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버섯 속에서 사는 신선, 산호버섯벌레
[딱정벌레목 > 버섯벌레과]
학명: Neotriplax lewisi (Crotch)
ㅣ구름버섯을 먹고사는 어른 산호버섯벌레.
계룡산 자락에 오롯이 앉아있는 갑사 가는 길.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절집으로 오르는 길이 참 한가롭다. 가을이 왔다고 나무와 풀들이 다들 단풍 든 옷으로 갈아입었다. 붉은색 감이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에선 새들이 시끌벅적하다.
직박구리와
물까치 떼가 한 바탕 먹이 전쟁을 벌이며 산사의 한가로움을 깬다.
천천히 걷다보니 길옆에는 썩은 나무들이 쓰러져 누워 있다. 내심 반가워 다가가 혹시 버섯이 나있지는 않는지 이리저리 살펴본다. 역시, 나무껍질 위에는 구름같이 생긴 버섯이 몽실몽실 피어나 있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나
는 구름버섯이다. 버섯 조각을 만져보니 딱딱한 게 나무껍질 저리가라이다. 쪼그리고 앉아 살살 구름버섯을 하나하나 뒤집어 본다. 그러면 그렇지, 낮이라 햇볕이 따뜻해서인지 구름버섯 아랫면에 곤충들이 붙어있다. 빨간색 옷을 어여쁘게 입은
산호버섯벌레이다. 아, 남쪽 지방에서 봤는데 여기에서도 사나보다. 남쪽보단 추운 계룡산 자락에서 만나다니! 몸 색깔이 붉은 산호보석 색깔과 비슷해 얼마 전에 ‘산호버섯벌레’ 라고 이름 지어줬던 녀석이다.
ㅣ산호버섯벌레의 밥상, 구름버섯.
얇은 구름버섯
구름버섯은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썩은 나뭇가지만 있으면 피어나는 ‘국민 버섯’이다. 아마도 산에 가면 제일 많이 보는 버섯을 꼽으라면 구름버섯이 일이등은 너끈히 차지할 거다. 한 번 났다 하면 구름이 피어나듯 버섯 조각 수십 개가 기와처럼 켜켜이 겹친다. 갓의 생김새는 마치 반달처럼 생겼는데, 두께는 얼마나 얇은지 1-2밀리미터 밖에 안 된다. 그렇게 얇은 버섯에 산호버섯벌레가 살다니! 놀랍기만 하다.
ㅣ구름버섯을 먹고 있는 산호버섯벌레.
보석보다 더 아름다운 산호버섯벌레
산호버섯벌레! 아마 산호버섯벌레를 본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아니, 산호버섯벌레 말고도 버섯에 사는 곤충들을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되레 버섯에도 곤충이 사냐고 물을 것이다. 우선 산호버섯벌레 족보를 뒤져보면, 녀석은 딱지날개가 딱딱한 딱정벌레목 집안 식구이다. 그 중에서도 버섯만 먹고 사는 버섯벌레 집안(버섯벌레과)의 가족이다. 그러다 보니 녀석의 몸매는 버섯벌레 집안 식구의 트레이드 마크인 계란모양이다. 몸매가 타원형으로 유려하니 사람으로 치면 누가 뭐래도 미인형이다.
ㅣ 산호버섯짝지기 흰구름버섯.
ㅣ구름버섯 관공부분을 먹는 산호버섯벌레 애벌레.
몸 색깔은 더듬이와 다리만 빼고 온통 빨간색이라서 마치 가을날 빨간 단풍잎을 보는 것 같다. 게다가 몸에는 참기름이라도 바른 것처럼 반질반질 윤이 난다. 얼마나 앙증맞고 매혹적인지 어찌 보면 보석 같고, 어찌 보면 브로치 같다. 더듬이는 11마디인데, 끝 쪽 3마디(8번째-11번째 마디)만 뻥 튀긴 것처럼 부풀어 밥주걱 같다. 더듬이에는 감각기관이 빽빽이 박혀 있어 버섯 바깥에서 벌어지는 환경변화를 속속 알아차린다.
정신없이 구름버섯을 갉아먹고 있는 녀석이 하도 예뻐 살살 만져본다. 태평하게 버섯밥을 먹던 녀석이 깜짝 놀라 땅 쪽으로 뚝 떨어진다. 나무 부스러기를 헤치고 땅 위를 살펴보니 녀석이 꼼짝도 안 하고 누워있다. 일어나라고 깨우는데도 그냥 죽은 것처럼 뒤집어져 있다. 지금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어 일정 시간이 지나야 깨어나니 기다릴밖에. 잠시 후 더듬이와 여섯 다리가 꼬물꼬물 움직이더니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서 어기적어기적 걸어간다.
또 다른 구름버섯조각을 들춰보는데, 이게 웬일인가! 암컷과 수컷이 서로 맘이 맞아나보다. 글쎄, 산호버섯벌레가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것도 구름버섯 아랫면에 딱 붙어서. 버섯살이 곤충들은 짝짓기도 깜깜한 버섯 속에서 해 좀처럼 짝짓기 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가 없는데..... 귀한 모습을 엿보다니 오늘은 대박 난 날이다.
여느 곤충들처럼 산호버섯벌레의 수컷은 암컷의 등에 올라타 있다. 수컷은 행여나 매끄러운 암컷의 등에서 떨어질까 봐 여섯 다리로 암컷의 몸을 꽉 잡고 있다. 다행히도 수컷은 다리의 발목마디는 옆으로 팽창해 암컷을 잘 잡는데 요긴하다. 게다가 발목마디 아래쪽엔 까칠까칠한 털들이 물 셀 틈 없이 빽빽이 붙어 누워있어 암컷을 꼭 잡을 수 있다. 그런데 녀석들은 참 무드도 없는 짝짓기를 한다. 그저 암컷은 구름버섯을 먹을 뿐이고, 수컷은 암컷 등에 업혀 있을 뿐이니....
ㅣ 흰구름버섯도 먹는 어른 산호버섯벌레.
산호버섯벌레의 밥은 구름버섯
산호버섯벌레 애벌레와 어른벌레는 모두 구름버섯을 먹는다. 구름버섯의 두께가 2밀리미터 밖에 안 되니 몸길이가 5밀리미터 정도 되는 녀석이 버섯 속에 굴을 파며 밥 먹는 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그래서 포자와 버섯살이 많은 버섯 아랫면의 표면을 갉아서 씹어 먹는다. 부지런히 버섯살을 먹고 똥도 싸는데, 녀석들은 칠칠맞게 똥도 버섯 아랫면에 싼다. 그래서 켜켜이 쌓여 있는 구름버섯의 아랫면에는 동글동글한 하얀 똥들이 쌓여 있다. 오늘도 산호버섯벌레는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숲속에서 구름버섯을 맛있게 먹으며 살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