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은 동강과 서강이 만나 남한강을 이루는 지역이다. 그곳에 가면 어린 임금 단종의 비애를 느낄 수 있다세조는 1457년 단종을 영월 청령포에 유배시켰다. 단종이 한양의 궁궐을 떠나 당도한 청령포는 뒤에 벼랑, 앞에 강줄기가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감옥이었다. 청령포에서 약 2개월가량 유배생활을 하던 단종은 그곳이 홍수로 침수되는 바람에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관풍헌에 머물 당시 단종은 자규시(子規詩)’자규사(子規詞)’라는 제목의 시 2수를 짓는다. 어린 임금이 지은 시에는 그의 한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에서 나와

외로운 그림자로 푸른 숲에 깃들었다

밤마다 억지로 잠들려 하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해마다 한스러움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원한은 끝나지 않네

자규 울음 끊어진 새벽 멧부리에 조각달만 밝은데

피를 뿌린 것 같은 골짜기에는 붉은 꽃이 지네

하늘은 귀머거린가 아직도 애끓는 나의 호소를 듣지 못하고

어이하여 수심 많은 이 사람 귀만 밝게 했는가

 

一自寃禽出帝宮

孤身隻影碧山中

假眠夜夜眼無假
窮恨年年恨不窮
聲斷撓岑殘月白
血流春谷落花紅
天聾尙未問哀訴
胡乃愁人耳獨聰

 

(자규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80~81)

 

 

달 밝은 밤 소쩍새 울음소리는 더욱 구슬퍼
시름 못 잊어 누 머리 기대었노라
네 울음 슬프니 내 듣기 괴롭도다
네 소리 없었으면 내 시름도 없었으리니
세상에 근심 많은 분들게 이르노니
부디 춘삼월에는 자규루에 오르지 마오

 

月白夜蜀魂湫

含愁情依樓頭

爾啼悲我聞苦

無爾聲無我愁

寄語世上苦榮人
愼莫登春三月子規樓

 

(자규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84)

 

    

 

자규는 두견새 또는 접동새라고 불리기도 한다. ‘자규사1행에 나오는 ‘촉혼 두견새의 또 다른 별칭이다. ‘촉혼이라는 이름은 고대 중국 촉나라에 유래되었다. 촉나라 왕 두우(杜宇, 또는 망제’(望帝)라고 부르기도 함)는 신하의 반란으로 폐위되었고, 한이 맺힌 채 비참하게 죽었다. 촉나라 왕의 원혼은 두견이가 되어 밤마다 불여귀(不如歸, 돌아갈 수 없네)’를 울부짖으며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촉혼불여귀는 두견새의 별칭이 되었다.

 

 

 

 

왼쪽이 두견새, 오른쪽이 소쩍새 (사진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그런데 단종이 한밤중에 들은 구슬픈 울음소리의 주인은 두견새가 아니다.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은 것이다. 두견새는 낮에 활동한다. 소쩍새와 두견새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올빼밋과에 속한 소쩍새는 두견새와 그 생김새가 전혀 다르고, 밤에만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봄부터 여름까지 소쩍소쩍하며 밤새 쉼 없이 애처롭게 울어대어 듣는 이의 심금을 자극하는 소쩍새. 이 점이 두견새와 헷갈리게 한다. 유홍준 교수는 자규사’ 1행을 원문 그대로 해석하는 대신에 달 밝은 밤 소쩍새 울음소리는 더욱 구슬퍼로 고쳐서 해석했다.

 

두견새는 한이나 슬픔의 정서를 표출하는 한국 고전문학의 소재로 등장한다. 정확하게 바로잡으면 소쩍새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내가 좋아하는 김소월접동새또한 소쩍새 울음소리를 애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라나

먼 뒤쪽의

진두강(津頭江)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따라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샘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김소월은 어린 시절, 숙모가 자신에게 들려준 전설을 토대로 이 시를 썼다. 평안북도 박천에 있는 진두강 가의 마을에 살았던 한 여인의 슬픈 이야기다. ‘큰 누나라고 불리는 여인은 시집갈 준비를 하게 되는데 신랑 쪽 집안에서 여인에게 예물을 많이 보냈다. 욕심 많은 계모는 예물을 제 손으로 차지하려고 여인을 괴롭혔다. 강제로 예물을 빼앗은 계모는 여인을 잔인하게 매질했다. 여인은 자신의 친어머니가 남겨놓은 장롱에 갇혔고, 계모는 여인이 갇힌 장롱에 불을 질렀다. 그렇게 여인은 아홉 명의 동생들을 남겨두고 계모에게 억울한 죽임을 당한다. 그녀의 원혼은 접동새가 된다. 억울한 죽음에 대한 서러움, 그리고 이승에 있는 동생들이 걱정되고, 너무나 그리워서 어두운 밤에 이 선 저 산 옮기면서 구슬프게 운다. 이 시에 나오는 새가 접동새인지 소쩍새인지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래도 나는 큰 누나의 원혼이 깃든 새가 접동새라고 믿고 싶다. 큰 누나는 계모가 두려워서 밤에만 나타나 울 수밖에 없으니까. 사람들은 한밤중에 우는 새의 울음소리가 무섭다고 하지만, 큰 누나의 억울한 사연을 생각하면 밤에만 울어야 하는 접동새가 슬프게 느껴진다. 사소한 혼동이 있다고 해서 시의 애수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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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9-25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