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윤정의 식물 이야기: 원추리] 우리 주위에 흔히 보이지만 음식과 약이 되는 고마운 꽃

차윤정 산림생태학자 2023. 8. 29.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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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탈스럽지 않고 순둥하지만 억척스런 생활력 가진 화려한 여름꽃의 대명사
풀꽃에 속하지만 크고 시원한 꽃을 피운 원추리. 꽃대마다 하나씩 달린 원추리꽃은 매일 차례로 피고 지기에, 모든 꽃이 일시에 만개한 사진을 찍을 수 없다.'사진·신안군청'

"이게 원추리나물 꽃이여?"

앞집 어르신이 담벼락의 원추리 꽃을 보고 말한다. 홍도 사람들만큼은 7월의 홍도를 주홍으로 물들이는 홍도 원추리가 자신들이 먹었던 그 원추리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남녘의 섬 벼랑에서, 여름 산 풀섶에서, 고산의 초원에서, 도시의 공원에서, 사람들의 소소한 정원에서, 훤칠한 꽃줄기에 훤칠한 꽃을 피운 원추리. 동자꽃이나 이질풀꽃과 달리, 맥락을 가늠하기 어려운 이름이지만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름, 원추리다.

원추리라는 이름의 어원은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다. 원추리는 한자 이름인 훤초萱草를 부르는 과정에서 음운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부모가 모두 살아 계심을 일러 '춘훤椿萱(참죽나무와 원추리)이 모두 무성하다'라 하여 아버지는 참죽나무에, 어머니는 원추리에 빗대었으며, 중국 북송시대 문호 소동파(소식蘇軾)는 '비록 하찮은 꽃이지만 제 스스로 길게 뽑아 어지러운 잎 사이에 홀로 우뚝 솟으니 그 애씀이 마음에 담겼다' 했으니, 원추리에 대한 예우가 정중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원추리는 무성하게 굽이치는 기다란 잎들 사이에 길고 굵은 꽃대를 뻗어 그 끝에 초록 잎과 대비를 이루는 노랑이나 주황의 큰 꽃을 피운다. 그 훤칠한 꽃대는 잎 하나 달지 않은 오로지 꽃만을 위한 줄기다. 하나의 꽃줄기는 굽어진 잎 높이를 지나면서 여러 개로 갈라지고, 그 끝에 하나씩의 꽃을 달고 있다.

통꽃처럼 보이는 꽃은 3장의 꽃잎과 3장의 꽃받침이 교차하면서 둘러나 있는데, 꽃잎은 피어나면서 바깥으로 가볍게 말린다. 안쪽의 진짜 꽃잎이 바깥쪽의 꽃받침꽃잎보다 살짝 큰 것이 일반적이다. 줄기 끝의 꽃들은 매일 하나씩 차례로 피어나는데, 아침 일찍 피어나 밤과 함께 시들기 때문에 영어로 Daylily라 불린다.

설악산의 원추리 군락. 우리 산야 어딜 가든 아름답고 훤칠한 원추리 군락을 쉽게 마주할 수 있으니 더욱 기특하다.

약으로 쓰이는 독성, 콜히친

원추리는 원추리아과Hemerocallidoideae 원추리속Hemerocallis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속명의 'hemera'는 'day'를, 'kallos'는 'beauty'를 이르는 말이라고 하니, 사람들의 꽃에 대한 감상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듯하니, 왠지 믿음이 간다.

원추리는 전국의 산야에서 자연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가 흔히 원추리라 부르는 중국 원산의 재배종Hemerocallis fulva을 비롯해 각시원추리, 노랑원추리, 애기원추리, 큰원추리, 홍도원추리 등 8종의 자생 원추리와 수종의 재배종 원추리가 각지의 산야에서 자라고 있다. 지리산 노고단의 원추리 군락 역시 다양한 종의 원추리들이 어울려 만들어낸다. 어떤 산에서 어떤 종의 원추리를 보든 원추리라 하면 절반 이상은 맞힌 셈이다. 산에 피면 산수국인 것처럼.

원추리의 어린 싹은 짤막하고 도톰한 잎들이 부채 모양으로 납작하게 배열되는데(영어로는 부채모양이라 하여 fan이라 부른다), 바로 이 단계를 나물로 먹는다. 짤막한 잎이 길고 가늘게 쭉 뻗어 부드럽게 출렁이면, "이게 그 먹는 원추리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어린 싹들이 여럿 자라면서 큰 포기를 이루는데, 각 포기에서 각각의 꽃줄기가 나온다.

다양한 모양과 색의 원추리 원예품종. 6장의 꽃잎, 노랑과 주홍의 색으로 만들어내는 원추리의 원에품종은 등록된 것만 수천 종이 넘는다. 원추리를 파는 화원의 주인도, 사다 심은 주인도 정확한 품종명을 알 수 없다. 그저 시름을 잊게 하는 아름다운 원추리다.

뿌리는 작은 고구마와 같은 모양의 괴근塊根들이 여러 개 달리고, 각각의 괴근 아래쪽에 수분이 많고 퉁퉁한 뿌리가 뻗어 있다. 이 괴근은 비대해진 뿌리조직으로, 생장에 필요한 양분을 저장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른 봄 무성한 잎을 피우는 데 매우 귀한 영양분이다. 뿌리 포기에서는 땅속으로 뻗으며 싹을 내는 지하경(땅속 기는 줄기)이 발달하는데, 이런 지하경으로 땅속 영역을 넓혀간다.

유럽이나 미국의 자료들은 원추리를 중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아원산으로, 오래전부터 식용으로 재배되었다고 소개하면서 꽃의 식용과 약용에 대해 많은 연구결과들을 내놓고 있다. 원추리의 크고 화려한 꽃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양의 폴리페놀, 플라보노이드, 카로티노이드 및 안토시아닌, 각종 비타민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원추리꽃의 식용과 약용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특히 원추리꽃은 황화채黃花菜라 불리기도 했는데, 함께 요리하면 꽃색이 배어 나와 요리의 색을 좋게 만들기에 생으로 먹기보다는 튀김이나 기름에 지져 먹었다.

다양한 모양과 색의 원추리 원예품종. 6장의 꽃잎, 노랑과 주홍의 색으로 만들어내는 원추리의 원에품종은 등록된 것만 수천 종이 넘는다. 원추리를 파는 화원의 주인도, 사다 심은 주인도 정확한 품종명을 알 수 없다. 그저 시름을 잊게 하는 아름다운 원추리다.

원추리의 잎이나 뿌리의 식용과 관련해서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망우초忘憂草라는 기막힌 이름이 있는데, 원래 망우초의 의미는 너무 아름다워 보고 있으면 시름을 잊어버린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뿌리와 잎을 먹게 되면 그 독성으로 인해 배앓이를 하거나 정신을 잃게 된다. 사실 오늘날의 마약과 같은 독성이다. 종종 원추리를 먹은 개나 고양이가 설사나 구토를 한다 하니,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에서는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일반적으로 식물은 토양 속 양분을 저장하는 조직을 만들면서 미생물이나 다른 동물들로부터 이를 보호하기 위한 독물질도 함께 저장한다. 원추리의 괴경에 흔한 독성물질은 콜히친Colchicine 성분인데, 콜히친은 다양한 식물에서 자연적으로 존재한다.

콜히친은 식물에겐 귀한 영양분인 질소를 포함하는 알칼로이드계 물질로, 식물의 방어물질로 이해된다. 니코틴, 카페인, 코카인, 모르핀, 키닌, 에페드린 등 200여 종 이상의 알칼로이드 물질이 식물에게서 발견되는데, 역설적이게도 식물의 독물질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의약품의 원료가 되고 있다. 콜히친 역시 통풍이나 관절통 치료제로 유용하다.

다양한 모양과 색의 원추리 원예품종. 6장의 꽃잎, 노랑과 주홍의 색으로 만들어내는 원추리의 원에품종은 등록된 것만 수천 종이 넘는다. 원추리를 파는 화원의 주인도, 사다 심은 주인도 정확한 품종명을 알 수 없다. 그저 시름을 잊게 하는 아름다운 원추리다.

특히, 콜히친은 세포분열을 저지해 유전자 돌연변이를 일으키는데, 씨 없는 수박이 바로 콜히친 처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콜히친 때문에 종종 발아력이 없는 원추리의 씨앗이 생기는데, 꽃으로 피기까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꼬투리 속의 씨앗이 불임성이라니 유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동물들은 식물들이 만들어낸 독물질을 구분하기 위해 다양한 미각을 발달시켜 왔는데, 사람은 현재까지 약 25종의 독물질을 구분한다고 한다. 꽃 이전에 살았던 공룡은 식물의 이런 독물질을 구분하지 못해 독해를 입었다고 한다. 정말이지 입에 쓴 것은 몸에도 쓰다. 다행히 콜히친은 자외선이나 햇빛에 분해되기도 하고, 삶으면 적절하게 제거되어 우리가 봄철 어린 원추리 싹을 먹는 데 별 걱정이 없다.

원추리는 인기 있는 정원(원예)식물이다. 전 세계적으로 등록된 원추리의 재배품종이 4,000종 이상이나 되며, 현재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는 재배품종만도 1,000종 이상이라고 한다. 6장의 꽃잎으로 우리가 그릴 수 있는 꽃의 종류는 몇 가지나 될까.

다채로운 색상과 크기, 가장자리가 레이스처럼 구불거리거나, 겹겹으로 갈라지거나 모이거나, 호랑이 무늬가 있거나, 테두리가 있거나, 서로 다른 향을 내거나…. 정말이지 상상 그 이상의 꽃들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식물 집사들이 원추리와 백합과 나리에 대한 이런저런 구분을 하고 있는 사이, 원예가들을 이들을 마구 섞어 원추리인지 백합인지 나리인지도 모르는 품종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미국 미주리식물원에 전시되어 있는 원추리. 세계 유수의 식물원들은 우리나라 등 아시아 원산의 원추리 전시원을 꾸며, 다채로운 원추리 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먹는 식물에서 감상하는 식물로

수천 종의 재배품종이 만들어져도 아직까지 원추리는 꽃대에 잎을 달지 않고, 땅속으로 알뿌리는 만들지 않는다. 재배품종이 수천 종이고, 온갖 영예로운 이름을 다 붙여도 장미면 다 장미이듯, 원추리이면 다 원추리니, 세계적인 정원 식물의 원종들이 우리 산야에 호기롭게 자라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원추리는 땅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잘 자란다. 정원 식물로서는 가장 다루기 쉬운 식물이다. 기본적으로 충분한 햇빛이 필요하나 그늘에서도 잘 견디고, 습한 토양을 좋아하나 건조한 토양에서고 잘 자라, 사실상 거의 모든 환경에서 자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기특한지. 성숙한 잎은 맛이 없어 곤충이나 먹겠다는 동물들이 거의 없으나, 두툼한 꽃대의 즙액을 빨아먹는 진딧물은 정원을 가꾸는 사람에게 다소 골칫거리다.

땅도 가리지 않고, 병충해에도 강하고, 지하경으로 무성하게 뻗어나가는 성질은 한번 심어지면 해마다 스스로 번지고 번져 근사한 원추리 무리를 이루게 된다. 유럽에 비해 비교적 늦은 18세기에 미국으로 전해진 원추리는 사람의 정원을 넘어 야생으로 번지면서 다양한 주州에서 요주의 침입식물 목록에 올라 있다.

식용으로서의 원추리가 시들해진 이후, 우리에게 아름다운 꽃식물 원추리로서 명성을 알린 것은, 비록 분류학적으로 약간씩 다른 원추리 종種들이긴 해도, 단연 지리산 노고단의 원추리 무리였다. 거센 바람과 취약한 토양, 사람들의 과도한 이용으로 위태로웠던 고산 초원이 생태계보전지구로 지정되자, 다양한 원추리의 지하 군단은 그 어떤 식물보다 빨리 이 일대를 장악하면서 우리 산야의 자존심을 회복해 주었다.

노고단의 온갖 희귀식물의 목록이 올라오더라도, 원추리가 피어난 것을 보고난 후에야 사람들은 동자꽃도 보고 오이풀꽃도 보고 이질풀꽃도 보는 여유를 갖는다. 그것이 스타의 힘이다.

월간산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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