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서울 도심에 세운 최초의 건축물
서울 종로구 혜화 로터리 주변. 이곳은 5개 방향에서 차가 오가는 복잡한 곳이지만, 북동쪽의 혜화파출소 옆 좁은 골목길로 올라가니 양쪽으로 2~4층 규모의 조용한 빌라와 상점이 이어졌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3분 정도 걸어가니, 높은 건물이 거의 없는 이곳에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건물 두 채가 약 50m 간격을 두고 모습을 드러냈다.
교육기업인 재능교육 사옥 바로 앞에 있는 이 두 건물은 재능문화센터(JCC)로,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복합문화공간이다. 미술관과 콘서트홀이 있는 JCC 아트센터와 스크린·음향시설을 갖춘 오디토리움과 재능교육의 연구개발(R&D)센터가 들어선 JCC 크리에이티브센터로 구성돼 있다. 두 건물은 ‘길’이라는 콘셉트에 맞춰 전통과 현대 도시와의 조화를 구현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이자, 노출콘크리트로 극도의 단순하고 절제된 공간을 추구하는 것으로 유명한 안도 다다오의 건물이 서울에 들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근대 건축의 아버지’ 안도 다다오는 한 편의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건축가가 되기 전에 트럭 운전사와 권투선수로 살았고, 건축에 대해 전문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안도 다다오는 공업고등학교 졸업 후 헌책방에서 르 코르뷔지에를 접한 뒤 건축에 흥미를 느껴 그를 찾아 파리 여행길에 올랐다. 이후 1962년부터 1969까지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독학으로 건축을 배웠다.
그는 1969년 안도 다다오 건축 연구소를 설립해 ‘스미요시의 연립 주택’(오사카)으로 일본 건축 학회상을 수상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미술관, 공공건물, 교회나 절을 많이 지었으며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대표적인 설계작품으로는 고베의 로코 하우징 II와 오사카의 갤러리아 아카, 빛의 교회, 산토리 박물관, 가고시마대학의 이나모리회관, 오사카의 맥스레이 본사 사옥, 나라의 고조문화박물관과 효고의 초등학교 등이 있다.
특히 오사카에 지은 ‘빛의 교회’와 홋가이도의 평원에 위치한 ‘물의 교회’는 물과 빛, 노출 콘크리트의 건축가로 불리는 안도 다다오 건축의 본질을 담았다. 노출 콘크리트 벽을 뚫고 자연광으로 투사된 ‘빛의 십자가’와 ‘물의 세례’의 상징인 인공 호수 위에 세워진 십자가와 야외 예배당은 그 완벽한 기하학 구조가 자연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평온하고 명상적인 공간을 창조해냈다.
국내의 안도 다다오의 작품은 제주도에 3곳(지니어스로사이·글라스하우스·본태박물관)을 비롯해 강원도 원주의 한솔뮤지엄 등이 있다.
진입 도로에서 보면 거대한 ‘V’형 기둥에 의해 사선형으로 떠받쳐진 콘크리트 구조체가 먼저 눈에 띈다. 평상시 안도 다다오는 수평과 수직을 중시하지만, JCC에서는 사선의 아름다움을 살려 건물의 기하하적 구조를 돋보이게 했다. 삼각형 형태로 설계된 창문은 빛에 따라 공간이 달라 보이도록 했고, 계단도 나선형으로 지어졌다.
재능교육의 창업주인 박성훈 회장은 ‘100년의 건축물을 짓고 싶다’고 한 안도 다다오 철학에 반해 그에게 JCC 건축을 맡겼다. 안도가 일본 교육기업인 베네세그룹과 손잡고 가가와현 나오시마섬에 지츄미술관·이우환미술관 등을 세워 세계적 명소로 만든 점도 박 회장이 안도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로 알려졌다.
벽을 만져보니 미끈한 촉감이 인상적이다. ‘100년 건물’을 목표로 하는 안도 다다오에게 부식될 염려가 적은 콘크리트는 최적의 재료이다.
콘크리트 작업을 할 때 거푸집이 벌어지지 않도록 나사못으로 조이며 생긴 구멍인 ‘콘’의 간격과 배치에서도 섬세함이 느껴진다. 노출 콘크리트 표면의 콘 구멍은 가로 60㎝, 세로 45㎝의 간격을 두고 있으며 벽 끝에서부터의 가로 간격은 30㎝로 1대2의 비율을 유지한다. 조명 등 각종 스위치도 정확하게 콘을 중심으로 달려있다. 이들 콘 구멍은 벽을 훼손하지 않고 미술 작품을 걸어 전시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자연과의 조화가 두드러진다. 물과 빛, 바람, 나무, 하늘 등 자연을 건축물과 긴밀히 결합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JCC에서 가장 두드러진 안도 다다오의 자연주의 요소는 빛이다. 자연적인 빛을 이용해 어둠과 밝음을 극대화 시키고 공간을 강조했다. 특히 건물의 대부분이 투명 유리와 노출 콘크리트로 이뤄져 간결하고 단순하지만, 자연이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했다.
안도 다다오는 모든 사물을 한 쌍으로 배치했다. 테라스의 의자, 옥상정원의 환풍기, 지하의 배수관 모두 두 개씩 놓여있다. 환풍기와 배수관은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는 모형이다. 안도 다다오는 생태계의 모든 동물이 짝 지어 다니듯, 자연과 어우러지는 평온한 공간을 설계하기 위해 모든 사물을 한 쌍으로 설계했다.
JCC 주변을 걷는 사람들은 건물 외부의 계단을 타고 올라와 자연스럽게 안도의 작품을 접할 수 있다. 1층에서 올라오는 외부 계단은 길과 수평 방향이 아니라 보행자 쪽으로 각도를 틀어 방문객들에게 활짝 열려 있는 모양새다.
JCC아트센터 지하에 위치한 콘서트홀은 1층 136석, 2층 41석 등 총 177석으로 구성된 콘서트홀이다.
일본의 나가타 음향에서 참여해 바깥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차단하며 객석 의자도 일본의 고도부키 의자를 사용해 시간이 흘러도 삐걱거리는 소리 없이 오랫동안 튼튼하게 사용할 수 있다. 리듬감 있는 나무 벽면도 인상적이다.
높이가 전부 다른 나무 패널로 벽과 천장을 마감해 소리의 반사를 조절하고 모든 객석에서 음악을 고르게 즐길 수 있다. 사방을 나무 패널로 마감한 콘서트홀에 앉아 있으면 외부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아 마치 우주나 무중력 공간에 있는 것 같은 고요함을 경험할 수 있다.
- Copyrights ⓒ 조선비즈 & Chosun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인터뷰] 배우 강수연 목숨 앗아간 뇌졸중…“젊은 여성도 이 증상 보이면 위험 신호”
- 워런 버핏, 애플 주식 판 이유는… “AI 힘은 핵무기급” 경고도
- “통신요금 직접 가입하면 30% 싼데”… 소비자 외면 받는 통신사 다이렉트 요금제
- [중견기업 해부] 현대차 따라 인도 간 서연이화, 올해도 최대 실적 기대
- 더 내지만 더 받아서 미래 부담 더 커지는 연금개혁안, 20대는 왜 찬성했나
- 반포서도, 잠실서도 새 '커뮤니티' 바람분다
-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미국서 ‘한국형 리더십’ 통했다… 박아형 UCLA 공대 학장 “소통이 나의
- [스타트UP] 북촌·서촌 누비는 이 남자 “한옥, 전 세계 알릴래요”
- 해외여행 ‘통신요금’ 아끼려면… 함께 가면 ‘포켓 와이파이’, 가성비는 ‘현지 유심’
- [시승기] 배터리로만 73㎞ 주행… BMW PHEV 530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