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강남 1970'(유하 감독) 속 이연두의 모습은 기자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발랄하고 밝은, 평소 알고있던 이연두의 모습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 영화 속에는 조직 두목의 정부이자 2인자의 비밀 연인 주소정만 있을 뿐이었다. 도발적이면서도 매혹적인 팜므파탈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다가도 자신의 사랑을 숨길 수밖에 없는 한 많은 여인의 옷을 입을 때는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찬다.
2006년 KBS 2TV '슈퍼선데이-날아라 슛돌이'에서 아이들의 보조 코치로 출연해 얼굴과 이름을 알린 이연두는 드라마와 연극 무대를 오가며 연기자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하지만 그에게는 배우라는 타이틀보다는 '슛돌이 매니저' '손예진 닮은꼴' 등의 수식어가 먼저 따라붙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세밀한 감정 표현부터 진한 베드신까지 완벽하게 소화한 '강남 1970' 속 이연두를 본다면 배우로서의 그녀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최근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연두는 주소정에 대한 애정을 끊임없이 드러냈다. 단순히 자신이 연기했던 캐릭터 이상으로 주소정의 삶과 사랑을 가슴 깊이 이해하고 안쓰러워하고 있었다. 그녀가 '강남1970'에서 훌륭한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유하 감독이 주소정 캐릭터에게 가장 강조한 건 어떤건가.
"감독님은 이것저것 자세하게 디렉션하기 보다는 배우에게 맡기시는 편이다. 물론 잘못된 방향으로 연기할 때는 지도해주시지만, 다행히 내가 표현하려는 소정이와 감독님이 표현하고 싶으셨던 소정이가 잘 맞았던 것 같다. 나를 믿고 맡겨주셨다."
-술집 종업원 캐릭터를 선택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소정이를 만났을 때, 소정이가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상상한 소정이의 인생을 이렇다. 지방에서 태어난 소정이는 소녀가장이었을 거다. 자기를 바라보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서울에 왔고 일을 구하다가 술집에서 일을 하게 된 거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과 함께 고향에 내려가 함께 사는 소박한 삶을 꿈 꿨을 거다. 순진하진 않지만 순수한, 그런 아이인 것 같다."
-실제로 좋아하는 남자 스타일은?
"나와 코드가 잘 맞는 사람이 좋다. 사실 코드 맞는 사람을 찾는 게 가장 어렵더라. 몇 시간이고 커피 한잔 앞에 두고 계속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 대화 하지 않고 마주보고 앉아 있더라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 좋다."
-극중 진한 베드신 때문에 더욱 선택이 어려웠을 것 같은데.
"진한 베드신이 있는데도, 남성 중심의 영화인데도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강하게 끌렸다. 그냥 소정이에게 계속 마음이 갔다. 베드신도 극중 소정이와 용기(김래원)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꼭 필요한 장면이 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또 유하 감독님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다. 유하 감독님과 함께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 만해도 영광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베드신을 준비하는 과정이 많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촬영을 하기 전까지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건 사실이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압박감이 있었다. 베드신 촬영 날짜가 세 번 정도 미뤄졌다. 차라리 빨리 촬영하고 마음의 짐을 내려놨으면 좋은데, 미뤄지는 바람에 계속 긴장하고 있어야 했다."
-촬영은 어땠나.
"촬영 전까지가 힘들었지 막상 촬영에 들어갔을 때는 크게 힘들지 않았다. 감독님부터 래원 오빠까지 정말 배려를 많이 해줬다. 여배우로서 베드신을 찍을 때 상대 남자배우의 배려가 정말 중요하다. 래원 오빠는 행동 하나하나 말투 하나하나 까지 내가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게 촬영을 마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써줬다."
-베드신 연기를 한 것에 대해 부모님 반응은 어떤가.
"부모님이 허락은 안 해주셨으면 못 했을 거다. 분명히 부모님이 견뎌야할 무게도 있었을 테니까.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너는 배우고 앞으로도 네가 좋아하는 작품을 만나면 해야지. 남의 시선 신경 쓰지 말고 너의 인생을 살아라'라고 말해주셨다. 시사회 때 보시고 '고생했다. 잘했다'고 격려해주셨다,"
-영화에서 주소정의 마지막 모습은 그려지지 않는다. 주소정은 어떻게 살게 되는 걸까.
"아마 고향에 내려가서 평생 용기를 그리워하며 살지 않았을까. 용기의 아이도 낳았을 것 같다. 용기를 꼭 닮은 아들이 아니었을까?(웃음)"
-영화에서 가장 아쉬웠던 건.
"개인적인 욕심이지만, 극중 소정아와 용기의 로맨스가 더 있었으면 했다.(웃음) 래원오빠도 그렇게 생각하더라. 두 사람의 애틋한 감정선이 더 들어갔으면 좋았을텐데.(웃음)"
-배우보다는 '슛돌이 매니저' 등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속상할 것 같은데.
"속상하고 섭섭한건 다 지나갔다.(웃음) 11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이 자리까지 버텨준 내 자신을 쓰다듬어주고 싶다. 아직까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배우는 선택 받는 직업이다. 물론 선택받지 못했던 순간에는 조금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연극 뮤지컬 등에서 꾸준히 나를 찾아줬다."
-배우를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다.
"이상하게도 힘들었던 순간이 그렇게 많은 데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연기할 때 만큼은 오만걱정이 다 사라지고 정말 행복하다."
-방송이나 영화 외에 연극도 계속 할 생각인가.
"3년에 한번 정도는 연극 무대에 서고 싶다. 처음 연극을 할 때는 '같은 내용의 같은 연기를 두세 달 동안 수십번씩 반복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그런데 매번 무대에 올라갈 때마다 다르더라.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다고 하더라도 매번 관객들의 반응도 다르고 상대 배우와의 호흡도 다르다. 순간의 실수를 물 흐르듯이 잘 넘겼을 때는 묘한 쾌감까지 있다."
-2013년에는 브라질 억류 사건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 사건 이후로 달라진 점이 있나.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됐다. 브라질에 억류됐을 때는 다시는 한국에 돌아가지도 못할 거라는 두려움까지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그냥 돌아왔다는 거 자체가 감사했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을 보면서 내 얘기인 것 같아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웃음)"
-SNS를 보면 운동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더라.
"정말 좋아한다. 워낙에 활동적이고 움직이는 것도 좋아한다. 학창시절에 체력장을 할 때면 모든 종목에서 1급을 받았다.(웃음) 몸 쓰는 건 자신 있다. 그래서 액션 연기에 꼭 도전해 보고 싶다."
-앞으로 어떤 영화나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은가.
"강한 임팩트가 있는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 또, 캐릭터에 국한되고 싶진 않지만, 모성애가 절절한 엄마 역할을 해보고 싶다. 엄마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는 못하겠지만 '날아라 슛돌이' 촬영을 오래해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연기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