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저한테 '백마 탄 찌질이'라고 하더라고요. 목표의 절반 이상은 성공했구나 싶어서 좋았어요."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남남' 종영을 기념해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 카페에서 마주 앉은 안재욱은 "살면서 이렇게 지질하다는 소리를 듣기는 또 처음"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안재욱은 '남남'에서 자기 관리에 철저한 전문의 박진홍을 연기했다.
어딘가 허술하고 지질해 보이기까지 하는 박진홍은 여자 주인공이자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인 김은미가 "설설 기기만 해서 재미가 없다"고 푸념하는 어리숙한 남자다.
버스 정류장에서 웬 여자에게 난데없이 뺨을 맞고도 아무 말을 못 하고, 당황하면 딸꾹질이 멈추지를 않는다. 거침없는 성격의 김은미 앞에서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그가 해달라는 건 뭐든 다 해준다.
안재욱은 박진홍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털어놨다.
그는 "'얘는 속도 없나?'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면서 "직설적이고 적극적인 저와는 성격이 너무 다른 캐릭터라서 가끔 숨쉬기 버거울 정도로 답답하기도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찌질이처럼 보여야 하지만, 실제로 찌질이가 되면 안 됐기 때문에 그 선을 잘 타는 게 숙제였다"고 덧붙였다.
"촬영할 때 감독님의 '오케이' 소리가 들리면 무조건 '근데 이게 맞아요?'라고 물어봤어요. 연기하는 저도 확신이 없었죠. (웃음)"
강하고 능력 있는 전형적인 남자 주인공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지만, 박진홍은 특유의 순진하고 다정한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안재욱은 "박진홍의 매력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헌신하는 자세인 것 같다"며 "연기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은미를 대할 때 묻어나는 진정성"이라고 꼽았다.
그는 "은미가 살아온 삶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게 드러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박진홍은 은미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데, 그 순수한 마음이 시청자들에게도 진심으로 와닿기를 바랐다"고 설명했다.
캐릭터의 성격은 답답할 때도 많았지만, 앞뒤 계산 없이 헌신적인 마음만큼은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안재욱은 "제가 박진홍이더라도 은미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족할 게 없어 보이지만, 진홍이는 이제껏 자기 의지대로 살지 못했어요. 시키는 대로, 주어진 대로 살아왔죠. 부모님 때문에 잃어버린 첫사랑을 다시 만난 지금이 두 번째 기회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대사처럼 '더할 나위 행복'했을 겁니다."
1994년 MBC 2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안재욱은 1997년 MBC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해외에서도 주목받으며 '1세대 한류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그 이후에도 드라마 '복수혈전', '해바라기', '안녕 내사랑', '나쁜 친구들', '엄마야 누나야', '오! 필승 봉순영', '천생연분', '빛과 그림자' 등을 흥행시키며 톱배우로 인정받았다.
안재욱은 "요즘 젊은 시청자들은 저를 잘 모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남남' 이후 확실히 반응이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전에는 '팬이었어요'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요즘은 젊은 분들도 '드라마 잘 보고 있다'고 알아봐 주셔서 반갑고 기뻐요. 그런 의미에서 '남남'이라는 작품은 제게 아주 귀엽고 산뜻한 선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