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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죽음을 앞둔 김정일, 그가 가졌던 마지막 관심사는

[취재파일] 죽음을 앞둔 김정일, 그가 가졌던 마지막 관심사는
지난 4일 북한 노동신문은 '조선노동당은 인민에 대한 믿음으로 백전백승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1면에 실었습니다. 북한 조선노동당이 인민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난관을 극복해왔다며,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를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장문의 이 기사 중에 관심을 끄는 대목이 있습니다. 과거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부분에서입니다. 노동신문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가 겪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했는데, 김정일과 관련된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노동신문이 소개한 김정일 에피소드 Ⓘ


노동신문이 소개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가을 어느 날"입니다.

지금부터 11년 전이면 2011년의 가을인데, 김정일이 2011년 12월 17일 사망했으므로 김정일이 죽기 불과 몇 개월 전입니다.

'위대한 장군님', 즉 김정일은 "시련의 나날 자신과 함께 온갖 고난을 헤쳐 온 인민들에 대한 생각으로… 깊어지는 감회를 금치 못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김정일
"나는 인민들이 식량이 없어 고생을 하고 공장, 기업소들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도 잘 살게 될 내일에는 우리 인민들이 나를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수령님의 유산인 사회주의를 끝까지 지키기 위하여 한해에도 수십 번씩 철령과 1211 고지, 오성산의 칼벼랑 길을 넘고 넘어 전선시찰의 길을 걸었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이 집권하자마자 북한에는 '고난의 행군'이라는 엄청난 시련의 시기가 닥쳤습니다. 연이은 수해와 흉작으로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공장과 기업소 등이 생산을 멈추면서 북한 체제는 존폐의 기로에까지 몰렸습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에서 굶어 죽은 사람이 수백만에 이른다는 설까지 있는 정도니, 당시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김정일이 집권 초기의 이 당시를 회상한 것인데, 당시 자신의 제1 목표는 '수령님(김일성)의 유산인 사회주의를 끝까지 지키는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민들이 무더기로 굶어 죽는 참혹한 현실에서 대외개방과 원조를 통해서라도 인민들을 먹여살리는데 우선을 둔 것이 아니라, 김일성이 만든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는 것에 최우선 목표를 두었다는 고백입니다.

김정일은 아버지인 김일성이 죽은 뒤 김일성이 집무실로 활용하던 금수산의사당을 김일성의 시신을 보존하는 김일성 종합추모시설인 금수산기념궁전(후에 '금수산태양궁전'으로 개칭)으로 리모델링했는데, 이러한 리모델링에 들어간 막대한 돈이 들어간 시기가 바로 '고난의 행군' 시기였습니다. 김일성이 죽은 때가 1994년 7월이니 그 이후 건물 리모델링 시기가 '고난의 행군' 시기와 정확히 겹치는 것이죠.

2021년 촬영된 금수산태양궁전 광장
2020년 촬영된 금수산태양궁전의 김일성·김정일 입상

혹자는 금수산의사당 리모델링에 들어갈 돈으로 해외에서 식량을 사 왔다면 북한 주민 몇 십만 명은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김정일은 그 돈을 식량 조달에 쓰기보다는 김일성 성전을 마련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한 북한전문가는 '어차피 북한 주민 전부를 먹여 살릴 수 없다면, 한정된 돈으로 금수산기념궁전을 리모델링해 김일성 체제의 절대성을 과시하는 것이 북한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사회주의 고수'로 이름 붙여진 김일성 체제의 유지가 다른 모든 것을 초월하는 김정일의 절대가치였던 것입니다.

노동신문이 소개한 김정일 에피소드 ②


다시 지난 4일자 노동신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노동신문은 김정일의 에피소드를 하나 더 소개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사연 깊은 그날'로부터 얼마 뒤 김정일은 간부들과 자리를 같이했습니다. 2011년 가을보다 얼마 더 지난 시기인 만큼, 2011년 늦가을이나 초겨울 무렵이었을 수 있습니다.

"깊은 사색에 잠기시어 하시는 위대한 장군님(김정일)의 교시가 일꾼(간부)들의 폐부에 뜨겁게 흘러들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맨 오른쪽)과 후계자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왼쪽에서 세 번째) 등이 주석단(귀빈석)에서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동지는 우리 혁명이 가장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인민들이 겪는 고생을 함께 겪으며 인생 체험도 많이 하였다. 그는 인민들과 함께 고난과 시련을 헤쳐나가면서 혁명동지와 인민에 대한 믿음, 주체혁명위업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을 더 굳게 간직하고 혁명가에게 있어서 사랑보다 더 위대하고 소중하며 힘 있는 것이 믿음이라는 철리를 가슴 속 깊이 새겨안게 되었다. 아마 김정은 동지는 고난의 행군 시기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일단 김정일의 이 말은 사실로 보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북한이 아무리 어려운 시기였다 하더라도 최고지도자의 아들이 인민들이 겪는 고생을 함께 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김정은이 1984년생인 만큼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0년대 중반에는 10살 남짓이었을 텐데, 10살 남짓한 아이가 인민들과 함께 고난과 시련을 헤쳐나갔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얘기를 김정일이 간부들 앞에서 한 이유는 '김정은이 훌륭한 지도자인 만큼 절대적으로 믿고 따라달라'는 취지였을 것입니다.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깨어났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김정일의 입장에서 27살에 불과한 김정은(2011년 당시 김정은은 27살이었습니다)이 후계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많이 불안했을 것이고, 어떻게 하든 김정은 체제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이 김정일이 인생 말엽에 가졌던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을 것입니다.

김정일의 마지막 관심사는


김정일의 지도력을 찬양하고자 한 것이 노동신문의 기사 작성 의도였겠지만, 노동신문이 전한 김정일의 언급을 보면 사망 직전 김정일의 마지막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여실히 드러납니다. '사회주의 고수''김정은 체제의 안정'인데, 이는 결국 김일성 일가의 왕조적 독재체제가 북한 내에서 영구히 계속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6주기를 맞아 북한 전역에서 주민들이 정오에 추모 사이렌에 맞춰 일제히 묵념하고 있다.

10여 년이 지난 2022년의 시점에서 보면 김정일의 소망대로 김일성 일가의 독재체제는 유지되고 있고, 김정은 또한 아버지 김정일의 유지를 정확히 계승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 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 말은 북한이 아무리 인민생활 향상을 떠들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얘기해도, 김일성 일가의 독재체제 유지 이상의 가치를 가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체제의 경직성을 탈피하지 못하는 북한의 한계인데, 이를 객관적 사실로 인정한 뒤에야 북한 체제를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TV,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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