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희 사진 글쓴이

 

누에나방의 원조,멧누에나방

[나비목 > 멧누에나방과]
학명: Bombyx mandarina (Moore)

 
글/사진 정부희      
 

 

 

    ㅣ 나는 새똥이다! 멧누에나방 어린 애벌레.
 

  뽕나무 하면 송강 정철 시 한 수가 절로 입가에 뱅뱅 돈다. 강원도 도지사(관찰사) 시절, 백성이 누에를 잘 치라고 응원하며 지은 <훈민가>이다. 
 
오늘도 다 새거다 호미 메고 가자스라. 내 논 다 매어든 네 논 좀 매어주마 올  길에 뽕 따다가 누에 먹여 보자스라.
<정철, 훈민가 중>

 
   누구나 뽕나무만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누에’이다. 하지만 난 오디가 떠오른다. 나 어렸을 땐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이라 학교까지 늘 한 시간도 넘게 걸어 다녔다. 수업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땐, 꼭 길옆 뽕나무 밭에 들러 오디를 실컷 따 먹었다, 입술이 진보랏빛으로 물들 때까지. 사람들에게 멋진 실크를 선물하는 누에나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다. 그 누에나방 애벌레는 달짝지근한 오디는 안 먹고 쌉사름한 뽕나무 잎만 먹고 산다. 누에나방 애벌레들이 뽕나무 잎사귀를 먹을 때 나는 비오는 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ㅣ 나는 요가선수다! 뽕나무 잎사귀 먹는 멧누에나방애벌레.
 

  그러고 보니 뽕나무 잎사귀를 먹고 사는 ‘국민곤충 누에나방’의 원조가 따로 있다. 누굴까? 바로 ‘멧누에나방’이니다. 말 그대로 산에서 산다 해서 멧누에나방이라 이름이 붙었다. 사람들은 욕심이 많아 질 좋은 명주실을 얻기 위해 야생에서 사는 멧누에나방을 여러 번 품종개량해서 누에나방을 만들었다. 말하지면 누에나방은 멧누에나방을 길들인 가축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멧누에나방 애벌레는 야생이라서 좀 터프하게 생겼고, 누에나방 애벌레는 잘 길들여진 순한 양 같다.
 



   뽕잎만 먹고 사는 멧누에나방 애벌레

 


    ㅣ 나뭇가지로 위장한  멧누에나방 애벌레.
 

  뽕나무가 잎사귀를 무성하게 낼 때쯤이면 뽕나무에선 곤충들이 모여 잔치를 벌인다. 그 가운데서도 멧누에나방 애벌레는 뽕나무 잎을 아예 전세 내어 애벌레 평생을 산다. 주둥이(큰턱)를 양 옆으로 오모렸다 폈다 하면서 아기 손바닥만 한 잎사귀를 아작아작 베어 잘도 씹어 먹는다. 먹성이 얼마나 좋은지 잎사귀 한 개 먹어치우는 데는 30분도 안 걸린다. 그런데 새끼 멧누에나방의 생김새는 희한하다. 어린 애벌레는 마치 새똥 같이 생겼다.  그도 그럴 것이 힘이라곤 없는 녀석이 사람으로 치면 간이 배 밖으로 나와, 뽕 잎사귀 위에서 버젓이 몸을 노출시키고 사니 말이다.
 

  ㅣ 머리 움츠린 멧누에나방 애벌레.

멧누에나방 애벌레.















 
   그렇게 다 드러내놓고 사니 늘 새나 쌍살벌 같은 천적이 호시탐탐 노린다. 그래서 아기 멧누에나방은 자신의 몸을 새똥으로 변장해서 ‘나  새똥이야, 맛없으니 먹지마.’라며 광고하며 공격하려는 천적을 머뭇거리게 한다. 아기 멧누에나방에겐 천적에 맞서 싸울 무기도 없고, 그렇다고 독 물질을 품은 화학방어물질도 없다.  그러니 힘 약한 녀석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새똥처럼 보여 천적을 따돌리는 것밖엔 별 도리가 없다. 아기 멧누에나방의 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건드리면 애벌레는 상체(머리와 가슴부분)를 부풀리며 위로 힘껏 치켜든다. 한 수 더 떠 가슴 속에 움츠리고 있던 머리를 거머리처럼 쭉 빼내 ‘나 무섭지?’하며 위협한다. 게다가 피부엔 뱀 눈 같이 생긴 부리부리한 큰 눈 무늬까지 그려 넣어 천적을 움찔하게 만든다. 다 힘없는 녀석이 살아남기 위해 치는 몸부림이다. 그런다 해서 천적들한테 안 잡아먹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천적들의 제삿밥이 될 확률은 줄어든다.

 


뽕나무 잎사귀에 만든  멧누에나방 고치.

 ㅣ 늦가을에 날개돋이한 멧누에나방 어른 벌레.

 

 

 

 

 

 

 

 

 

 

 

 

 

 


 

 

 

 

 

 

 

 

 

 

 

 

 

 

 

   새끼 멧누에나방은 애벌레 시절 동안 모두 허물을 4번 벗는다. 곤충의 피부는 단단한 큐티클로 되어 있어 몸이 자라면 허물을 벗어야 산다. 안 그러면 뼈처럼 단단한 큐티클 피부에 갇혀 죽고 만다. 그래서 뽕잎을 부지런히 먹으면서 몸이 자라면 허물을 벗고, 또 먹고 몸이 또 자라면 또 허물을 벗고.... 그렇게 4번 허물을 벗고 5살(5령)이 되면 녀석은 드디어 번데기를 만든다. 번데기도 뽕나무 주변에다 만든다. 재밌게도 번데기 만드는 솜씨는 참 투박하다. 뽕 잎사귀를 끌어 모아 주둥이(아랫입술샘)에서 명주실을 뽑아 얼기설기 만든다. 그리곤 그 속에다 본격적으로 뽕 잎 안쪽에다 고치를 틀기 시작한다. 명주실을 토해 정성껏 만든 고치는 마치 메추라기 알처럼 생겼다. 다 완성된 고치는 연노란 빛을 띠어 곱지만 누에나방 고치만큼 정교하진 않다. 녀석은 고치 속에서 번데기가 되어 어른 멧누에나방으로 변신하기만 기다린다. 드디어 찬바람 솔솔 불고 찬 이슬 내리는 가을날이 되면 번데기는 어른벌레로 변신하여 바깥세상 구경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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