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기술이 ‘퀀텀닷(Quantum Dot)’이다. 퀀텀닷은 지름이 수 나노미터(nm) 정도의 반도체 결정물질로, 빛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효율이 매우 높은 입자다. 1nm는 머리카락 굵기 10만분의 1에 해당하는 크기다. 지구 크기를 1m라고 가정할 때, 1nm는 축구공 하나 정도 크기다.

 

퀀텀닷은 빛이나 전압을 가하면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다. 또한 같은 물질이라도 입자 크기와 모양에 따라 다른 길이의 빛 파장을 발생시켜 다양한 색을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3~5nm 퀀텀닷은 푸른색을, 7~8nm 퀀텀닷은 붉은색을 낸다. 퀀텀닷은 재료 조성을 바꾸거나 결정 크기를 조절하는 것만으로 원하는 색을 얻을 수 있다. 색 순도가 높고 적은 에너지로 높은 발광 효율을 얻을 수 있어 TV, 태양광발전, 바이오 분야에 퀀텀닷 기술이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퀀텀닷이라는 이름은 현대에 들어와 생겼지만, 기술 자체는 인류의 삶에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다. 중세시대 지어진 성당 건물을 장식하던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에 퀀텀닷 원리가 사용되었다.

 

▲ 독일 남서부 마인츠에 있는 성 슈테판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마르크 샤갈의 작품

 

샤갈의 손끝에서 탄생한 빛의 오케스트라

 

누구나 한 번쯤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든 성당이나 교회 유리창을 보면서 ‘유리에서 어떻게 이렇게 다채로운 색깔이 나타날까?’,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의문을 가져보았을 것이다. 스테인드글라스는 햇빛이나 조명에 따라 빛깔이 달라지며 신비롭게 빛난다. 스테인드글라스는 도안에 맞춰 색유리판을 잘라 납으로 붙여 완성한다. 투명한 유리에 철, 구리, 코발트 등 금속 산화물을 넣으면 다양한 빛깔의 색유리가 된다. 고온에서 유리와 각종 금속을 녹이는 과정에서 화합물이 나노입자 크기로 변한다. 일종의 퀀텀닷이다.

 

십여 년 전 지인을 만나기 위해 독일 남서부에 있는 ‘마인츠(Mainz)’ 라는 도시를 방문한 일이 있다. 마인츠를 방문하기 전까지 이 도시에 대해 아는 거라곤,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7~1468)와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마인츠대학교가 유명하다는 정도였다. 특별히 들러볼 명소가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 마르크 샤갈 <꽃다발 속의 거울, 1964>, 폭 20m, 파리 오페라하우스

 

마인츠 구시가지를 헤매다 우연히 성 슈테판 교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세상에! 샤갈이다!” 성 슈테판 교회 창문에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즐비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프랑스, 미국 등에서 활동한 샤갈은 국내에도 여러 차례 전시를 통해 소개되었으며, 김춘수 시인의 시 <샤갈의 마을 에 내리는 눈> 덕분에 우리에게는 꽤 친숙한 화가다. 샤갈은 회화작품 못지않게 훌륭한 공공 예술작품들을 많이 남겼는데, 바로 스테인드글라스와 벽화들이다. 프랑스 파리 오페라하우스의 천장화 <꽃다발 속의 거울>를 처음 봤을 때 온몸을 휘감던 전율을 잊을 수가 없다. 오페라하우스 안에는 여러 예술가의 멋진 벽화가 많았지만, 샤갈의 작품이 공개되자 “가르니에 궁전의 최고 좌석은 천장에 있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샤갈의 나이가 일흔일곱 살이었다니, 그의 불타는 예술혼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꿈꾸듯 환상적인 색채로 사랑과 기쁨을 표현하던 샤갈의 회화 스타일은 스테인드글라스에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 대표작 두 점이 독일 성 슈테판 교회와 프랑스 랭스 대성당에 있다. 두곳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샤갈은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듯 선명한 파란 색 유리를 많이 사용했다. 밝고 따뜻한 푸른빛은 다양한 상징들을 감싸며 깊은 여운을 선사한다.

 

성 슈테판 교회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이브,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 가는 천사들의 모습, 천지창조, 십자가에 달린 예수 등 구약 성서 이야기가 샤갈 특유의 그림체와 질감 그대로 담겨있다. 특히 이곳 스테인드글라스는 샤갈이 아흔한 살 무렵 작업을 시작해 무려 7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다.

 

▲ 프랑스 랭스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마르크 샤갈 작품

 

빛과 나노과학의 예술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운 색은 빛이 있음으로써 발현되기 때문에, 스테인드글라스를 ‘빛의 예술’이라고 일컫는다. 사실 스테인드글라스에는 또 다른 과학이 하나 더 숨어 있다. 바로 유리 내부에 분포한 금이나 은 등의 금속 나노입자가 만들어낸 나노입자의 과학이다. ‘나노(nano)’는 그리스어로 난쟁이를 뜻하는 ‘나노스(nanos)’에서 나왔다. 나노입자란 한 차원이 100nm, 다시 말해 천만 분의 1m(100nm=100.0×10-9m) 이하의 미세 입자를 일컫는다. 나노입자는 머리카락 굵기 천분의 일에 해당하는 크기가 작은 알갱이다. 물질을 나노 단위까지 쪼개면 표면적이 급증하면서 모양이나 색깔, 구조, 성질 등이 달라진다. 탄소원자로 이루어진 흑연은 연필심으로 사용할 만큼 무르지만, 나노 단위로 재구성하면 강철보다 100배나 강한 탄소나노튜브가 된다. 또 황금색 금을 나노 단위까지 계속 쪼개면 붉은색으로 변한다.

 

나노라는 용어는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 1918~1988) 박사가 ‘바닥에는 풍부한 공간이 있다’라는 제목으로 연 물리학 강연에서 처음 등장했다. 파인만은 이 강연에서 원자나 분자 수준에서 물질의 성질에 관해 처음 언급했다. 이후 1986년, 미래학자로 알려진 에릭 드레슬러(Eric Drexler, 1955~)가 저서 《창조의 엔진(Engine of Creation)》에서 분자를 조정해 물질의 구조를 제어 하는 나노기술을 언급했다. 그는 MIT에서 나노과학 분야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몇몇 과학자에 의해 등장한 나노기술은 현재 눈부신 과학기술 발전과 함께 성장해, 이제 컴퓨터 및 IT 분야뿐만 아니라 생명공학, 의학, 환경, 에너지 등 인류의 삶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노기술은 인류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중요한 기술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 리처드 파인만은 나노과학기술 개념을 처음 제시한 과학자다. 미국 포어사이트 연구소는 나노기술 분야에서 가장 뛰어나고 혁신적인 연구 성과를 도출한 연구자에게 파인만의 이름을 딴 ‘파인만 상’을 수여한다.

 

퀀텀닷 기술로 만들어진 4세기 로마 시대 컵

 

작은 금속 입자로 인해 유리 색깔이 바뀌는 기술은 무려 4세기경 고대 로마 시대 작품 ‘리쿠르고스의 컵(Lycurgus Cup)’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컵에는 리쿠르고스라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왕을 조각해 덧붙여 놨다. 디오니소스(그리스 신화 속 포도주와 풍요의 신)가 자신을 박해하는 리쿠르고스를 포도주를 먹여 정신을 잃게 만든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리쿠르고스 컵은 평소에는 녹색에 가까운 색으로 보이지만(왼쪽), 컵 안에 빛을 쪼이면 붉은색 혹은 마젠타 빛깔로 변한다(오른쪽). 

 

▲ 리쿠르구스 컵(4세기경, 높이 16.5cm), 런던 대영박물관

 

컵의 비밀은 오랜 시간 봉인되어 있다가 1990년대에 이르러 미세한 나노입자를 관찰할 수 있는 현미경이 개발되면서 풀렸다. 컵 안에 특별한 조명이 따로 없을 때, 컵은 외부의 산란된 빛을 통해 우리 눈에 보인다. 대게 푸른색-녹색 계열의 빛이 산란효율이 높으므 로 컵은 녹색 계통으로 보인다. 그러나 컵 안에 조명이 있으면, 조명 빛은 컵을 투과해 우리 눈에 들어온다. 즉 빛은 컵 속의 금속 나노입자와 상호작용하면서 투과한다. 이때 금속입자의 크기가 점점 작아짐에 따라 전체 부피 대비 표면적 비율이 증가하게 된다. 

 

금속 나노입자의 경우 부피 대비 표면적 비율이 매우 높다. 이때 나노입자 표면에는 금속이 본래 가지고 있는 자유전자(진공 또는 물질 내부를 자유로이 운동하는 전자)가 높은 밀도로 분포하게 된다. 표면에 구름처럼 존재하는 자유전자들은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진동한다. 이 진동수와 같은 진동수(혹은 파장)의 빛을 만나면 자유전자들은 그 빛을 강하게 흡수하고 약간 긴 파장의 빛을 다시 방출하게 된다. 이를 ‘표면 플라즈몬 공명(Surface Plasmon Resonance)’이라 한다. 수십 나노미터 크기를 가진 금 나노입자는 고유 파장대가 560nm(노란빛)이다. 금 나노입자가 빛을 만나면 먼저 표면 플라즈몬 공명이 일 어나고, 공명 파장보다 약간 긴 파장의 붉은색 빛을 방출한다. 그래서 컵 안에 빛을 비추면 컵이 붉은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 금속 나노입자에서 발생하는 표면 플라즈몬 공명 현상

 

로마인들은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금과 은을 모래 알갱이보다 수백배 작게 즉 나노입자 크기로 연마하는 기술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리쿠르고스 컵 제조 기법은 12세기 이후 유럽 전역에서 발전한 스테인드글라스 기술의 근간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스테인드글라스는 다채로운 색을 내기 위해 구리, 철, 망간과 같은 여러 가지 금속화합물을 이용했으며, 제작 과정 중간에 금이나 니켈 같은 금속을 첨가했다.

 

표면 플라즈몬 공명 효과에 의한 빛의 산란은 금속 나노입자 크기나 모양에 따라 다르게 일어난다. 입자 크기나 모양이 다르면, 공명하는 빛의 고유 진동수(주파수) 혹은 파장이 달라지기 때문에 다른 빛이 산란되어 보이는 색도 달라진다. 아래 이미지를 보면 입자의 종류와 모양 크기에 따라 다른 색을 보여주는 현상이 이해될 것이다.

 

▲ 액체 속에 들어있는 금속 나노입자 크기나 모양 및 양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빛깔(L. Liz-Marzan, Materials Today, 7, 26, 2004)

 

위 이미지 왼쪽 ‘a, b, c’ 이미지는 나노 크기의 금속 형상을 보여주는 전자 현미경(Transmission Electron Microscope) 사진이고, 오른쪽 ‘d, e, f’ 이미지는 이 입자들을 농도, 모양, 크기를 달리해 용액 속에 각각 담갔을 때, 다른 빛깔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다. 이 현상은 금속입자에 의한 색 변화를 이용해 미량의 시료량을 재는 바이오센서 등 과학기술 전반에 활용되고 있다.

 

빛으로 신을 그리고 싶었던 인간

 

1163년에 건설이 시작돼 1345년에 완공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유럽을 대표하는 고딕양식 건축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건 ‘장미창(Rose Window)’으로 불리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다. 장미창에는 12사도에게 둘러싸인 예수가 각각 묘사되어 있으며, 높이가 13m에 달한다. 장미창에는 단 네 가지 색의 색유리만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색유리의 배열과 문양 차이만으로 이토록 화려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매우 놀랍다. 외부에서 장미창을 보면 꽃처럼 펼쳐진 화려한 창틀에 감탄한다. 반면 창틀에 조각조각 끼워진 유리는 색이 비슷비슷해 다소 밋밋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성당 내부에서 장미창을 바라보면, 반전이 펼쳐진다. 화려한 창틀은 성당 내부의 짙은 어둠에 묻히고, 스테인드글라스는 태양빛을 투과해 다채로운 빛을 내뿜는다.

 

▲ (좌)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장미창을 바깥에서 바라본 모습, (우)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장미창을 안에서 바라본 모습

 

스테인드글라스는 성당을 장식하는 성화, 조각들과 함께 가난한 문맹자들에겐 신의 말씀을 전해 주는 성경이었다. 스테인드글라스 유리들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의 양에 따라 다채로운 색 변화를 보여주기 때문에 종교적인 주제를 표현하기에 매우 적합했다. 과거 사람들은 ‘빛’을 신과 인간 세상을 연결해주는 통로이자 영적 존재로 여겼다. 어둑한 성당 내부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오색 찬란한 빛이 쏟아지면, 종교를 초월해 황홀경을 경험한다. 신의 속성을 표현하는 빛을 얼마나 신성하고 신비롭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기법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신을 그리던 빛은 오래전부터 인류의 미래를 바꿀 정교한 나노과학을 품고 있었다.

 

 

 

필자 / 서민아(물리학자)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교수

이화여대 물리학과 졸업,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서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 연구로 2010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 연구원, 2013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합류해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나노-정보융합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어바웃어북) 등이 있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