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야시시한 건물' 그의 짓이다

2010. 7. 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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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국 현대건축계의 악동' 문훈

한국 건축계의 빈곳 메우는 '파격'망사에 꼬리…개성 극대화 추구

"저기요, 여기는 도대체 뭐하는 곳이에요?"

건축가 문훈(42)이 서울 논현동 주택가 골목에 사무실을 차린 뒤 동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식당이나 복덕방이 들어설 법한 평범한 상가건물 1층에 입주한 그는 새빨간 망사천을 입구에 드리웠고, 화투짝 팔광 모양의 빨간 간판을 내걸었다. 문만 열면 바로 들여다보이는 사무실 안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바닥은 하양까망 타일에, 나머지 네 벽과 천장은 온통 빨간색이다. 역시 새빨간 가구에는 양철 자동차 장난감과 봉제 인형 따위를 늘어놓고, 벽에는 그가 스케치한 기괴한 이미지들을 걸었다. 가구는 모두 앉은뱅이여서 건축가와 직원들은 좌식 생활한다. 이웃들이 수군대며 내린 결론이 '점집'이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요상한 공간에서 문훈은 사무실 인테리어 못잖게 독특한 건물들을 그려낸다. 우리 건축계에서 '가장 이상한' 또는 '가장 독특한' 건축가를 꼽는다면 분명 문훈이다. 빨간색을 좋아하고 망사 질감을 좋아하는 그는 건물도 그렇게 디자인한다. 데뷔작 묵동 다세대주택은 망사 메시로 건물 외피를 덮어 씌워 건축계에선 '망사스타킹집'이라고 불린다. 드라큘라의 눈 같은 창이 달린 서울 홍대앞의 상상사진관과 경기도 양평의 전원주택 '에스 마할'은 우주선 조종실처럼 생긴 구조물이 건물 옥상 위로 튀어나온 모습이다.

지어지지는 않았어지만 건축계에 발표한 아이디어들은 더욱 야릇했다. 여성의 알몸 모양 집, 이름 '옹달샘' 처럼 집 안에 옹달샘이 있고 건물 바깥에 달린 토끼 귀가 기계로 쫑긋 세워지는 집 등은 건축계에서 화제를 불렀다. 성적 이미지를 과감하게 추구하는 점, 건축을 넘어 단편 영화를 찍고 무대위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끝 모를 오지랍, 새빨간 점퍼와 반바지 차림 같은 패션까지 문훈 같은 건축가는 일찌기 한국 건축계에 없었다.

문훈의 건축에는 지금 한국 현대건축에서 빠져있는 것이 들어있다. 바로 '재미'다. 한국 건축은 세계 흐름과 발맞춰 발전해왔지만 개성적이고 재미있는 건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속에서 우리 건축에 결여되어 있던 위트와 웃음이 느껴지는 건물을 선보이는 건축가가 문훈이다.

독립 10년째를 맞은 그가 올해 상반기 설계해 선보인 강원도 정선의 '락있수다 펜션'은 그의 상상력이 더욱 도드라지는 작품이다. 가정집이나 사무용 건물과 달리 건축가의 상상력 여지가 큰 펜션이란 건물 특성에 힘입어 그는 작정한듯 파격을 시도했다. 모두 6개동인 펜션 건물에는 황소처럼 뿔이 달리고, 도마뱀처럼 꼬리까지 달렸다. 건물마다 강렬한 원색을 콘셉트로 삼아 한 동은 페라리 스포츠카처럼 건물 안팎이 모두 빨갛고, 스텔스 전투기처럼 까맣게 꾸민 건물에는 부엉이 눈 모양 창문을 냈다. 건축주와 건축가의 의기투합이 만들어낸 이 건물은 최근 건축계에서 많은 화제가 됐다.

지난 1일 기자가 직접 찾아가본 '락 있수다 펜션'은 사진 이상으로 독특한 건물이었다. 기존 펜션들과는 전혀 다른 건축을 시도한 실험은 일단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과 거리가 먼 편인데도 50% 정도의 객실점유율을 기록하고 있고, 주말에는 일찌감치 예약을 해야할 정도다. 건물의 독특함만으로도 손님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이다. 과연 잠이 올까 싶을 정도로 현란하게 원색처리했지만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나들이 손님들에겐 바로 그 점이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산뜻한 이상함'을 보여주는 문훈의 건축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정선/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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