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호,천으로 집을 지어 나를 찾아 떠나다''

리움미술관, 서도호의 <집속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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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 작가의 리움미술관 전시, <집속의 집>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전도된 문(작품 제목 ''투영'')으로 들어가 15점의 작품을 감상하고서 마지막으로 영상물이 투사되는 문을 나올 때까지의 과정이 그렇다. 작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집''과 ''건축''이라는 소재를 통해 풀어간다. ''집''이라는 기존의 가치에 대한 전복을 시도하고, 집에 반영되는 건축예술의 방향성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가 들게 한다.''방구''라는 드로잉을 통해 관객을 웃기듯이, 서 작가는 진지한 주제를 동화같은 상상력으로 재미나게 다룸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입구에 설치된 ''투영''작품은 한옥 솟을대문을 옥색 천으로 형상화해 뒤집어 매달아 놓은 것이다. 그 대문 위로는 엷은 천이 펼쳐져 있고, 그 반투명 천을 통해 거꾸로 매달린 대문과 똑같은 것이 대칭을 이루며 똑바로 서 있다. 그건 마치 거꾸로 매달린 대문이 천정거울에 투영된 모습 같다. 실상이 허상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 작품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실체로 인지하는 우리 인식구조의 허점을 예리하게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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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대한 설치작품 역시 통념을 뒤집는다.''별똥별''(2008-2011)은 한옥이 미국의 콘크리트 집과 부딪혀 얹혀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서작가가 1991년 유학길에 올라 미국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그 충격을 담고 있다. 한옥에 연결된 집모양의 하늘색 천은 연착륙을 의미한다.''집속의 집''(2003)은 서양식 집 안에 한옥이 반듯하게 들어선 모습으로, 작가가 미국생활에 안착했음을 상징한다.그런데 이후에 표현된 집들은 딱딱한 구조물이 아닌 부드러운 천들로 만들어진다. ''북쪽 벽''(2005), ''베를린 집:세개의 복도''(2011), ''서울집/서울집''(2012) 등이 그러하다.옥색,하늘색,초록,올리브색,쑥색,파랑,주황,연분홍 등 하늘거리는 천으로 지어진 집들은 아름답기 그지 없고, 천으로 표현된 기와문양,문손잡이,장석 등은 섬세하기 이를데 없다.집은 안정을 의미한다. 그런데 천으로 집을 만듬으로써 집은 결코 한곳에 안착하는 ''정주''의 의미가 아님을 말한다.

서 작가의 집 설치작품은 건축예술에 대해서도 기존의 맥락을 뒤집는다. 건축은 실용성이 있던가,미감상 아름답거나를 놓고 가치경쟁을 해왔다.서 작가의 천으로 표현된 집들은 이리도 아름답지만,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다. 서작가는 뉴잉글랜드에서 살았던 집을 13미터 높이의 천으로 재현한 작품''청사진(리움 버전,2010-2012)''이 2010년 베를린 비엔날레 건축전에 이례적으로 초청받음으로써그 조형적 아름다움을 입증한다. 이처럼 아름답지만,실용적이지 않은 건축예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제는 그 아름다움이 미술관 전시로만 존재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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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작가는 건축을 옷과 같다고 했다. 옷은 몸을 보호해주고, 맵시나게 해준다. 그렇다면 건축예술은 살기에 편안하고, 장식적으로 아름다워야 좋은 것인가? 그러나 건축예술에 대한 서 작가의 의도로 유추해 보자면, 우리의 몸을 영원히 보호해주는 옷은 없고, 그렇게 아름다운 옷가지라 할지라도 실제 몸에 걸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미적 아름다움은 결국 존재하는 그 무엇이 아닌, 인간 의식 속의 내적 작용에 의해 생긴다는 것인가. 천으로 된 집처럼 인간에게 아름다운 인상을 주지만, 실제 살기에는 유용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의문 속에서 마지막으로 감상한 작품 ''문''은 그 의문점의 출구를 제시해 준다. 천으로 된 한옥 대문과 그 양옆 벽까지 펼쳐진 천에는 여러 영상이 순차적으로 수놓인다. 여명에서 해가 솟아오르며 아름드리 소나무가 등장하고, 매화가지에 꽃이 피어나고 그 꽃 위로 나비들이 훨훨 날아다닌다. 태양이 한낮을 통과할 때 사슴이 거닐며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검은 새 떼가 몇마리씩 출현하더니 화면을 시커멓게 뒤덮고, 새소리가 비행기 굉음처럼 귀를 찢는다.종말을 암시하는 괴기영화처럼 으시시한 분위기에 실내가 압도된다.화면을 시커멓게 덮었다,환해졌다 이러기를 세번 반복 한 뒤 다시 여명의 화면으로 재생된다. 언제 그랬냐 싶게밝은 태양빛 아래 나비가 날갯짓을 펄럭이고...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세번 정도의 암흑의 시기를 거쳐야만, 또는 거치더라도 다시 밝은 세상을 맞이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우리에게 집과 같이 존재하는 모든 것은 허상일 뿐이고, 천으로 된 집처럼 모든 아름다움은 한낱 심상의 작용일 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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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호 작가의 작품전시에 대한 나의 관람평은 작가의 의도와 다소 어긋날 수 도 있다. 서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간''은 움직일 수 없고 한 장소에 정주할 수 밖에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만의 사적이고 특정한 공간을 끊임없이 함께 지니고 돌아다니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생각으로부터 모든 공간이 무한히 이동 가능하고 휴대 가능하지 않을까 의심해 보게 된 것이다...집 혹은 방은 나를 보호해주는 건축적인 공간이다. 한국에 있는 나의 집은 전통 한옥으로서 내가 자란 공간이자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곳은 내 기억의 공간이다.내가 묻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현재 장소 안에서 내가 머물렀던 장소 안에서 내가 머물렀던 이전 공간들을 얼마만큼 가지고 다니는가?" 서 작가가 말하는 ''휴대가능한 공간''이란 결국 기억 속에 저장된,관념상의 공간으로서 단지 그것을 미술관의 전시작품으로 관객의 눈 앞에 펼쳐보일 뿐이다. 그 기억속의 공간마저도, 그 기억에서 재현된 건축예술의 아름다움마저도 환(幻)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할 때, ''나''라는 실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까 싶다. 작가가 언급한 ''샤워할 때 완전히 벗고 있는 나와, 바깥에서 옷을 다 입고 있는 나''는, 기억의 공간을 휴대한 ''나''와 그렇지 않은 ''나''를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옷을 벗으나 입으나 그것은 문화적 맥락에서 덧씌워진 것일 뿐, 결코 ''다른 나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말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작 ''문''(2011-2012)은 작가가 기존의 ''집 시리즈''작품에서 보여준 정체성 고민에 대한 새로운 출구가 아닐까 싶다.

전시기간:3.2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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