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요정의 기묘한 모험] 쓴맛, 신맛, 매운맛까지! 그물버섯

박상영 생태사진작가 2023. 5. 27.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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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버섯아재비- 활엽수 숲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버섯. 대의 윗부분에 있는 그물 무늬가 특징이다. 박상영 제공

‘모든 버섯은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버섯은 한 번만 먹을 수 있다.’ 

무슨 뜻일까요? 야생에서 잘 모르는 버섯을 먹었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뜻이 담긴 유럽 속담이에요. 그만큼 야생 버섯 섭취는 숙련된 버섯 애호가조차 함부로 즐길 수 없는 마지막 콘텐츠지요.

● 황홀한 식감의 야생 버섯, 그물버섯류

제가 야생 버섯을 공부한 지는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먹어보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먹어볼 용기가 선뜻 나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이제는 버섯을 분류하는 실력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참을 수 없는 분류학적 호기심에 야생 버섯을 혀에 갖다 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버섯을 몇 개 꼽아 보라고 하면, 자신 있게 ‘그물버섯아재비’를 말하고 싶어요. 그물버섯아재비는 활엽수와 공생하는 버섯이라 주로 여름부터 가을까지 활엽수림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두툼한 육질, 쫄깃한 식감, 풍부한 맛 뭐하나 빠짐없이 훌륭한 식용 버섯이죠.

그물버섯아재비는 다른 버섯들과는 달리, 주름살이 없어요. 대신 관공 형태의 자실층을 갖고 있습니다. 관공은 아주 미세한 빨대가 여러 개 붙어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길이는 버섯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이런 관공을 갖고 있는 버섯을 그물버섯류라고 해요. 그물버섯아재비는 굵직한 크기와 갈색 갓, 연갈색의 대, 백색 또는 황록색의 관공이 특징입니다. 대의 윗부분에 나 있는 그물 무늬를 관찰해보면 쉽게 구분할 수 있죠.

그물버섯류에는 심각한 독성을 나타내는 버섯이 거의 없을뿐더러, 그물버섯아재비처럼 정말 맛있는 버섯들이 많습니다. 그물버섯류만의 탱글탱글하면서도 보드라운 식감은 먹어본 사람만 알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중 ‘쓴맛그물버섯속’과 ‘신맛그물버섯속’의 버섯들은 조심하세요. 쓴맛그물버섯속에 속하는 버섯들의 속살을 뜯어서 혀에 갖다 대면 형용할 수 없는 쓴맛이 올라오고, 신맛그물버섯속의 버섯들은 도무지 버섯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상큼한 맛이 느껴지거든요. 심지어 매운맛이 나는 ‘매운그물버섯’은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화끈한 맛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그물버섯류의 일부는 특징적인 맛을 갖고 있어서, 현장에서 버섯을 분류할 때 버섯 조직을 혀에 대어 맛을 보기도 하죠.

가죽밤그물버섯 -침엽수고사목 또는 침엽수 주위 땅에서 발생하는 그물버섯류. 그물버섯류 버섯들은 주름살 대신 구멍이 여러 개 나 있는 관공을 갖고 있다(왼쪽), 제주쓴맛그물버섯 - 여름에 활엽수 또는 침엽수 숲속에서 발생하는 대형그물버섯류. 조직을 뜯어서 맛보면 엄청난 쓴맛이 난다(오른쪽), 박상영 제공

● 반전의 맛을 뽐내는 귀신그물버섯

그물버섯만의 독특한 특징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버섯을 구분하기 위해 그물버섯류의 사진을 찍을 때, 저는 항상 관공 부위에 X자를 그린 뒤 찍어요. 그 이유는 색이 변하는 버섯들이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는 ‘밤꽃그물버섯’이 있죠.

이 버섯은 밤꽃처럼 관공이 짙은 붉은색을 띠고 있지만, 상처가 나면 즉시 푸른색으로 변합니다. 이는 그물버섯류에 ‘풀빈산’이라는 버섯 색소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이에요. 기본적으로는 주황색을 띠고 있는 성분이지만, 버섯이 찢어지거나 상처를 입어 공기에 노출되면 산화되어 파란색으로 변합됩니다.

무섭게 생긴 식용 버섯이 하나 더 있는데, 귀신처럼 생긴 ‘귀신그물버섯’입니다. 이 버섯은 멀리서 보면 까무잡잡하게 생겨서 완전히 썩은 버섯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가까이서 보면 어두운 색깔의 인편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어 한층 더 무섭게 느껴지죠. 그러나 귀신그물버섯도 맛있는 식용 버섯 중에 하나이며, 제가 특히 좋아하는 버섯이기도 합니다.

한번은 손님들에게 차돌박이와 함께 귀신그물버섯을 볶아 내준 적이 있었는데, 모두들 엄청 맛있다고 극찬을 해주신 적이 있었죠.

노란길민그물버섯 - 그물버섯임에도 불구하고 관공 대신 주름살을 갖고 있는 독특한 그물버섯류. 박상영 제공

어느 정도 그물버섯류에 익숙해지면 이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멀리서 언뜻 보기만 해도 그물버섯류처럼 생겼는데, 가까이서 보니 관공 대신 주름살이 있는 황당한 경우들이죠. 버섯을 만져보고, 찢어보면 그 질감이 아무리 생각해도 산그물버섯속의 버섯과 똑같은데, 이상하게 주름살이 있습니다. 과거의 분류학자들은 이 이상한 버섯을 주름버섯류로 분류해야 할지, 그물버섯류로 분류해야 할지 고민했지요. 

실제로 예전에는 민그물버섯속을 주름버섯류가 속한 우단버섯과로 분류했어요. 그러나 최근 분자생물학적 분석을 통해, 민그물버섯속의 버섯은 그물버섯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민그물버섯속의 조상은 관공이 있었지만, 현재는 진화를 거듭하며 주름살 형태로 변모한 것이죠.

귀신그물버섯 - 활엽수 또는 침엽수 숲속에서 발생하는 그물버섯류 중 하나. 너덜너덜한 인편과 칙칙한 색, 상처를 내면 적변하는 특징이 있다. 박상영 제공

※필자소개

박상영(생태사진작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버섯을 비롯한 아름다운 자연을 사진 속에 담아내는 청년 생태사진작가. 한국농수산대학 버섯학과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를 졸업한 후 국립수목원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충북대학교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다

※관련기사

어린이과학동아 5월 15일, [버섯요정의 기묘한 모험]쓴맛, 신맛, 매운맛까지! 그물버섯

[박상영 생태사진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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