 있던 반대쪽 손, 그리고 두 팔 역시 아름다움보다는 자연스러움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1877년 벨기에 예술가협회에 전시될 당시 이 작품은 이름이 없었다. 이후에는 한동안 로댕이 프랑스가 프러시아를 맞아서 뼈아픈 패배를 한 1870년을 생각하면서 이 조각이 ‘패배한 자’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나, 로댕이 ‘청동시대’라는 작품 이름을 생각하게 된다.”

벨기에 군인을 모델로 썼다는 이 조각은 원래 창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힘차게 앞으로 던질 것 같은 모습 대신 창도 처져 있고, 위축된 모습에 가깝기 때문에 ‘패배한 자’로 불리게 됩니다. 이 조각은 근육과 관절의 표현이 너무 자연스러워 당시 심사위원들 눈에는 모델을 보며 만든 것이 아니라 모델 몸을 그래도 본떠 옮긴 것이라는 의심까지 받게 됩니다.

“로댕이 이 조각에 대해 자신의 모든 노력을 다해서 만든 작품이라는 것을 강조했음에도 찬사보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1877년 벨기에에서 발표한 뒤에 파리 공식 살롱전에도 출품을 했으나 비평가들은 이 조각이 보여주는 지나치게 사실적인 표현들의 정확성에 대해 강하게 의심하면서 ‘이 조각이 살아 있는 것을 부당하게 이용한 의심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몸에 석고를 발라 그 표본으로 청동상을 만들었다는 것인데, 이 평가는 곧이어 로댕에 대한 엄청난 비난으로 이어졌다.”

로댕은 여러 방면으로 항의하고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공개해 새로 만들어 보겠다고도 했지만, 조롱과 비난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거의 3년 동안 로댕의 ‘청동시대’는 스캔들의 중심이었죠. 그래도 세상 일이 꼭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드라마틱하고 과장되게 표현돼 온 조각예술이 새로운 시대를 맞아 이전의 부풀림보다 실제의 모습에 관심을 가진 지점에서 로댕의 조각이 그 길을 보여줬다는 비평가들도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옹호와 반대의 비평들이 서로 부딪치는 가운데 1880년 국가는 ‘청동시대’의 석고 원본 구입을 결정했고, 그 원본을 이용해 청동상을 주물해서 뤽상부르그 박물관에 소장하게 했다. 그뿐 아니라 같은 해에 로댕은 마침내 국가로부터 공식적인 주문을 받는데, 1871년 화재로 유실된 후 재건에 한창이던 국립 장식 미술학교의 문을 새로 제작하는 일이었다. 바로 ‘지옥의 문’, 로댕의 빛나는 경력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아는 ‘생각하는 사람’ ‘키스’ ‘영원의 우상’ 등은 모두 ‘지옥의 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파생된 부분 조각들입니다. 오해와 비난을 받았지만, 이 조각이 연결해 준 로댕의 ‘기회’를 생각하면 전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미술사학자 안현배는 누구? 서양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가 예술사로 전공을 돌린 안현배씨는 파리1대학에서 예술사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예술품 자체보다는 그것들을 태어나게 만든 이야기와 그들을 만든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라와 언어의 다양성과 역사의 복잡함 때문에 외면해 오던 그 이야기를 일반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하고 있습니다.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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