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희 사진 글쓴이


조개껍질에서 한 평생 사는 톱니무늬버섯벌레


[딱정벌레목 > 버섯벌레과]
학명: Aulacochilus decoratus Reitter
 
글/사진 정부희    
 



 
    ㅣ  조개껍질버섯 속에서 만든 톱니무늬버섯벌레의 번데기.
 
   이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언덕이라고도 할 수 없는 곳, 언덕에서 나지막한 산들이 피어나는 곳, 부여 가는 길. 부소산에 오른다. 초여름답게 초록빛 나무 잎사귀들이 서로 엉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숲 터널을 만들어 낸다. 초록잎이 만든 그늘 속을 걷다보니 어느새 고란사. 고란사에 서니 발아래가 백마강이다. 꿈꾸듯이 굽이치는 백마강에 산 그림자가 호젓이 잠겨있다. 유행가에 나오는 ‘슬피 우는 종소리’는 안 들리고, 뒤꼍에는 썩은 나뭇가지들이 쌓여있다. 서둘러 다가가보니 아기 주먹만 만한 버섯이 몇 조각 붙어있다. 딱 보니 조개껍질버섯이다. 나무껍질에 조개처럼 딱 붙어 있으니 말이다. 혹시나 싶어 조개껍질버섯을 살짝 뒤집어본다. 아, 있었구나. 조개껍질버섯만 보면 죽고 못하는 벌레, 톱니무늬버섯벌레다. 어여쁜 톱니무늬버섯벌레를 삼천궁녀가 꽃처럼 떨어진 백마강가에서 보다니!



   조개껍질 닮은 조개껍질버섯에서 만난 톱니무늬버섯벌레

 

    ㅣ  톱니무늬버섯벌레의 밥상인 조개껍질버섯.
 
   웬만한 산에 가면 한두 개는 꼭 만나는 조개껍질버섯. 조개껍질버섯은 제법 커 대합만 하다. 특이하게도 이 버섯을 뒤집어 보면 갓의 아랫면에 주름살이 졌다. 대부분 나무에 나는 딱딱한 버섯의 아랫면은 스폰지처럼 숭숭 구멍이 뚫렸는데 말이다. 버섯의 갓도 크지만 두께도 두꺼워 한 살이가 긴 버섯살이 곤충들에겐 인기가 많다. 그 가운데에서도 톱니무늬버섯벌레는 조개껍질버섯만 보면 신이 나 입이 귀에 걸린다.

    코 앞 썩은 나무에 붙은  조개껍질버섯을 들춘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톱니무늬버섯벌레가 붙어있다. 세 마리 씩이나 버섯 한 조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녀석은 몸이 꽤 커(몸길이 7밀리미터) 맨 눈으로도 잘 보인다. 몸매는 타원형으로 매끄럽게 빠져 군더더기 없이 아름답다. 몸 색깔은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다. 까만색 몸에는 형광색 빛이 도는 파랑색 물감을 덧칠 한 것 같은데, 어떤 색이라고 해야 할 지 잘 표현이 안 된다. 그 뿐 아니다. 딱지날개에는 빨간색 무늬를 과감하게 그려 넣었는데, 영락없이 불꽃처럼 생겼다. 그런데 불꽃무늬의 가장자리가 톱니처럼 날카로워 눈이 번쩍 뜨인다. 그래서 이름도 톱니무늬버섯벌레라고 불리니 톱니무늬는 ‘밥값’을 제대로 한 셈이다.
 
 

       ㅣ  톱니무늬버섯벌레.
 
   그럼 왜 녀석은 딱지날개에 강렬한 무늬를 새겨 넣었을까? 경고색을 띠어 힘센 포식자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미리 선수를 치려는 속셈이다. 대부분 새들은 ‘화려하고 강렬한 색깔을 가진 곤충들에겐 독이 많다’라고 기억하기 때문에, 빨간 무늬를 보면 입에 안 댈 가능성이 많다. 실제로 녀석은 건드리면 역겨운 냄새를 내 뿜는다. 맛으로 치면 약간 쓴맛이 날 것 같은 냄새. 그러니 몸 색깔이 화려한데다 독까지 품고 있으니 천적들이 잡아먹겠다고 마음대로 달려들진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일부 새, 쥐나 개구리 같은 천적들에의 밥이 될 때가 많다.



   아기 톱니무늬버섯벌레의 밥도 조개껍질버섯

 

    ㅣ  조개껍질버섯 속에서 만난 톱니무늬버섯벌레의 번데기.
 
   짝짓기를 마친 엄마 톱니무늬버섯벌레가 알을 낳는다. 역시 알도 조개껍질버섯에 낳는다. 왜냐하면 아기 톱니무늬버섯벌레도 엄마를 닮아 조개껍질버섯을 먹기 때문이다. 하얀색 알은 가지런히 뻗은 주름살 사이에 붙여 놓는데, 알은 시간이 지나면서 거무칙칙하게 변한다. 그리고 드디어 알에서 애벌레가 태어난다. 이제 애벌레의 시대다.

    애벌레들은 주름살 아래로 파고 들어가면서 버섯살을 갉아 씹어 먹는다. 포자도 먹지만, 포자기관인 주름살의 안쪽에 있는 두터운 버섯살도 잘 먹는다. 실제로 아기 톱니무늬버섯벌레를 보는 일은 무지 힘이 든다. 늘 버섯 속에서 숨어 살기 때문이다. 만일 녀석을 보려고 버섯을 쪼갠 다음 버섯 속에서 꺼내면 녀석은 죽을 수도 있다. 버섯을 쪼갬과 동시에 평생의 버섯 집은 파괴되기 때문에 녀석을 돌아갈 집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녀석이 살아있는 지를 알려면 버섯 밖으로 나온 똥을 보면 대번에 눈치 챌 수 있다. 즉 애벌레가 살고 있으면 조개껍질버섯을 뒤집어 보면 주름살 사이사이에 흰 부스러기들이 소복소복 쌓여있다. 버섯 속에서 사는 녀석 치고 새끼 톱니무늬버섯벌레는 몸집이 커서 먹고 싸는 똥도 맨눈에도 금방 띈다.
 
 
 
     ㅣ  톱니무늬버섯벌레.
 
   조심스럽게 하얀 부스러기 똥들이 뭉쳐 있는 주름살을 살살 헤쳐본다. 아, 운이 좋게도 애벌레의 몸이 보인다. 살살 달래 녀석을 꺼내본다. 녀석은 놀라 이리저리 꿈틀거린다. 아름다운 엄마를 둔 덕에 톱니무늬버섯벌레 애벌레도 참 예쁘다. 매끈한 몸에 짙은 회색빛 무늬가 마디의 연결막마다 그려져 있다. 보면 볼수록 참 고상하다. 피부는 적당히 단단해 만져도 쉽게 눌려지지 않는다. 녀석은 만지지 말라며 몸을 자꾸 뒤틀다가 아예 후진을 해서 도망치려 한다. 더구나 배 꽁무니에는 갈고리 같은 돌기가 2개 달려 있어 좁은 버섯 속에서 앞뒤로 다니기 수월하다. 열심히 버섯살을 먹은 아기 톱니무늬버섯벌레는 2번 허물을 벗고 번데기를 거쳐 어른으로 변신한다. 물론 어른이 돼서도 조개껍질버섯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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