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후원 홀로 즐겨 봄!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1.04.29. 11:30

수정일 2021.04.29. 14:53

조회 5,436

신록으로 물드는 창덕궁 후원을 홀로 찾았다. 현재 모든 궁과 릉은 코로나19로 인해 안내해설이 중단돼 자유관람만 가능하다. 후원의 경우 하루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돼 있다. 인터넷 예약은 이미 끝난 후여서 현장 구매를 위해 이른 시간에 열심히 찾아갔다. 
지난해 돈화문 월대 개선공사를 하며 신축한 창덕궁 관람지원센터가 환하다. ⓒ이선미
지난해 돈화문 월대 개선 공사를 하며 신축한 창덕궁 관람지원센터가 환하다. ⓒ이선미

텅 빈 인정문을 지나고 매화를 찾아 무수한 시민들의 발길이 닿았던 칠분서, 삼삼와, 성정각을 지나 담장을 따라 후원으로 접어들었다. 호젓한 언덕을 넘어서자 저만큼 아래로 벌써 푸릇한 녹음 사이 영화당이 나타났다. 왕실 가족의 휴식을 위한 이 건물 앞마당 춘당대에서 가끔 과거시험이 치러지기도 했다. 아름다운 궁궐의 모습에 시민들이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지금부터는 스마트폰이 계속 켜져 있을 시간이다. 바로 부용지에 닿기 때문이다.
성정각 담장을 따라 언덕을 넘으면 영화당이 그림처럼 눈앞에 나타난다. ⓒ이선미
성정각 담장을 따라 언덕을 넘으면 영화당이 그림처럼 눈앞에 나타난다. ⓒ이선미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곳이 바로 부용지다. 연못 안에 섬을 만들어 나무를 심고, 남쪽에 부용정이라는 작은 정자를 놓아 운치를 더했다. 이 연못은 계절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연못 부용지는 창덕궁 후원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이선미
연못 부용지는 창덕궁 후원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이선미

연못 너머 언덕 위에 서 있는 2층 누각은 주합루로, 규장각 서고로 쓰이던 건물이다. 원래 서고이자 열람실로 쓰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정조의 개혁 정책을 뒷받침하는 연구소 역할을 하기도 했다. 우리에게도 낯익은 채제공, 정약용, 박제가 등의 실학자들이 모두 규장각 출신이었다. 
연못 너머 보이는 규장각은 개혁군주 정조의 꿈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이선미
연못 너머 보이는 규장각은 개혁군주 정조의 꿈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이선미

1781년에는 규장각이 너무 좁아 궐내각사 영역으로 옮겼다. 이곳에 있던 책들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와 경성제국대학을 거쳐 현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주합루의 문인 어수문. 임금만 이 문으로 드나들 수 있었고 다른 이들은 옆의 작은 문으로 출입했다. ⓒ이선미
주합루의 문인 어수문. 임금만 이 문으로 드나들 수 있었고 다른 이들은 옆의 작은 문으로 출입했다. ⓒ이선미

부용지 말고도 창덕궁 후원에는 여러 연못이 있다. 영화당을 지나 불로문 바로 옆에는 애련지가 이어진다. 연꽃을 유독 좋아한 숙종 임금이 이 연못을 조성하고 ‘애련(愛蓮)’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숙종 18년에 만들어진 애련지와 애련정. ⓒ이선미
숙종 18년에 만들어진 애련지와 애련정. ⓒ이선미

늘 그냥 지나갔는데 이번에는 관람지로 내려가 관람정을 마주해보았다. 우리나라 한반도 형태를 닮은 이 연못을 옛날에는 반도지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정확한 이름은 관람지다. 관람정은 정자 형태도 부채꼴로 독특했는데 그보다 파초 모양 현판이 더 눈에 띄고 재미있었다. 모든 것에 질서가 배어 있던 유교 국가의 궁궐에 이런 파격이 있다니 무척 신선했다. 휴식을 위한 공간이어서 가능한 일이었을까?
우리나라에 단 한곳밖에 없다는 부채꼴 모양 정자 관람정과 파초 모양 현판 ⓒ이선미
우리나라에 단 한곳밖에 없다는 부채꼴 모양 정자 관람정과 파초 모양 현판 ⓒ이선미

곧바로 이어지는 존덕정에서도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났다. 반월지라는 연못에 놓인 육각형 정자 존덕정의 안내표지를 읽고야 그 안에 정조가 쓴 현판이 있다는 걸 알았다. 
독특한 육각형 건물인 존덕정 ⓒ이선미
독특한 육각형 건물인 존덕정 ⓒ이선미

‘만천명월주인옹 자서(萬川明月主人翁 自序)’라는 제목의 장문에서 정조 임금은 “세상의 모든 물길은 달빛을 받고 있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유일하다. 그 달은 곧 임금이고 세상의 물길은 신하들이다. 따라서 물길이 달을 따르는 것이 우주의 이치다.”라고 강조했다. 임금이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 모두 만백성을 위한 것임을 밝히는 동시에 왕권의 지엄함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존덕정에는 정조 임금의 어필인 ‘만천명월주인옹자서’가 있다.ⓒ이선미
존덕정에는 정조 임금의 어필인 ‘만천명월주인옹자서’가 있다. ⓒ이선미

천장에는 황룡과 청룡이 여의주를 두고 다투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 또한 왕권의 지고함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개혁군주 정조의 꿈은 너무 일찍 끝나고 말았다. 존덕정에서는 홀로 고독했던 정조 임금의 자취를 만나는 듯도 했다. 
천장에 그려진 두 마리 용의 쟁투 또한 왕권의 지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선미
천장에 그려진 두 마리 용의 쟁투 또한 왕권의 지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선미

후원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옥류천이 흐르고 주변으로 여러 정자가 조성되어 있다. 소요암 앞에 서서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그 옛날 저 파인 물줄기를 따라 술잔을 띄우고 임금과 신하들이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가지곤 했다고 한다. 무척 낭만적인 풍경이지만, 정치란 때로 두려운 것이다 보니 마냥 아름다운 연회만은 아니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좀 씁쓸해졌다. 
소요암에는 인조 임금이 쓴 ‘옥류천’이라는 글과 숙종 임금의 시가 새겨져 있다. ⓒ이선미
소요암에는 인조 임금이 쓴 ‘옥류천’이라는 글과 숙종 임금의 시가 새겨져 있다. ⓒ이선미

올 봄에 비가 많이 내린 덕분에 옥류천으로 흘러드는 물소리가 제법 상쾌했다. 청의정 앞 작은 논에도 논물이 제대로 고여 있었다. 임금이 친히 모내기를 하고 벼를 수확해 농사를 체험하고 농부들을 격려한 자취가 이렇게 남아 있다.
작은 논을 끼고 있는 청의정은 창덕궁 안에 있는 유일한 초가지붕 건물이다. ⓒ이선미
작은 논을 끼고 있는 청의정은 창덕궁 안에 있는 유일한 초가지붕 건물이다. ⓒ이선미

연경당에도 봄은 한가득 들어차 있었다. 장락문을 들어서니 1828년 순조 임금의 아들 효명세자가 지은 소박한 한옥이 푸근하게 다가섰다. 단청을 하지 않아 친근하게 느껴지는 선향재 쪽마루에 앉아 대화하는 관람객들이 보였다. 
봄빛 가득한 연경당 뒤로 책을 보관하던 서재 선향재도 보인다. ⓒ이선미
봄빛 가득한 연경당 뒤로 책을 보관하던 서재 선향재도 보인다. ⓒ이선미
연경당 앞 흐드러진 겹철쭉 틈으로 괴석을 나무처럼 심은 석함(돌화분)의 부조가 흥미롭다. ⓒ이선미
연경당 앞 흐드러진 겹철쭉 틈으로 괴석을 나무처럼 심은 석함(돌화분)의 부조가 흥미롭다. ⓒ이선미

수백 년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창덕궁 후원의 봄맞이는 지루할 새가 없었다. 풀꽃들까지 싱그럽게 피어나 한껏 풍요로운 소풍이었다. 5월 1일부터는 ‘제7회 궁중문화축전’도 막을 올린다. 코로나19로 긴장을 해야 하지만 꽃 피는 오월, 고궁의 한때를 만끽하며 몸과 마음을 봄빛으로 물들여보는 것도 좋겠다.

■ 창덕궁

○ 위치 :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
○ 홈페이지 : http://www.cdg.go.kr/default.jsp
○ 문의 : 02-3668-2300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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